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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의 책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린책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대사회에서는 가족 중심적인 구조가 해체되면서, 외부로의 발설이 도외시되던 가족 내부의 불화와 고질적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다. 이와 관련된 문학도 수없이 많이 나오고 있는 이 판국에, ‘자매의 책’은 아멜리 노통브라는 직설적인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점에서 충분한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은 실험적인 설정으로 주목받은 경우가 많다. 드라마틱한 습성을 가진 인물이나 극단적인 스토리가 아멜리 노통브의 어떤 시그니처로 뽑히기도 하나, 이번 작품은 자전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인지 조금 독특한 디테일을 가졌을지라도 어느 정도로는 이해 가능한 선상의 캐릭터들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이전과 다른 조건임에도, 작가 활동을 하며 쌓아온 아멜리 노통브의 직설적인 서술은 여전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아멜리 노통브 특유의 사람을 빨아들이는듯한 집중력을 유발하는 문체는 여전하다. 무거운 내용에도 불구하고 마치 쉬운 노래를 듣듯 매끄럽게 읽힌다.
작가가 전에 사용하던 아이템을 재차 사용하기보다는 새로운 방식으로 전개하는 데에서 얻어지는 두 가지의 장점이 있다. 첫 번째는 어떤 개인이나 소규모 공동체가 아닌, 보다 더 큰 단위인 사회를 향한 비판이다. 물론 아멜리 노통브는 예전부터 비판적인 텍스트를 작성했으나, 이 책에서는 두드러지는 인물과 스토리가 일부 배제되며 시스템의 부조리가 전작보다 조금 더 극적으로 드러난다.
-“아이를 가져 보는 게 어때?” 사람들이 말했다.
“왜요?”
“사랑은 그러려고 하는 거 아냐?”_🔖10p
아이를 원하지 않는 부부에게 은근하지만 묵직하게 가해지는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주변의 조용한 강요를 읽으면 누구나 불행한 결말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 누구에게도 책임이 주어지지 않으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정상가족이 당연한 세상에서는 이런 요구가 강요도 범죄도 억지도 아니기 때문이다. 향후 불행을 짊어질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서로를 과도하게 사랑하는 부부가 자중하기를 바라서 아이를 가지라 말하는 주변인들을 보고 있으면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다.
나머지 하나는 공감이다. 언급했듯 이 작가는 유니크한 설정을 즐겨 썼기에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트리스탄과 동생인 레티시아는 또래보다 더 똑똑하고 예술적인 성향을 갖고 있기는 해도 ‘무관심한 양친에게 외면당하는 아이’, ‘방치하는 보호자를 대신해 서로 돌봐주고 신경 쓰는 형제자매’라는 특징은 그리 특이하지 않다.
책의 소개로는 주인공인 자매를 ‘극단적으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나, 실제 독자들 중 몇은 작중에서 묘사한 방치보다 더한 무관심 속에서 컸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랜 시간 육아에 관련한 관심이 미비했던 한국 사회에서 성장한 독자들에게는 굳이 문장과 단어로 설명하지 않아도 즉각 이해되는 어떤 미묘한 기류가 작품의 기저에 깔려있다. 이를 무의식중에 내재하고 읽을 때와, 그 기류가 학대가 완연한 가정의 특징이라 인식하며 읽을 때 아주 다른 작품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보아,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개성이나 서사라기보다는 정상가족이라는 틀에 사람들을 구겨 넣어 지속적인 문제를 유발하는 환경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그녀는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자신을 알아봐 줄 불꽃을 찾아 상대방의 눈길부터 살폈다. 눈길이 반짝이지 않으면, 남모를 공통점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다. 그녀의 눈빛이 잃어버린 불꽃의 자리는 깊이가 채울 터였다._🔖77p
어떤 방식으로든 방치, 학대를 당해 건강한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은 대부분 성장한 후 자신의 기질적 우울감에 의문을 표하고, 트라우마가 되기도 한다. 트리스탄이 말한 이 대목은 이와 비슷한 경험을 통해 지울 수 없는 우울감을 갖은 사람들의 감각을 통렬하게 잘 묘사했다고 느낀다. 객관적인 감각의 서술이자,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온전하게 빛날 수 없게 만드는 어떤 공허를 가진 사람들에게 바치는 건조한 위안이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