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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 개정판
이황 지음, 이장우.전일주 옮김 / 연암서가 / 2011년 4월
평점 :
버스 탈 때마다 한 장씩 내는 천원짜리 지폐. 거의 매일 한두번은 보지만 정작 지폐 속의 인물인 퇴계이황에 대해 물으면 말문이 막힌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란 노래를 알고 있는 사람은 주리 이퇴계~라고 말할 테지만 정작 주리가 뭐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기가 어렵다. 그렇다. 그 분은 일반인이 이해하기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주리론을 내세우신 조선시대의 유명한 성리학자셨다. 주리론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나같은 사람을 위해 이황의 업적을 딱! 한장으로 요약해 놓은게 천원짜리 지폐인 거 같다. 그 앞면에 퇴계 이황과 명륜당, 매화 그림이 있고, 뒷면에는 도산서원이 있다. 성균관 내에 자리하고 있는 명륜당은 퇴계선생님이 조선시대 성균관 으뜸 벼슬인 대사성을 지냈던 곳이고, 매화는 선생님이 평소 아끼셨던 꽃이다. 그리고 선생님은 50세 이후에는 도산서원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며 저술활동을 하셨다고 한다. 이 책은 이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저 풍광좋은 산 속에서 고고히 앉아 연구만 할 것 같은 학자 이황을 하산시켜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풀어놓는다.
이 책은 퇴계 이황선생님이 40세부터 55세까지 맏아들 준에게 보내는 편지를 엮은 것이다. 읽는 내내 꼭 여자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계획된 시간에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답답해 하고, 매사에 늘 세심히 계획을 세우고, 직접 일일이 할 일을 지시하고, 영수증을 꼼꼼히 챙기고, 가정대소사나 식구들을 세심히 챙기는....... 꼭 A형 여자같다고나 할까? 아무래도 어머니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생후 7개월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이황이기에 어머니께서 자신에게 가르치셨던 것들이 습관이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교육으로 형성된 습관이 훗날 이황의 편지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늘 자식 걱정에 노심초사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듬뿍 담긴 편지들......
먼저 이황은 시골에 가면 할머니들이 집에가서 먹으라고 뭔가를 바리바리 싸주시듯, 아들에게 손자에게 며느리에게 편지를 보낼때마다 뭘 꼭 싸서 보낸다. 손자에게 줄 가죽신, 붓, 며느리에게 줄 분이랑 빗, 귀걸이, 아들에게 보내는 귀마개 기타 먹을 것들...... 이런 것들을 직접 세심하게 챙기는 이황~ 이런 시아버지 너무 멋지시다.
이황은 시간에 굉장히 예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식을 기다리는데 천재지변이나 기타의 사정으로 늦어지면 "기다리기 어렵고 어렵구나."라며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고, 자신이 사정을 확실히 알기 전까지는 걱정하고 또 걱정하며, 염려하고 또 염려하는 삶을 산다. 아들의 과거시험이나, 학업문제, 제사나 하인들의 문제, 농사문제까지 하루라도 걱정이 멈출날이 없다. 늘 걱정을 달고 사는 그의 성격이 그의 가름한 얼굴의 비결인지도 모르겠다.
이황은 역시 학자답게 아들과 손자의 학업에 지속적인 훈계를 한다. 요즘처럼 경쟁이 심한 시대에 적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공부법! 이책 저책 많이 읽기만 하는 것은 좋지않고 책한권을 봐도 읽고 암기하고 다시 복습해서 완전히 내것을 만들라고 말하고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혼자공부하는 것보다 의지가 강한 친구들과 함께 스터디를 하라고 권유한다. 사실, 아들에게 공부하란 소리를 너무 자주해서 아들이 좀 피곤하겠다 싶기도 했지만 이 편지들이 몇달에 한번씩 쓴것임을 감안하면 한눈 팔 때쯤 되면 한번씩 적당한 자극을 주는 것 같다. 한편으로, 이황이 요즘처럼 교통통신이 발달된 시대에 살았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봤다. 왠지, 매일같이 전화해서 오늘공부한 내용을 물어보실것 같은 예감이!!!
편지는 그냥 말보다 몇배의 감동과 여운이 있는 거 같다. 잔소리로 들어 넘길 말도 뭔가 편지에 적으면 내 마음이 받아들일 준비가 됐을 때 다시 꺼내보고 마음에 새길 수 도 있을 것 같다. 부모님과의 대화가 많이 부족한 현대의 가정에 이황과 그 아들 준이 주고 받는 편지는 작은 도전이 된다. 손으로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이는 것, 누군가의 편지를 받는 기쁨을 누려본 기억이 까마득하지 않은가? 오늘 나의 아이에게, 부모님에게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