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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 ㅣ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은, 차별과 성적 수치심을 참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젠 달라지지 않았느냐고? 천만에! 출산율과 함께 여자 아이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여자 아이는 태아일 때부터 목숨을 건 차별과 싸워야 한다. 여자로 태어난 아이는 대체로 얌전하고 싹싹하고 여자다운 아이로 키워진다. 왜? 남성이, 이 사회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여자 아이는 수많은 성적인 희롱들을 겪어내며 여자 어른으로 성장한다. 여학교 주변에 빈번히 나타나는 바바리맨의 쇼를 참아내야 하고, 버스나 지하철에서의 무수한 밀착과 끈적거림의 치욕을 견디면서 이겨내야 한다. 성장해서도 몸매와 얼굴로 평가하는 시선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낼 만큼 두꺼워져야 한다. 그런데 왜 꼭 참아야 하는 것일까! <비켜!>, <정신 차렷!>하고 당당하게 외칠 수는 없는 걸까. 아쉽게도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렇게 맞대놓고 용기있게 외치는 것을 부끄럽게 느끼도록 배우며 자랐다. 그렇게 만든 건 대한민국의 남자고, 이 땅의 부모이다.
젖가슴이 부풀어오르고 처음으로 브래지어를 하게 될 때, 초경을 하게 될 때 여자 아이들은 부끄러움과 두려움과 신비감과 어떤 알 수 없는 자랑스러움으로 혼란을 겪는다. 그 순간 성적으로 당당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기회를 부모는 얻게 된다. <우리 애가 생리를 했어!> 하고 호들갑스럽게 떠드는 부모도 있고 <이젠 너도 어른이 되었구나!> 하며 안아주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또는 <이젠 몸조심해라.>하고 엄포를 놓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어떤 대접을 받은 아이가 자연스럽게, 혹은 당당하게 자신의 성장을 받아들일까! 아이의 성격이나 가치관을 형성하는 일은 대단한 사건을 통해서가 아니다. 부모의 애정어린 말 한 마디이다.
이세상 모든 유진들의 부모들이 <네 잘못이 아니야!> <너를 사랑한단다>라고 끊임없이 아이편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리고 마땅히 들고일어나 상처를 준 나쁜 어른을 단죄할 수 있었다면, 그 상처는 넘어져 다친 상처처럼 쉬이 아물고 기억에서 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유진과 유진>. 같은 일을 겪은 같은 이름의 두 아이가 이렇게 서로 다르게 상처를 받아들이게 된 까닭은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대비된 시선 탓이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우리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 책의 울림이 멈추지 않고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이유는 바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성폭력은 성폭력 그 자체보다 그 일을 겪은 아이의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 때문이다. 큰유진처럼 좋아하는 사람의 손길에도 불쾌한 느낌을 갖게 되거나 작은 유진처럼 생리가 늦어지는 등의 몸의 변화를 겪기도 한다. 때론 어른이 되었을 때도 필요이상의 성적 수치심을 갖게 된다거나 아이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작은 유진에게 새로 뜨는 해가 정말 다를 수 있을까! 새로운 해 아래서 작은 유진은 새로운 유진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변해야 하는 건 작은 유진이 아니다. 변해야 하는 건 우리의 의식과 사회와 이 나라의 의식이다. 여자 아이든 남자 아이든 어릴 때부터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자란 아이가 나란히 서서 한 곳을 바라볼 때, 그때 뜨는 해가 비로소 새로운 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