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1918년 11월의 종전을 기다리지 않고 3월에 미리발을 뺐다. 서방 연합국들의 승리 덕분에 3월에 독일과 체결한 평화조약에 포함된 가장 가혹한 조건을 준수하지 않게 되었지만,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전쟁에서 먼저 빠져나온 것이 현명한 결정이었다는 판단을 절대 버리지 않았다.
볼셰비키적 관점에서 1차 대전은 자본주의가 낳은 필연적 부작용이었고, 볼셰비카들은 이런 전쟁에 절대 관여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분리할수 없는 근본적 병폐가 존재하는 한 이런 공포가 계속될 것이라는 관점은 소련에게 앞으로 일어날 다음 전쟁에서도 중립을 지키려는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볼셰비키들은 새로운 정권의 허악함을 고려하여 자본주의 국가들이 힘을 합쳐 소련과 싸우기보다는 자본주의 국가들이 서로 싸우도록 하는데 노력을 집중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소련의 방어적 자세는 모스크바에 복종하기로 한 코민테른, 즉 국제 공산당 기구의 국제적 촌극으로 가려졌다. 하지만 1926~1927년전쟁‘으로 촉발된 전쟁에 대한 대부분 소련이 스스로 만들어 낸 공포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1931년의 동아시아와 1933년에 유럽에서 발생한 진정한 위협"
에 대해 소련이 최대한 신중하게 반응하도록 했다. 바로 잠재적 적국들과 타협하는 한편 다른 나라들이 잠재적 적국들과 싸우도록 부추기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