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 빈부격차 확대를 경고하는 피케티의 이론 만화 인문학
야마가타 히로오 감수, 코야마 카리코 그림, 오상현 옮김 / 스타북스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흥미로운 설문이 뉴스 기사에 뜬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고 조사됐다고 한다. 돈이 돈을 낳고, 돈이 있어야 공부도 잘하고 성공도 한다. 돈이 그 사람의 부와 지위뿐 아니라 성격도 만든다. 가진 것이 많으면 한없이 너그러워질 수 있어 주변에 친구도 많지만 가진 것이 없으면 주변에 친구도 없다. 설마 하겠지만 슬프게도 우리 현실이다. 잘 사는 사람은 대대손손 계속 잘 살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고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거엔 그래도 개천에서 가끔은 용도 나오고 했는데, 이제는 용이 나오기 힘들단다. 만약 그렇다면 열심히 살아야 하는 당위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흥미로운 경제학자가 있다. 토마 피케티. 최근 <21세기 자본>으로 전 세계적 주목을 받으며 세계 경제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세계에서는 격차에 대한 관심이 높다. 경제 성장이 모든 문제의 답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어왔지만 시장경제에 맡겼던 부의 분배는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 그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책이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다. 그는 경제 성장을 기대하고 자본주의를 방치하면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고 주장한다. 근거로 세계 각국, 200년 이상의 데이터를 15년에 걸쳐서 조사 연구한 성과가 <21세기 자본>에 나오는 r(자본 수익률)>g(경제성장률)라는 부등식이다. 노동자가 생산성을 높이는 속도가 자본이 증식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역사적 사실을 보여준다.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이 피케티의 이론을 보다 알기 쉬운 만화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비교적 이해하기 쉬웠던 만화라서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읽다가 스스로에게 질문도 던지게 된다. 우리 경제에 늘 r(자본 수익률)>g(경제성장률) 부등식이 성립한다면 노동자들에게 희망은 전혀 없는 것일까. 태어나면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사람과 평민과의 격차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면 왜 힘들여 노동을 해야 할까. 그저 주식을 해서 목돈을 만드는 것이나 부동산 투자가 노동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 피케티가 궁극에 말하고자 했던 것은 그 격차를 억제해야만 하고 국가 차원의 거시적인 정책이 세계 경제에 반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자기 나름의 자본과 노동의 밸런스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격차를 줄이고자 하는 노력과 정책에 대한 요구도 격차를 줄이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격차란 근본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격차를 없애기 위해서는 세금 제도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기능 보급과 교육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육아 지원과 실업 보험은 어떻게 할 것인가? 또한 EU는 혼란이 거듭되는 유럽 지역을 앞으로 어떻게 운영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개인 혼자서 노력해 어떻게든 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국가 정책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피케티가 주장하는 빈부격차를 줄이는 방법으로 세계적 누진자본세를 언급한다. 얼핏 이상적일 수도 있겠다. 오랜 세월 시장경제에 익숙해진 우리 경제에 낯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피케티는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쩌면 부의 격차 문제는 그 격차를 해소할 의지가 있는지에 달려있는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피케티가 바라는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험난한 과정도 있을 것이고 큰 파동도 겪어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모든 해결의 시작은 문제의식을 갖는 것부터가 아닐까 한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세계 경제에 던지는 문제 의식이라면,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경제하면 어려운 분야이고 나 몰라라 했던 스스로에게 던지는 깨우침의 선물이다.

산다는 것은 먹고사는 일이기에 우리는 좋든 싫든 노동을 한다. 다들 자기 자리에서 맡은 임무를 수행하며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자신이 불평등한 환경 속에서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다고 해도 힘들게 얻은 자리를 박차고 나올 용기조차도 없다. 정년퇴직까지 붙어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이마저도 없다면 곤란할 것 같아 무턱 태고 노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100세 시대라는데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해진다. 늙어서 지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연금도 들고 있지 않다. 그런 위기감을 늘 안고 살아간다. 만약 그런 상황에 스스로를 계속 놔둔다면 부의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당장의 필요에 의한 노동도 중요하겠지만 자본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공부나 투자, 노력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중산층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중산층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데, 중산층이 없으니 나라가 제대로 잘 살 수가 없다. 격차를 억제하는 데에 전 세계가 한마음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피케티가 주장하는 격차 억제 방법이 다소 공상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화에 맞춘 세계 경제에 나의 것 너의 것이라는 완전한 구분은 모호할 뿐이다. 나와 너는 공동 운명체에 놓여 있을 뿐 아니라 더불어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나와 국가가 별개가 아니고 국가와 국가가 별개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개인은 개인으로 생산력을 높이는 경제활동을 해야겠고, 정부는 국민과 개인을 지원하고 발전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 개인이 있고, 국가가 모여 한마음이 된다면 피케티의 주장도 공상으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사회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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