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인생 강의 - 낙타, 사자, 어린아이로 사는 변신의 삶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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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 배웠던 철학은 지루하고 따분했다. 철학은 삶에서 이해하고 느끼고 실천하는 것인데, 그때는 모든 과목이 암기 과목처럼 외우고 머릿속에 집어넣기 바빴다. 어느 사상가가 어떤 말을 남겼는지가 철학을 아는 전부였던 것 같다. 지금에서는 사상가가 했던 말 조차도 까마득히 잊어버렸지만. 어려운 철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몰랐고, 삶에 철학이 중요하다고 가르쳐 준 사람도 없었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시험에 나온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재미있다.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이 쓸모없는 것이 아니었다. 수학도 시험 생각만 하면 지금도 머리 아프지만 우리 삶과 수학이 전혀 상관없지 않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과학도 경제도 역사도 살다 보니 모르는 것보다는 이해하고 있는 것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철학은 더욱 그렇다. 삶이 자꾸만 물음표 같을 때 철학은 느낌표가 되어주곤 한다. 삶은 정해진 룰도 없을뿐더러 예측불허의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의미를 찾아 달려가는 마라톤과도 같다. 그런 삶에 철학은 일상에 질문을 던지게 하고, 가야 할 길을 안내해 주기도 한다. 그리고 무심코 지나치거나 잊고 있던 소소한 것들을 만나게 해주고 지루한 일상도 살만한 가치가 있다며 소중한 것들을 품게 해준다. 일상 속에서 나의 삶을 가치있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 때 우리 삶도 한층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철학이 밥은 먹여주진 않겠지만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겠다. 니체에게 삶을 배웠으며, 니체처럼 살고자 하는 철학자 이진우 교수님의 책 <니체의 인생 강의>는 우리가 인생에 무엇을 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니체의 시선과 니체의 마음으로 삶을 들려준다.
왜 니체일까, 무엇이 그토록 저자의 삶을 움직였을까​? 그에게 있어 삶은 사상이고, 사상이 곧 삶이었다. 그래서 왜 니체인지의 대답은 이상적이지 않고 거창하지 않은 데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모르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을 이해한다면 왜 니체일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된다. 우리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 위대한 가치, 강철과 같은 관습과 규범 같은 것을 이겨내고 삶을 가볍게 만드는 힘, 인간 존재의 가벼움을 아는 것, 자신의 약점에 유머로 포장할 줄 아는 위트,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용기가 우리 삶을 가볍고 유쾌하게 만든다. 무거운 중력을 극복해 나가는 힘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데서 오고, 자신을 끌어내리는 무거운 짐도 자기 자신을 아는 데서 온다. 절망과 허무의 시대를 살면서 수많은 문제들에 부딪히겠지만 그 답은 자기 내부에 있음을 이해하는 것, 그것은 니체를 아는 것이다.
"신은 죽었다. 허무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100년 뒤에 찾아올 무시무시한 손님을 내가 지금 말하노라. 그것은 다름 아닌 허무주의다." 신은 죽었다며 돌직구를 날리고, 수많은 상징과 기호와 개념들을 정립한 니체의 사상이 궁극에 말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 삶을 제대로 알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니체의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곧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리라. 신이 죽은 시대에 권력에의 의지를 갖고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우리,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존재이므로 초인이 되어야 하는 우리,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든 사물이 우리와 함께 영원회귀를 하고 있음을 이해함으로써 삶을 긍정하는 우리, 자기 자신을 넘어서고자 하는 건강한 사람이 되기를, 자신의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살아가기를 신은 죽었다고 외치면서까지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어찌 보면 의미 없는 존재다. 그런데 의미 없는 존재가 의미 있는 이유가 있다. 의미 없는 존재가 의미 있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질 줄 안다" (본문 50쪽)

 
저자의 구어체 덕분인지, 아니면 니체처럼 살고자 하는 저자의 진심이 책에 묻어나서인지 어렵다는 니체의 사상이 조금은 쉽게 다가온다. ​복잡하고 어려운 지적 허세는 다 걷어내고 니체에게서 배운 저자만의 삶의 노하우를 듣는 기분이랄까.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각자의 삶을 돌아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삶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내가 지금 순종만 하는 낙타인지, 자신의 길을 갈 거라 포효하는 사자인지, 삶을 놀이하는 어린아이인지, 내가 저항하고 있는 삶의 목표는 무엇인지, 나의 고통과 짐은 무엇인지, 수많은 물음표를 가슴에 품게 된다. 살면서 하나하나 답을 찾고 싶다. 죽을 때까지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삶에 질문을 던진다는 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사유하는 동안 충분히 스스로가 가치 있다고 느꼈을 테니까 말이다. 니체의 삶은 말해준다. 우리가 잘 살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아는 것은 결과에 있지 않고 운명을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의지에 있음을.
현대인은 과거에 비해 우울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우울이 뭔지도 몰랐다가 다른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그런가 보다 할 때도 있고, 자신을 그런 상황에 놓아보기도 한다. 외부 환경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꼴이다. 허무의 시대, 신이 죽은 시대에 우리가 대처하는 법은 운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있지 않다. 아모르파티(amor fati),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운명을 수용해야 한다. 운명을 뛰어넘을 정도의 용기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인간의 실존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기에 제거하려고 애쓰기 보다 긍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은 이 절망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주는 니체의 위로가 아닐까 싶다.
살면서 니체를 몰라도 좋았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알기 때문에 더 이해되고 생각하게 되고 행동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런 변화를 추구하고, 낙타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어린아이로 변신하는 자신을 만나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내일 거울 앞에 앉은 나는 오늘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기를 꿈꾼다. 욕망에 이끌리는 삶과 적당한 삶의 무게를 조율하며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닮은 사람이 거울 앞에 있기를. 가볍게 춤을 추듯 인생을 연기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살고 있기를 마음속에 품는다. 존재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I am as I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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