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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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규정하는 프랑스 문단의 문제적 작가, 아니 에르노의 짧지만 깊은 감정의 층위를 표현한 소설 '단순한 열정'을 읽었다. 사실 연애 감정의 열정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날것 그대로 표현해낼 줄 아는 그 열정에 더 반해버렸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사실 난 불륜에 대한 알레르기 같은 게 있다. 하지만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는 늘 사랑의 편을 들곤 했던 터라, 사랑과 불륜이 만났을 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기준 자체도 모호한 감정의 층위 중 하나이겠지만 아니 에르노가 보여준 <단순한 열정>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지 않을까 싶게 불륜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으면서도 그녀의 열정에 대해서만큼은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게 된다. 사랑하는 순간 한 남자에 대한 기억만으로 채워진 열정이 흐릿해지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 자신이 실제로 겪은 이야기를 낱낱이 써 내려갔던 것은 아닐까 한다. 사랑의 그 기억을 영원히 붙잡아 두기 위해.

"나는 남녀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11월 11일에 다녀갔다 라거나 그리고 몇 주가 흘렀다 하는 식으로 정확한 날짜를 밝히는 연대기적인 서술 방식으로 글을 쓰고 싶지도 않다. 우리 관계에서 그런 시간적인 개념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언제나'와 '어느 날'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면서 열정의 기호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 기호들을 한데 모으면 나의 열정을 좀더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을 열거하거나 묘사하는 방식으로 씌어진 글에는 모순도 혼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글은 순간순간 겪은 것들을 음미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일을 겪고 나서 그것들을 돌이켜보며 남들이나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인 것이다." (본문 27쪽)

사랑의 경험을 통해 저자는 세상과 자신을 구분하고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한다. 온몸으로 남들과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며 어떤 일에 대해 얼마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숭고하나 치명적이까지 한 욕망과 위엄 따위 없는 부재,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신념과 행동을 스스럼없이 행하는 자신을 보며 저자는 오히려 열정적 사랑의 경험이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게 해 주었다고 말한다. 이 또한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불륜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인간의 감정을 전혀 이해 못 할 것은 아니지 않는가에 대한 논지를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된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같은 것을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 (본문 74쪽)
우연한 기회에 이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한 여인이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시간이 흘러 그와 헤어진 후, 그 사랑이 남겨둔 기억들을 그대로 담아낸 한 여인의 사랑 이야기이다. 한 번쯤 사랑에 빠져본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이 갈 이야기인 것 같다. 너무나 사실적이고 너무나 냉철한 방식으로 그 기억들을 써내간다. 짧은 이야기지만 흥미롭게 읽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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