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문화 탐사 - 在英 저널리스트 권석하의
권석하 지음 / 안나푸르나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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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화를 알고 이해하려면 그 문화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머릿속으로만 알고 이해하는 것이 직접 보고 느낀 것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늘 낯선 곳을 동경하고 언젠가,라는 꿈을 꾸기도 한다. 때로는 어디선가 보았던 사람들의 흔적들을 따라가 보기도 하면서. 여의치 않을 땐 여행 서적들을 곁에 두는 것으로 위안을 삼기도 한다.

대개의 여행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봐야 할 곳, 보이는 것들에 주목한다면 저널리스트 권석하 님의 <유럽 문화 탐사>는 삶이 곧 문화가 되고 그 문화 속에 숨은 거장들의 삶에 주목한다. 유럽의 문화 속으로 녹아든 역사, 더불어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문화는 살며 사랑하고 살아가는 인간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화가로는 모네, 반 고흐, 피카소, 문인으로 빅토르 위고, 셰익스피어, 괴테, 에밀리 브론테, 톨스토이, 헤르만 헤세, 찰스 디킨스, 오스카 와일드, 제인 오스틴과 버지니아 울프, 음악가로 바그너, 비틀즈, 헨델과 바흐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길이 남을 거장들의 삶과 죽음, 사랑과 열정, 도전과 좌절, 슬픔과 분노 등 그 인생의 흔적을 따라 유럽 곳곳의 문화적 풍경을 담아낸다. 작가들이 살았던 곳곳을 세세하게 담아낸 사진들이 눈을 즐겁게 할 것이고, 생애에 녹아든 숨은 뒷이야기들은 귀를 솔깃하게 한다. 그리고 안다고 생각했지만 몰랐던 거장들을 다른 시각으로 만난다.
연인이자 아내로서 모네의 단골 모델이 되었던 까미유의 슬픈 사랑을 담은 이야기 때문인지 모네의 작품에 남모를 애틋한 정도 느껴지고, 자신의 위대한 그림조차도 슬픔의 통로가 되지 못 했던 불행한 삶을 살다간 고흐의 삶과 자살한 사람들의 방은 수리하거나 세를 놓지 않는다는 관습 때문에 금방 고흐가 죽어 나간 거처럼 보인다는 곰팡이 냄새가 나는 얼룩진 방의 풍경은 작품을 더욱 애잔하게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잔 다르크와 얽힌 정치적 음모는 역사를 다시 보게 될 것이며, 셰익스피어 진위 논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왜 셰익스피어가 우리가 아는 셰익스피어가 아닌지 그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유난하게 총명했던 여류 작가들의 짧은 생과 비극적인 삶은 작품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존재 목적과 음악과 스테인드글라스의 그림이 지상 천국을 체험하게 하는 당시 신자들을 위한 배려였다는 것도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비밀의 정원을 가지고 있다. 이 방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비밀과 고흐의 문제를 같이 연결해서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 그것은 이 방이 빈방이어야 하는 이유이다." (본문 55쪽, 라부 여인숙을 지키는 얀센과의 인터뷰 중에서) ​

거장들이 나고 살았던 곳은 어떤 곳일까. 공통점을 찾아본다면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며, 화려하지 않고 오히려 소박하다. 모네의 혼이 담긴 에뜨르따, 고흐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시골 마을 아를, 잔 다르크의 도시 루앙,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 포드, 영국 걷기의 심장과 영혼이라고 불리는 영국 사람들이 사랑하는 호수지방, 브론테 세 자매가 살았던 척박한 시골 동네 하워스, 위대한 작품을 낳은 헤세의 정겨운 고향 칼프 등 자연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느리게 사는 삶과 여유의 진수를 보게 된다. 분명 낯선 공간임에도 저자의 호기심이 보여주는 거장들의 삶과 흔적들은 더없이 친근한 곳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소박하지만 그들의 생을 닮은 그곳에서 모네는 아내 까미유를 모델로 우직한 그림을 그렸고, 고흐가 누비고 다녔던 골목에서는 고흐가 여전히 그곳에 있을 것만 같다. 셰익스피어를 낳은 스트랫 포드는 희곡의 대명사가 되었고, 톨스토이의 고향은 방문객들이 쉬어가는 쉼터가 되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외롭고 바람 부는 언덕에서 에밀리 브론테는 히스 클리프를 탄생시켰고, 햄프셔의 아름다운 전원에서 제인 오스틴은 세상에 반기를 든 조용한 혁명가가 되었다. 윌리엄 워즈워스는 아름다운 그곳에서 낭만파 시를 썼으니 이쯤 되면 위대한 작품이 작가의 머릿속에서 그냥 나오는 것도 아닐 테지만 아무 데서나 불쑥 나오는 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작품은 환경의 산물인 것이다.
​깨알 같은 연구에 대한 정보도 흥미롭다. 연구가들이 밝혀내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이 책의 감초와도 같다. 예를 들어 모네의 편지를 토대로 <에뜨르따 절벽의 일몰>을 그린 정확한 시간과 위치를 읽어내는 것이 그렇고, 언어의 마술사라 일컬어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정확한 단어 수나 연극에 몇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놀라움을 자아낸다. 삶과 더불어 죽음에 얽힌 흥미도 놓치지 않는다. 사회에 끼친 영향에 따라 무덤의 크기나 안치된 장소에 따라 어떤 대접을 받는지도 보게 되고, 사후 대접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기도 한다. 너무 대단한 삶이라 죽어서도 마음처럼 묻히지 못하는 작가들도 많고, 위대한 업적과 다르게 너무나 소박한 무덤까지 삶뿐만 아니라 죽음까지도 남다른 풍경이 또 다른 재미를 더한다.

황홀한 여행이었다. 단숨에 읽어버리면 아쉬울 것 같아 아껴서 읽었다. 유럽의 문화를 느끼고 싶은데 여의치 않을 땐 이 책이 알찬 동행이 되어줄 것이다. 괴테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세상에는 특별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이 관점에 달려있다고.'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작품들이고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작가들을 찾아 떠난 여행이 특별한 것은 없을지 모르지만 작가가 무엇을 느끼고 담고자 했는지에 따라 충분히 특별해질 수 있음을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거장들의 숨결을 느끼며 유럽의 문화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다. 하지만 안다. 이 짧은 기간의 느낌으로 새롭게 작품들을 만나며 많은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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