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나 그림 그리기는 바로 이런 생각들을 종이 위에 옮기는 일이다. 그리고 음악은 그 생각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뿐이다.
잘못된 것은 그냥 내버려두세요! 경솔하고 무모하세요! 사자처럼. 해적처럼 되세요! 이제까지 쓰던 식으로 쓰세요.
위대한 사람들은 천박한 사람들이 느끼는 모든 것을 훨씬 더 명확하게 느끼고 인식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초월의 경지에 이른 듯하며, 천박한 인간들과 같이 느끼고 이해하지만 그들 위에 군림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글을 써가면서 점차 당신은 더욱 자유로워지는 법, 그리고 당신의 생각을 말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또한 동시에 당신은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않는 법, 즉 가식과 허세를 부리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오직 글 쓰기를 통해서만, 그리고 오랫동안 끈기 있고 진지하게행한 작업을 통해서만 당신은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해야 하는 걸까? 그 자아야말로 당신의 불멸의 정신이며, 영혼의 삶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진정한 자아를 해방시키고 존중하고 훼손시키지 않을 수 있다면, 또한 그 자아가활동하도록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더 행복해지고 더 위대해지는길이기 때문이다.
만족스러워. 오늘 나는 마침내 진정한 내 모습을 발견했어. 화려한 타입이야!"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진정한 자아는 마치 음악처그럼 움직이는 삶의 흐름이며, 변화하고 움직이고 실패하고 괴로워하고 빛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신은 글쓰기와 삶 모두에서 자유롭고 경솔하게 새로운 실수를 계속해야 하며, 그 실수들에 초조해하지 않으면서 그저 계속 나아가고 더욱 많이 써야 한다.
적극적인악이 수동적인 선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이다.
수동적인 선이란 단지 순응과 약함과 소심함일 뿐이다.
오늘 당신에게 진실인 것이 내일이면 전혀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은 더 나은 진실을 알게 될터이니까.
톨스토이, 체홉,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러시아 작가들을 나는 제일 좋아한다. 그들은 멋지고 세련된 표현이나 아름다운 단어보다는 진실을훨씬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 개인적으로는, 내용보다포장이 더 근사하고 의미심장한 글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 문학은 번역판조차도 훌륭한데, 아마 그 작가들이 스스로 느끼고 보고 생각한 것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잘 쓰려면, 그리하여 우리가 이야기하거나 관심을 갖고 있거나감동받은 것을 사람들에게 믿도록 하려면, 그 유일한 방법은 가식과 점잔을 벗어버리는 것이다. 내가 이것을 깨닫게 해준 한 사람들이 바로러시아 작가들이다.
이것은 당신이 추측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그 이유는 우리의 가식이란 무척 애매한 것인 데다가 종종 깊은무의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체홉의 말을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다.
단편이든, 무엇이든 당신이 원하는 것을 써야 한다. 정말이지 그래야만정직하고 기쁘게 쓸 것이고, 애써 타인들에게 실제의 자기보다 더 똑똑해 보이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실제의자기보다 더 똑똑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만일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 누구나 유리를 들여다보듯 훤히 볼 수 있고, 겉만 슬쩍 보고도 단번에 당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잘난 체한다는 걸 알 것이다
(하지만 이걸 기억하라. 당신의 글이 실제의 당신보다 더 총명하고 더 위대할 수 없기만 한게 아니라, 반대로 자신의 빛나는 개성과 재능을 무미건조하고 소심한 글이라는 구름 뒤에 숨길 수도 있다).
당신이 써내려가는 동안, ‘해야 한다‘는 의무조항들이 당신을 가로막지 못하게 하라. 예컨대 좀더 익살스러워야 한다. 좀더 급진적이어야한다. 좀더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닮아야 한다.
수많은 ‘해야 한다‘ 를 경계하라. 글은 그것을 말짱하드러낸다. 그것은 글을 망친다. 그런 글은 생생하지 않고 죽어 있다.
"이 문장은 정말 훌륭하네요. 당신의 진의가 잘 드러나 있군요. 하지만 이 문장은 죽어 있습니다. 이건 선생을 의식하고 쓴 문장이에요. 저의가 엉큼하군요, 선생을 깜짝 놀라게 만들고 싶어하다니요! 언제나 당신이 생각하는 것을 쓰세요."
달리 말하자면, 광고문 작가처럼 글을 쓰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종종이 나라에서 얼마나 엄청난 돈이 광고에 소모되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광고회사들은 몹시 총명하고 재기발랄한 젊은이들을 고용하여 자기네들을 위해 글을 쓰게 한다. 그 문장은 하나도 반복할 가치가 없다.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것은 진심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글의 목적은, 작가가 느낀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당신이 단순하게 느끼면느낄수록, 더욱 훌륭하고 효과적으로 쓸 수 있다) 오로지 사람들을 자극하고 전혀 무관심했던 것들을 근사하게 여기도록 설복하려는 것이다.
수많은 ‘해야 한다‘를 경계하라. 글은 그것을 말짱히 드러낸다. 그것은 글을 망친다. 그런 글은 생생하지 않고 죽어 있다.
두 작품 다 위대한 문학이다. 왜냐하면한 위대한 인간이 무언가를 생각하고, 그런 뒤 자기 생각을 최대한 정확하고 정직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관해 톨스토이가 한 말에서 나는 무척 도움을 받았다. 아마도 그것은 당신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로, 귀여운 일곱 살짜리아이가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쓸 수 없는 이야기란 이 세상에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자주 이 말을 생각해보는데, 그건 늘 지침과 도움이 된다. 방금 나는 톨스토이 책 한 권을 끄집어내서, 그가 정말 자신이 옹호한 방식대로 썼다는 걸 확인한다.
소설을 쓰고 있다면 당신은 등장인물을 옹호하지 말아야 한다. 그까담은 바로 삼차원 때문이다. 당신은 절대 그토록 많은 단어들로 "이 여주인공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를 보라. 남주인공은또 얼마나 멋있고 용감한가!" 하는 식으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그런 방식이 효과적이라면 그렇게 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골칫거리는, 당신이 여주인공을 멋있다고 말하려고 노력할수록 오히려독자들은 그녀를 더욱 미심쩍게 바라볼 것이라는 점이다.
독자들은 당신이 무언가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당신이 상상력을 통해 그녀를 현실적이며 살아 있는 사람으로 명확히 보지 못하고, 도리어 자신들에게 그녀의 가짜 모습을 믿게 하려고 애쓴다는 점을 알아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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