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가 걸어오다
박신일 지음 / 두란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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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은혜가 걸어오다'라는 제목만큼이나 '하나님의 은혜가 나의 불행을 이긴다'는 부제가 마음에 와닿는다.


문장을 읽는 즉시 영원할것만 같았던 나의 불행한 순간들이 떠올랐고, 정말 그 불행까지도 다스려 선하게 사용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할 수밖에 없는 내 인생에 잘 어울리는 문장이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나와 너무 닮아있는 '야곱'에 관한 얘기다.

속이는자, 도망자, 은혜입은 자 라는 세 개의 쳅터 안에서 이기적이고 욕망에 가득찼던 야곱이 그의 인생을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나에게 이미 익숙한 야곱 이야기이지만 
책을 읽으며 몰랐던 부분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놓쳤던 부분에서 깊은 묵상을 할 수도 있었다.







'은혜가 걸어오다'를 읽으며 꼽은 나를 복음으로 살게 한 문장은 이렇다.

"우리는 안장 밑에다 죄를 숨기고 깔고 앉은 죄인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이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이를 낳다가 죽은 라헬이었습니다. 이 죄인이 살려면 대속물이 필요합니다. 그 대속물이 암양 라헬입니다. 이 라헬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사야 53장에 라헬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우리의 완전한 대속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죽음심으로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보여주는 야곱과 라헬의 결론입니다.(p.158)"




라헬과 예수님을 연결시켜 해석한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고, 결론 역시 은혜가 되었다.

성경에서 라헬은 히브리어로 암양(female sheep, ewe)이라는 뜻인데 
이사야 53장의 '털 깍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에서도 이 라헬을 의도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암양으로서 라헬이라는 단어의 첫 번째 사용이 죄로인한 죽음을 나타냈다면,
이사야 53장의 죄악을 담당한 어린양 예수는 우리 죄를 담당할 완전한 대속물로서 죄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자신이 죽는 것도 모르고 있는 라헬과 같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은 흠이 없고 완전한 라헬을 준비하셔서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셨다(p.156)"







1. 속이는 자

처음, 야곱은 팥죽 한 그릇으로 에서를 속여 '장자권'을 빼앗았고, 아버지 이삭을 속여 에서로 변장하여 축복을 빼앗았다.


2. 도망자

자신을 죽이려는 에서로부터 도망쳐 밧단아람의 라반에게로 간 야곱은
거기서 라헬을 얻기위해 7년을 봉사하지만 라반의 속임수로 레아와 결혼, 결국 7년을 더 일하기로 약속하고 라헬을 얻는다.

속이는 자 야곱은 '뛰는놈 위에 나는 놈'인 라반에게 제대로 속임을 당하여 힘겹게 그를 위해 일하면서도 품삯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고된 삶을 산다.


3. 은혜입은 자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라반을 떠나 다시 벧엘로 갈 것을 명령하시고, 그에게 함께하고 지키실 것을 약속한다.

그의 두려움의 근원이었던 에서와의 상봉도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그렇게 험악한 세월은 견딘 야곱은 '이스라엘'로 칭해지며 훗날 이스라엘의 총회를 이루는 12지파의 아버지로서 세워지는 은혜를 입는다.





나도 야곱처럼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늘 무언가를 계획하고, 내 뜻대로 쟁취하기 위해 모든 걸 바쳤었다.

하지만 야곱의 인생처럼 나 역시 이제서야 인생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만들어져가는 것임을 깨닫는다.

내 삶은 지금 중반쯤... 와 있을까? 
잘 모르겠다.


많은 아픔과 고난을 겪고서야 나는 내 뜻을 내려놓았다.
그럼에도 야곱처럼 아직도 죄악된 본성이 남아있어서, 여전히 매일 '은혜 위에 은혜'를 구하며 살아가야 하는 연약한 죄인이다.

하지만, 이제 내 계획대신 하나님의 뜻을 더 신뢰하고
지금은 막막하고 해결될 수 없을 것 같은 내 문제들까지도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드리며

그저 하나님만 의지하는 지극히 '단순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를 날마다 구하고 바란다.





박신일 목사님의 말처럼 '죄송한 은혜'를 구하는 나는,

이제 막 돌아서서 주님께로 걸어가는 탕자의 귀향길에 서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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