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25만 부 기념 전면 개정판) - 가장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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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는 '가장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다른 말보다도 "숨었다"라는 말이 책을 읽기도 전에 마음을 찌르르하게 만들었다. 이 남자가 미술관으로 숨은 이유는 인생에서 견디기 힘든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항상 든든했던 형의 죽음이다.



형의 죽음을 전후로 하여 저자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잘 나가던 잡지사의 직원이었지만 갑자기 바뀌어버린 세상의 색을 견디지 못해 직장을 그만두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취직하게 된다. 구체적인 목적이 있었다기보다는, 반대로 아무런 목적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수히 많은 거장들의 작품, 그를 보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 그 둘 사이를 적절하게 다루며 일과 중 대부분을 위대한 작품들과 함께 숨쉬며 침묵하는 경비원. 무언가 성과를 낼 필요도 없고 숨막히는 긴장도 없다. 묵묵히 서 있으며 오롯이 홀로 있을 수 있는 곳이다.



책은 저자가 미술관에서 근무하는 첫 날부터 시작된다. 자연스레 따라오는 미술관 전경과 분위기가 생생한 묘사를 따라 머릿속에서 펼쳐진다. 전시실 테마별로, 작자 미상과 고흐를 포함한 화가에 대해, 조각이나 수집가 등과 같은 작품들에 대해 알게 된 지식들을 얘기하기도 한다. 한국어판에서는 특별히 QR로 저자가 이야기하는 작품이 무엇인지 바로 볼 수 있게 되어있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 작품을 보며 생각하는 감정들, 관람객들을 관찰하며 깨닫는 것, 동료들과의 일화를 통해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한 것이 묘한 위로가 되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생각의 정리나 상념, 온전한 고독을 위해 미술관으로 들어왔지만,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의 생각이나 마음가짐이 바뀌어가는 것을 솔직하게 적은 것이다. 대부분의 날이 어느 직장의 일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느껴진다며 이 상태가 나를 그리움과 후회로 가득 채운다고 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격렬한 애도의 끝을 애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내 삶의 중심에 구멍을 냈던 상실감보다 그 구멍을 메운 잡다한 걱정거리를 더 많이 생각한다. 아마도 그게 옳고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인간의 축복 중의 하나가 '망각'이라고 한다. 저자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미술관에서 수많은 작품과 저자들로부터 받은 치유로 다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그래서 미술관 경비원을 그만두고 새로운 직업을 구했다. 애도의 끝을 애도하는 저자의 아이러니한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겠지만, 언젠가 나에게도 닥칠 상실의 아픔을 미리 치유받은 것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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