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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은 실제하던 유전 이론과 러시아의 근대 인물, 역사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사실.. 획득한 형질은 유전된다는 이론은 처음 들으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싶지만,
리센코 후작의 주장을 계속 접하다 보면 진화론 적으로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소설에 빠져 들면서 나도 모르게 점점 실험체가 되어버린 아이들을 응원하게 되는 거지.
추위에 강한 형질을 획득해 초능력을 갖길 바라게 되는 거다.
'견뎌내, 그래야 거기서 벗어나지 않겠니? 강철전사가 되어 다 때려부수고, 나와서 잘 살아보자꾸나'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살아남은 개체의 유전자가 전승되어 진화하는 것이지..
유전자가 노력으로 연마돼 유전 되는 건 아니니.. 맞지 않은 이론이니... 아이들의 끝은 처참했다.
그리고 러시아 왕국의 전복을 꿈꾸는 이 흉폭한 사내, 케케의 정체를 알게 되면 ...
어? 어~??? .. 까암짝 놀라게 된다.
이렇게 실제인물에 덧씌울 수도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감탄이 나오는 거지. ]
사내에게 형제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때 사내의 아버지를 유추할 수 있게 되면서..
초능력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악만 물려 받은 사내에게도 기대를 버리게 되지만..
소설은 계속 나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처음 제목 <악의 유전학>을 보곤 악이 유전된다는 걸까? 생각했다.
다 읽고 나니 악이 유전된다는 걸 수도 있겠고,
어떤 유전학은 그 자체가 악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실제로 인류의 발전을 명목으로 이기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학살의 수단으로 유전학이 쓰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과학이 윤리를 벗어나는 순간, 그것은 모든 인류의 적이 되고 말 것이다.
사실, 처음 남자의 은행강도 행각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조금 읽기 힘들었지만, (그래서 이때 좀 많이 쉬었다 ㅋㅋ)
어머니의 과거를 따라가는 액자형식의 이야기 구성에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갔다가..
정신 못 차리고 끝까지 한 번에 다 읽을 수밖에..
문체 자체가 이야기속에 완전 빠져들기 보단 관망하는 것마냥 지켜보게 만들기 때문에,
끔찍한 상황 묘사를 해도 덤덤하게 읽게 만들지만 그게 오히려 나중 더 끔찍한 상상을 하게 한달까.
게다가 뒤에 나오는 사내의 모델이 된 인물의 말들과 러시아 역사 연표를 비교해서 소설을 복기하면 ..
더 소름이 끼친다.
정말 이런 실험이 있었을 것 같고.
우생학에 입각한 독일 나치의 만행이나.. 일본의 731 부대의 실험들을 생각하면 허무맹랑한 상상이 아니라 정말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너무 많은 사건사고에 피로도가 높아 웬만한 일에 모두 시큰둥한 요즘,
신선한 충격을 준 소설이어서..
게으른 집필에 활력을 주입할 수 있을 것 같아, 읽기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 내용이 내용이니 만큼 가슴이 휑한 여운은 어쩔 수 없다.
다만,
케케 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달려 끝에 도달하긴 했으나..
뒤에 사내의 정체와 이후 활동이 휘리릭 게 눈 감추듯 전개 되기 때문에..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건지, 뭘 봤어야 하는지, 내가 무얼 느꼈는지.. 좀 감이 안 잡히는 면이 있다.
좀 허무하달까.
주인공이었던 케케가 능동적으로 뭔가 한 것은 하나도 없어 주인공 같지 않고, (당연히 어린 아이니 그 상황에서 그랬겠지..),
그렇다고 아들인 사내가 이 유전 실험으로 인해 대단한 무언가를 얻은 주인공 인 것 같지도 않고.
이 소설의 주인공은 리센코 후작같아 보인단 말이지. 뭔가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으나 끝내 실패하고 말지만 말이다.
그리고 사내가 악을 유전 받았다고는 가정하기는 하나.. 심성마저 유전이라고 한다면 너무 살기 힘들지 않을까.
사이코패스마저 유년기를 잘 보내면 .. 범죄자가 될 확률이 현저히 줄어든다는데..
어려움을 벗어난 케케의 부부가 잘 기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얘는 왜 이렇게 된 건가. 정말 유전인 건가?
싶기도 하고.
주인공이 케케에서 사내로 넘어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 짐작하게 된 사내의 이야기가 조금 더 진행 돼, 갈등하지만 끝내 악을 선택하고야 마는 사내의 이야기가 좀 더 진행 됐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물론 실제 인물이었기에 악당에게 딜레마 서사를 주는 기분이라 좀 그렇지만.. (요즘 추세는 악당에게도 절절한 서사를 주는가 싶기도 하고)
여하간 좀 허무한 결말이었달까.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감상.
재미있게 읽었으니 참독서 성공!
작가님의 다음 작품이 기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