킬리만자로의 눈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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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은 어렵다. 고등학생 때부터 읽었지만, 숨어져있는 것들을 유추하는 것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헤밍웨이의 단편은 더욱 그런 편이다. "내용의 8분의 1만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헤밍웨이의 말은 그의 단편이 쉽게 읽히지 않으리란 걸 잘 보여준다.
오랜만에 집어든 헤밍웨이의 단편선을 넘기며, 수많은 외로움을 마주할 수 있었다. 외롭다못해, 극단에 치닫은 고독함. 여러 단편 속 주인공들은 분명 주변인과 함께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고독한 그들을 마주한다.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또 누구와 있더라도 그렇다. 마치 고독함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처럼.
첫 단편인 <킬리만자로의 눈>은 죽음 앞에서 결국은 홀로 서게 되는 외로움을 그린다. 함께하는 연인도, 그가 열심히 모아온 글감도 죽음 앞에선 해리와 함께하지 못한다. 결국은 죽음 앞에서 삶의 집착마저 떠나보내게 되는 해리의 생각을에는 고독함이 짙게 배여있다. 
<킬리만자로의 눈> 전체를 관통한 고독함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고도 깊어, 해리에게 은밀하게 내려앉는 고독함을 함께 느끼며 숨을 쉬기 어려웠다. 필연적인 고독함의 깊이에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가슴이 내려앉을 것이다. 사랑했기에 자연스러웠던 욕심과 요구, 인간이기에 응당 가질 수 밖에 없는 집착을 내려놓은 해리는 그 누구보다 고독한 사람이자 우리의 먼 훗날이었다.
"그가 사랑했던 다른 연인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너무 많이 싸워서 그들은 마지막엔 항상, 싸움의 부식작용으로 자신들이 함께했던 것을 죽여버렸다. 그는 너무 많이 사랑했고, 너무 많이 요구했다. 그리하여 전부 닳아 해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 이렇게 죽는 거구나, 듣지 못했던 속삭임 속에서. 그래, 더 이상 싸움은 없을 것이다. 그는 그것을 약속할 수 있었다. 결코 가져보지 못했던 이 하나의 경험을 그는 이제 망치지 않을 것이다. 아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걸 망쳤었다. 그러나  이번엔 아마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망가뜨려진 이들을 경멸해왔다. 이해했다고 해서 좋아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만약 관심을 주지않았다면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이제 그는 죽음에 관해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 한가지 그가 항상 두려워했던 것은 고통이었다. 그것이 너무 오랫동안 자신을 기진맥진하게 만들기 전까지는 누구 못지않게 고통을 참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지독한 상처를 지니고 있었고 그것이 자신을 파괴하고 있다고 느꼈을 즈음, 그 고통은 멈추었다."

"킬러들"도 그렇다. 살인청부업자가 본인을 좇고 있다는 소식에도 앤더슨은 덤덤하다. 스스로에게 닥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을 말리는 동료들을 내버려둔 채 소식을 알리고자 달려온 닉과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상황이라며 죽음을 체념한 엔더슨의 모습이 대비되며, 그의 절망감이 도드라진다.

"흰 코끼리 같은 산등성이", "미시간 북부에서"에 등장하는 낙태와 강간은 소재만으로도 고독함이 극대화된다. 낙태를 사실상 강요받는 여자 주인공과 감정적 교류 없는 강간을 당하는 리즈는 격정적인 고독함을 보여준다.

마지막 “빗속의 고양이”에서는 가장 긴밀하다는 부부 관계임에도 자신에게 무관심한 남편이 드러난다.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두 명이자 한 방에서 묶는 부부임에도 둘 사이에는 그 어떤 이해와 교류도 드러나지 않는다. kitty를 바랬지만 커다란 구갑고양이를 안아야 했던 마무리는 그 누구와도 온전히 소통할 수 없는 고독함 속에 빠져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준다.
헤밍웨이의 단편을 통해 변주되며 반복되는 고독함을 흠뻑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 단편 중 하나를 뽑자면, 역시 제목인 <킬리만자로의 눈>이지 않나 싶다. 헤밍웨이가 말하는 고독함이 궁금하다면, <킬리만자로의 눈>을 권한다.
  • 출판사지원 리딩투데이 서평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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