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위한 미움받을 용기 - 아들러 심리학의 성장 에너지
기시미 이치로 지음, 김현정 옮김 / 스타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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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때가 있다'라는 말을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왠지 불안하고 조급해질 때 이 말을 떠올리면 괜스레 느긋해지고 여유로워짐을 느끼곤 합니다. 뒤늦게 했던 공부도 다 때가 있음을 체험하게 해 주었고 늦은 나이에 천생연분을 만나다 보니 결혼도 때가 있음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요즘은 커가는 아이를 통해 느낍니다. 남들 다 걷는데 걷지 못할 때나, 남들 말하기 시작할 때 엄마 소리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를 보며 때가 오겠지, 기다렸고 지금도 아이는 다른 아이들의 페이스와 다른 속도로 그때를 보여주기에 느긋하게 참고 기다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육아가 힘든 건 엄마의 마음이 너무 앞서가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아이는 아직 때가 아닌데 엄마 혼자 저만치 가 있으니 육아가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요. 아이의 발육 정도나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거나 진로 선택에 있어서도 너무나 높은 기준을 세우고 부모가 미리 앞서가 있어 그 틈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나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아이와 보조를 맞추고 나란히 걷되 절대 앞서지는 말자고 다짐하게 됩니다. 최근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를 읽으며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 짧게 언급이 되어 좀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여 <엄마를 위한 미움받을 용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아들러의 심리학에서는 관계에 주목합니다. 엄마와 아이의 관계에 따라 육아에 대한 관점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아이를 대등한 인격으로 보고 존경하고 전폭적인 신뢰를 통해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사고하고 행동하는 아이로 성장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엄마의 과제와 아이의 과제는 분리되어야 합니다. 아이가 소유물이 아니기에 혼을 낸다거나 칭찬하는 전통적인 육아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용기 부여를 하고 자립하는데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왜 기존의 육아 방식을 거부할까요? 전통적 육아 방식은 아이를 수직관계에 놓고 나쁜 행동에는 혼을 내거나 잘한 행동에는 칭찬을 하는 것인데요, 아들러의 심리학에 따르면 혼도 내지 말고 칭찬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혼을 내게 됨으로써 아이들은 주목받고 싶어 해 나쁜 행동을 계속하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혼을 내면 당장은 나쁜 행동이 고쳐진 것 같지만 부모에게 혹은 학교에서 주목받고 싶으면 언제든 똑같은 행동이 반복된다는 식입니다. 혼내기보다는 평소 용기 부여를 통해 스스로 공헌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더불어 지나친 칭찬도 육아에 좋은 것 같지 않습니다. 칭찬을 해 주다 보면 아이들은 어떤 행동을 함에 있어 자발적인 동기 부여가 아닌 보여주기식이 되거나, 잘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한 행동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럴 경우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도 사라질 것이고 힘든 것은 피하려고 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겠지요.
문제행동을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은 다릅니다. 관계에서 풀어야 한다고 하지요. 예를 들어 학교에서의 문제행동은 학교에서 교사나 학생들과의 문제라고 보지요. 마찬가지로 집에서의 문제 행동은 가족 간의 어떤 문제가 있어서 나타난다고 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요. 학교에서 문제아는 가정 내 불화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부모와의 애착이 덜 되어 그렇다고도 하고, 가정이 화목하지 않으면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다고 보는 식이지요. 집에서 잘 지내던 아이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먼저 의심을 하게 되죠. 저자는 그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애착이 덜 되어 있다고 해서 가정이 화목하지 않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라고 해서 다 비뚤어지고 문제아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과거에서 원인을 찾으면 문제행동을 개선할 수 없다고 해요. 인간관계의 틀 안에서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아이 행동이 학교에서 교사를 상대역으로 행해졌음을 이해한다면 가령 아이가 가정에서 애정 부족이라고 해도, 학교에서 행동과는 적어도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논리적입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의 틀 안에서 아이 행동을 봄으로써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알 수 있습니다." (본문 67쪽)
전통적인 육아 방식에 대해 아들러의 심리학이 설명하는 바는 솔깃하고 납득이 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의 행동을 관계에서만 이해하는 것은 여전히 의문입니다. 가정 내 육아 방식이나 환경이 인간관계에 혹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할 수 있을까요. 가정불화나 가정 내 폭력의 트라우마를 가진 아이들이 다 잘못되는 건 아니지만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다는 사례도 보고된 바 있습니다. 부모와의 애착관계 또한 영향이 아예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에서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숙제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라는 말도 합니다. 한 인간으로 자라는 데 매번 정답이 있다면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엄마를 위한 미움받을 용기>를 이해하는 것도 나에게는 숙제인 것 같습니다.
일본의 유치원생들 원복을 본 적이 있는데, 추운 겨울에도 반바지를 입습니다. 1년 내내 반소매 반바지를 입는다고 보면 되는데요.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참 의아할 때가 많아요. 어린 꼬마들이 허벅지를 퍼렇게 내놓고 다니는 것을 볼 때마다 안쓰러웠습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어릴 때부터 강하게 키우기 위해 추운 겨울에도 반바지를 입힌다고 해요. 그렇게 하면서까지 유치원생때부터 혹독함을 경험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왠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육아의 법칙이 있는 것처럼 아이들을 대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 않나 싶어요. 저자도 유치원생 아들의 자립을 시킨다며 얇은 옷은 춥다는 사실을 스스로 체험하기 위해 1년 내내 반바지를 입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시대적, 문화적인 견해차는 육아에도 분명 존재할 거라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아이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부모라면 이럴 땐 이렇게 하고 저럴 땐 저래야 한다는 복잡한 원칙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바라는 기대나 부모의 욕망이 아니라 아이가 원하고 바라는 것에 대해 먼저 들어줄 수 있어야겠지요. 좋은 관계는 한쪽의 잣대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충분히 스스로 사고하고 성장하고 자라갈 것입니다. 어딘지 부족한 엄마, 어딘지 빈틈이 많은 아이, 그게 더 자연스러워 보이고 인간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가끔은 큰소리로 혼도 내고, 깜짝 놀랄만한 일에는 칭찬도 하면서 말이지요. 사람은 세상 ' 속'에 있지만, '중심'은 아닌 것처럼 부족한 부모의 모습을 하고 살아간다고 해도 충분히 좋지 않을까 묻고 싶습니다. 그것이 세상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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