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하니 항상 홀로 쓰고 짓고 자기만의 시간을 즐겼던것 같다. 그때 나는 운동선수였으니 발발거리며 쏘다녔을 것이다. 두 키다리가 어울리는 시간은 적었어도 내 마음 구석에 인상이 깊이 새겨졌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 후 오년을 참지 못하고 사학년 때 도쿄에 가서 그림학교에 다닌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내심 깊이 감명을 받았다. 그 조용하던 사람이 어디서 그런 용기와 고집이 나왔을까 하고.
나와 영국과 공통점이 있으니, 그것은 현재까지 그림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국은 한마디로 고집으로 지내온 화가다. 그 좋은 고집을 나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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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는 행위이며 따라서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은 모든 자발적행위와 마찬가지로 그 수행에 구현된 의도의 복구를 요구한다고 나는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는 구식의 해석학이 믿도록 유도한 것처럼 신비한 감정이입의 과정이 아니다. 왜냐하면 행위는 다시 텍스트이며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상호주관적 의미를 구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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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리 emule에 의해 부착된 말은 활 프로그 부분의 너트(nut, 줄베개)로 조정할 수 있었다. 보다 큰 머리에 의해 균형을 이룬 이런개량 효과로 활의 탄력이 증가했다. 그 결과 바이올리니스트는 더큰 조절력을 갖게 되었고, 장력이 증가하여 레가토 legato (음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주법)에서 스포르찬도sforzando (특히 세게 란 의미로 하나의 음표에 갑자기 강세를 두는 주법)까지 연주 범위가 더욱 넓어졌다. 게다가 활의 늘어난 무게와 장력은 투르트가 시도한 또 다른변화(폭을 0.64센티미터에서 1.10센티미터로 늘림)와 함께 연주자에게 훨씬 더 강한 힘을 실어주었다. 실제로 이 새로운 활만이 스트라드의 완벽한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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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같은 ‘왕조(王朝)‘들은 좀 다릅니다. 중국 역시 처음에는 봉건제가 실시되었죠.(이 때는 ‘중국‘이라는 개념자체가 없었습니다만) 왕은 수도의 근처만 직접 통치했습니다. 이 직할지 (直轄地)를 ‘畿‘라고 했죠. 반 전(田)이 있죠? 지금 서울 근처의 땅을 ‘경기도(京畿道)‘라고 하죠.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 이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본도봉건제가 실시되었던 경우죠. 봉건제는 분권(分權) 체제입니다. 과거에는 지리적으로 교통이 불편하고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앙에서 사람들을 통제한다는 것은 힘들었어요. 그래서 작은 도시국가들이 발달하거나, 아니면 봉건제가 실시되었던 겁니다. 그러나 진시황과한무제를 거치면서 군현제가 실시되었고 거대한 ‘중국‘이형성됩니다. 모든 땅이 분할되어 군과 현으로 재편되죠. 이로서 집권(集權)의 형식이 성립합니다. 거대한 국가가 성립했던 겁니다. 군현제는 중앙집중제로서, 일사불란하게중국 전국토가 위계적으로 조직되는 체제였던 것이죠. 권력의 문제에 있어 분권과 집권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날은 바로 집권의 형태가 완성 단계에 접어든 상태입니다.
바로 ‘국가‘가 확고한 형태로 다듬어진 상태죠. 오늘날 일정 부분 변화가 오고 있지만, 아직은 여전히 국가라는 단위가 집권의 형태를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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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붕괴는 바로 자연직관(直觀 natural intui-tim의 붕괴를 뜻한다. 주권개인들이 나타남에 따라 인위적인 사회질서가 자연적인 사회질서를 대체하기에 이르렀으며, 그 결과 자연직관의 운공간이 소멸한 셈이다. 물리학의 세계에서조차 근대과학이 태동하면서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직관은 거부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왜지상의 물체들은 위아래로 움직이며, 왜 천상의 물체들은 원운동을 하는지를 자연직관으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하기를, 지상에서는 불과 공기 같은 가벼운 물체들은 위로 올라가는 한편, 물과 흙같은 무거운 물체들은 밑으로 내려간다. 가벼운 물체들은 높은 곳에서 보금자리를 찾고, 무거운 물체들은 낮은 곳에서 보금자리를 찾는다. 이렇듯물체들이 서로다른 곳에 보금자리를 잡는 까닭은 그렇게 하는 것이 본성에 맞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천체들의 원운동은 그들의 본성을 반영하고 있다. 원운동만이 천체의 영원성과 양립할 수 있는 까닭은, 원운동은영원히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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