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어디에 있나요?
에이드리언 차이콥스키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엘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냉소를 주의해야 하는 시대지만, 인간이 인간에 의해 자멸하는 지금 시대에서 블랙코미디만큼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통렬하게 비판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다. 그러한 취지에서 ‘휴먼, 어디에 있나요?’는 여러 측면에서 장점을 지닌 블랙코미디이자 SF 소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도로 발달하다 결국은 자멸해버린 문명이 배경이며, 찰스는 그런 문명의 거의 최후까지 기능하던 기득권의 시종 로봇이다. 어느 날 주인이 사망하여 일자리를 잃은 후 존재론적인 고민과 맞닥뜨리고 삶의 목적을 찾아 멸망한 세상을 여행하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과 거의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로봇이라는 데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조건인데, 바로 그들 중 대부분이 목적 지향적 알고리즘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사회가 무너져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규칙을 따라 무의미하게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섬길 인간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굳이 굳이 봉사할 곳을 찾아 구천을 떠도는 주인공 로봇은 물론이며 물건을 줘야 하는 주체가 사라졌음에도 계속해서 화물을 옮기려 같은 루트를 맴도는 화물트럭, 같은 기계들끼리 더 효율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굳이 음성으로 사건을 추리하고 발언하는 형사 로봇과 같은 존재를 보고 있자면 역설적이게도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역할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한다. 그러다 결국 인간을 이런 존재로 찍어 내보내는 사회의 문제까지도 톺아보게 만든다.

사회 비판에 좀 더 초점을 두고, 과학 이론보다는 풍자 측면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작품이었다.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비슷한 결이라고 느꼈는데, 현대 사회를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다양한 조건을 배치하고 바라보면서 그것이 얼마나 황당한 행동인지 묘사하며 메타인지를 유발한다.
블랙코미디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아이러니와 모순을 제대로 바라봐야 하며 그 과정은 상당한 고난을 필요로 한다. 에이드리언 차이콥스키는 현대 사회의 안일함을 대변하는 캐릭터와 로봇들을 대비해 이 부분을 더 날카롭게 비판한다. 단순히 향후 사회의 향방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뿐 아니라, 보다 ‘깨어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안일한 구석까지 놓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작가의 날카로움과 고찰을 읽을 수 있다.

고도로 발달하고 파편화된 사회는 몸뚱어리가 유기물일 뿐, 본질적으로 로봇과 크게 다르지 않은 메커니즘으로 움직이며 역할 또한 비슷하다. 그렇다면, 지금 인간의 위치는 작중 로봇과 비슷한 가치를 점유하는 상황이 아닐까? 계속해서 나아가는 기술과 지구온난화 등의 조건을 보았을 때에는 실제 지구도 작품의 배경과 비슷한 결말을 맞이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문명이 사라졌을 때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의미한 짓을 반복하는 수많은 로봇들처럼 인간도 있지도 않은 자판과 스마트폰을 두들기며 거래처에게 연락을 하려 들지도 모른다. 작중에서 로봇은 고도로 발달한 사회의 일종의 종착지로 이해할 수 있다. 순환하는 자연처럼, 사회라는 가상세계는 아주 견고해지다 어느 순간 자멸하여 가리어진 실제 세계를 목도한다. 사회라는 세계가 존재의 전제조건인 기계는 이런 실존하는 세계의 새로운 생존 방식을 습득하지 못한다. 내가 약속에 의해 만들어진 ‘사람’이라는 존재이기 이전에, 하나의 몸뚱어리이며 실존하는 개인이자 집합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인류 또한 언젠가 같은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책에서 예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책은 여러 가지를 꼬집지만, 궁극적으로는 현재 인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의 무의미함을 노래한다. 서류를 가져다주는 기계도 한때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회사의 재화였을 것이다. 그러나 회사가, 그 회사를 지탱해 줄 사회가 무너지니 그 행동의 본질적 무의미함을 표방하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사회와 지위와 개인은 모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에 의해 지탱된다. 사람의 의미를 잊게 되면 제아무리 기술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결국 모든 가치는 무너지게 된다. 모두에게 다정하자는 책은 많지만, 이 책은 왜 모두에게 다정해야 되는지를 냉정하게 설명한다. 내 존재의 지탱에 필요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인간을 존중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