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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현자
김상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군주된 자는 특히 새롭게 군주의 자리에 오른자는, 나라를 지키는 일에 곧이 곧대로 미덕을 지키기는 어려움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신앙심조차 잠시 잊어버려야 할 때도 잊다. 그러므로 군주에게는 운명과 상황이 달라지면 그에 맞게 적절히 달라지는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할 수 있다면 착해져라.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는 일이다. 일단 그렇게만 하면, 그렇게 하기 위해 무슨 짓을 했든 칭송 받게 되며, 위대한 군주로 추앙 받게 된다. - 마키아벨리 '군주론 중'
내가 아는 마키아벨리는 목적달성을 위해 때로는 잔인해져야 하고, 인간성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군주론을 제대로 읽지 않은 나 같은 사람들은 동의 할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무솔리니, 히틀러, 카스트로, 레닌, 스탈린 같은 독재자들이 숭배하는 극악무도의 상징으로만 알고 있었다. 워낙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기에 그의 대표 저서인 군주론은 읽은 가치 조차 없는 금서 취급당했다. 오죽하면 군주론은 세상을 망친 10권의 책에도 들어갈까? 특히나, 기독교 집안인 우리 가정에서 히틀러, 스탈린 같은 인물들의 큰형님격인 마키아벨리에 대한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친지들이 방문하는 민족의 명절 설에 마키아벨리를 읽다니... 처음에는 표지를 가린채 읽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마키아벨리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저자 뿐만이 아니라 나도 나서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김상근 교수의 마키아벨리를 읽지 않았다면, 마키아벨리는 앞으로 영원토록 (적어도 나에게는) 가까이 해서는 안될 인물로만 남았을 것 같다.

책 마키아벨리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오해를 푼 것이다. 마키아벨리를 생각하면 많은 분들이 군주론을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 마키아벨리를 떠올리면, 그저 권력욕에 눈이 멀었던, 미치광이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알게된 마키아벨리는 권력과는 전혀 동 떨어진 인물이었다. 대규모의 군사를 부릴 수 있는 장군도 아니었고, 이미 권력을 가진 왕도 아니었다. 그저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만의 방법(이 방법 때문에라도 권모술수의 달인으로 오해를 사기도 했다.)으로 출세한 하위 공직자였다. 물론, 상황이 틀어져 직위를 박탈당하고, 고문까지 당했지만, 이런 상황이 있었기에 군주론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나 싶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메디치가문에게 잘 보여서, 관직에 다시 진출하기 위해서 썼다고 한다. 물론, 결과는 그의 원대로 되지 못했다. 메디치는 들춰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대신 놀라운 것은 마키아벨리 사후에 벌어지는데, 당시의 지배층들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고, 그를 극악무도한 대명사로 몰고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책을 일반 서민들이 읽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그가 적은 군주론에는 치밀하게 서술된 지배권력들의 어두운 이면과 실체가 여실히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군주론은 마키아벨리 개인에게는 복직을 위한 하나의 헌정서였지만, 당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피지배급을 위해 치밀하게 쓰여진 일종의 조언서였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책 마키아벨리를 통해 얻은 두번째는 마이카벨리의 역전을 위한 방법이었다. 마키아벨리의 인생은 요즘 말로 하면 갑(甲)이 아니라 철저한 을(乙)이었다.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을 사보지도 못할 만큼 가난했다. 대학 교육도 받지 못했고, 어떤 자격증도 없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을 당당히 이겨내고, 피렌체의 외교를 담당하는 제2서기장이 되었다.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던 시대에 어떻게 마키아벨리가 권력의 핵심이 될 수 있었을까? 그는 대중처럼 행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 당장은 억울하고, 분하지만, 순간의 이익을 쫓아 쉽게 분노를 폭발시키지 않고, 참고 또 다짐하고 준비했던 것이다. 울지도 말고, 분노하지도 말자. 역사는 울보에게도, 분노한 자에게도 맡겨지지 않는다.라고 매번 다짐하면서 말이다. 상황의 역전은 처절한 인내과 철저한 준비에서 만들어짐을 배울 수 있었다. 마키아벨리의 삶은 흔히 이야기하는 우리네 삶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았다.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을 100% 사실인냥 믿고, 여기서 흥분, 또 저기서 흥분하고 감정을 표출하고 마는 우리네 삶을 말이다. 옛말에도 먼저 성내는 놈이 진다고 했다. 지금 당장은 1%를 위해 희생하는 99%의 한명이지만, 일단은 감정을 숨기고, 역전을 위해 침묵과 위장으로 준비하자는게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이었다.

두번째 방법은 고전에 있었다. 비록 옆에 있는 실질적 멘토는 아니었지만,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등이 남겨 놓은 고전에서 답을 구했던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든든한 백그라운도 없는 놈이 오직 공부와 책(고전)에서 힌트를 얻어 생존을 위한 싸움을 준비한 것이었다. 계급 사회가 끝났다고 하지만, 요즘 사회도 예전과 다를게 없다. 자비가 사라진 경쟁은 당연시되고 있고, 일반 서민들은 소히 은수저 물고 태어난 사람들을 평범한 방법으로는 이길 수도, 역전할 수도 없다. 골목상권까지 침범한 대기업들은, 상도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다. 그저 권력(돈)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겠다는 전투적인 자세다. 과연 어떻게 이 상황을 돌파하고 살아남을 것인가? 마키아벨리는 강자의 횡포와 압제에서 벗어나는 길은 참된 교육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네 교육은 어떠한가? 스스로 사고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대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요약하고, 정리하고, 잘 외우는 사람이 공부 잘하는 환경이다. 이건 말 그대로 권력자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고 공식이다. 혁신을 막는 한가지를 꼽으라면 스티브 잡스도 시스템을 꼽지 않던가? 이 틀을 깨야만 혁신과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혼탁했던 시대를 사는 피렌체 젊은이들에게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펼치라고 외치던 마키아벨리. 우리도 참된 교육과 고전에서 힌트를 얻어 생존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15세기 말 피렌체는 지금의 한국 사회와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제대로 된 리더는 오랜 시간 동안 부재중이며, 일반 대중들은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며 젊은시절을 낭비하기도 한다. 일부는 말도 안되는 선동가들의 꼬임에 넘어가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정부를 비판하기도 하고, 때론 우방국가를 비방하기도 한다. 물론,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도 모르고, 저자인 김상근 교수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을 인지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중심을 잡고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것. 이게 바로 마키아벨리가 원하는 삶, 저자가 원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싸움에 지치다보면 우리는 쉽게 포기한다. 개천에서 나는 용은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젊은이들에게 포기를 전하지 않았다. 그는 포르투나의 힘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지만, 이 모든 상황을 포기하지 말고, 탁월함과 용기, 즉 비르투스를 발휘하여 한번 붙어 볼 것을 전했다. 우리도 최선을 다해 보자. 성공과 실패의 확률은 언제난 50%니깐...
군주론을 제대로 읽지 않아서 일까? 어려운 부분도 있고, 처음 보는 내용과 인물들이 많아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그래도 마키아벨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탈리아와 유럽의 컬러 사진들이 삽입되어 있어서 그나마 재미 있었던 것 같다. 또한 마키아벨리에 대한 오해를 풀고, 이 어렵고, 혼란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약간의 지혜와 힌트를 얻은 것으로 만족한다. 아마 이 책을 읽는 분들은 마키아벨리가 진짜 전하고 싶었던 진정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