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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 - 절망의 시대에 다시 쓰는 우석훈의 희망의 육아 경제학
우석훈 지음 / 다산4.0 / 2017년 2월
평점 :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
요즘 말로 웃픈(웃기지만 슬픈) 제목에 솔깃하여 읽기 시작했다. 한 남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고민했었던 생각들을 담은 책. 보통 아이들 보다 조금 더 아픈 둘째 아이, 결혼한 보통 남자 사람 보다 조금 더 가정과 육아를 챙겨야 했던 늙은 아빠, 그리고 경제학자로서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와 가정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미혼인 나에게 아직은 막연하게 느껴지는 '결혼'이라는 것이 좀 더 선명하게 그려졌고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에게,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나의 친구들과 특히 그들의 신랑, 애아버지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들에겐 이미 삶이기에 굳이 책으로까지 읽어야 하나 싶겠지만 경제학자이자 늦깎이 아버지의 육아 경험담은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잘 꾸려가는 데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엄마 같은 아빠의 사랑이 가득 담긴 책.
내 친구들 중 열에 아홉은 결혼해서 아이를 하나둘씩 낳고 열심히 키우는 중이다. 열에 하나 또는 하나 반 정도는 나처럼 '노'자를 붙인 채 처녀로 살고 있다. 2~3년 전 본의 아니게 직업이 바뀐 후부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말이 딱 맞게 그렇게 버티듯 살고 있다. 업무의 강도나 피로도가 높아서라기보다는 성격과 나이 탓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지내고 있다. 이런 나에게 친구들과 연락하고 챙기는 건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내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가기에도 벅찬데. 이런 내 맘을 전한 적은 없지만, 그래서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조금은 고립되어있다. 물론 결혼해서 아이 키우고 살고 있는 친구들과의 관계는 더 멀어졌다. 서로 바쁘니까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생각하며 보내고 있는데 작가 우석훈의 책을 읽으며 한숨이 나왔다. 책으로 접하는 육아라는 것이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게 없어 보였고 내 친구들의 삶이 그려져 숨이 막혀왔다. 그리고 막연하게 부러워하던 유부녀의 삶이 하나도 부럽지가 않아졌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세'를 키우는 것, 아기를 한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P.63
태어난다는 것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건널목을 지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남자들은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일종의 기능적인 일로 생각한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돈을 벌고, 일을 처리하고, 또 돈을 벌고, 그렇게 투입에 의해 산출이 생기는 것처럼 생각하는 방식에 남자들은 익숙해져 버렸다. 이게 지혜로운 것 같고, 일을 잘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삶은 늘 그렇게 기능적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생명이 탄생하는 일은 더욱 그렇다 내내 끔찍한 고통을 겪는 사이 행복과 불행이 교차한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이 고통스럽다는 것은 지식으로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위험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못해 본 것 같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나의 친구들에게 참 장하다고 잘 살고 있다고 용감하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싶다. 지금의 나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나의 친구들.
P.88
프랑스식 육아에서 이유식의 개념은 '어른이 되어서 먹을 음식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영양만 고려하는 게 아니라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교육을 겸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P.97
이유식을 먹이는 것은 우유로 부족해지는 영양분을 보충하고, 딱딱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몸을 준비시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그때의 식습관이 평생을 좌우한다느니, 두뇌 발달에 결정적인 하는 것들은 별로 검증된 바 없고 그저 마케팅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P.98
'엄마가 행복한 것', 그게 프랑스식 육아에 담긴 최고의 가치다.
내가 속한 사회의 전통과 분위기로 육아, 교육의 방식들이 정해지고 그것이 내 의지인 듯 느끼며 살아간다. 남들 다 사는 건 나도 사야 하고 그걸 따라가지 못하면 뒤처지는 것 같고. 그런 느낌 참 싫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다른 나라에 속해본 적은 없어서 모르겠다.) 남의 것을 무작정 쫓아가기를 좋아하진 않지만 교육에서만큼은 프랑스식이 참 좋아 보인다. 프랑스라는 나라에서 느껴지는 자유, 평등, 시민의식 등이 육아에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어른이 되어서 먹을 음식에 익숙해지는 과정'
부모님께 더 잘 돌봐주지 않았음을 아직도 투정 부리는데 음식만큼은 제대로 배우고 먹어온 것 같다. 특정 음식에 대한 거부감도 없고, 몸에 좋은 음식을 즐겨 먹는다. 이만하면 음식교육, 가정 교육만큼은 잘 받았구나.
P.172
휴일마다 농구장에서 몇 시간씩 혼자 슛 연습을 하면서, 화려함에 대한 무의식적인 동경 같은 것이 고스란히 내 몸에서 빠져나갔다. 그 후에도 남들 앞에 설 일이 있었고, 화려해 보이는 일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화려함을 구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아니, 화려한 것이 두렵다. 이제는 그게 마치 유전자에 새겨진 것 같은 본능이 되었다.
P.206
그해에 난 야구 볼 시간도 없이 바빴다. 살면서 야구 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빴던 해가 몇 번 되지 않는다. 매일은 아니어도 거의 보려고 하고, 기본적인 자료 정도는 챙겨서 보았다. 야구 볼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쁠 때는 대부분 내 삶이 엉망진창일 때다. 좋은 리듬을 타던 시기를 돌이켜 보면 그럴 땐 야구장에는 갈 수 있었다. 정신없이 사는 건 좋은 게 아니라고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고, 진정으로 뭘 원하고, 삶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그런 걸 생각도 못하고 바쁘게 지내는 건 삶이 아니다. 사는 게 아니라 그냥 끌려가며 살아지는 것이다.
P.268
세계 시민이 알아야 할 보편적 상식은 실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우선 세상에는 굶주린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이 많다는 것을 인지한다. 그러면 이 밥 한 그릇을 식탁에 놓게 해준 농부들을 비롯해 여러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작지만 의미 있는 상식은 이렇게 먹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P.267
'기본적인 상식과 시민적 감수성을 갖춘 어른 키워내기.' 이게 한국 교육이 가장 못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지금 한국 교육에선, 건전한 상식을 가지는 것이 교육 목표로 설정되어 있지 않다.
(...)
그렇다 보니 운이 좋아서 정말 인격적인 선생님을 만나지 않는 한 '약은 것'만을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21세기 선진국 교육이 절대로 만들지 않으려 하는 게 바로 이런 유형이다. 똑똑하지만 너무 약아빠져서 재수 없는 사람.
P.336
집(eco)을 관리(nomos)하는 것, 즉 '살림'이 경제학의 라틴어 어원이다. 친구들은 경제학 경세제민의 제왕학 같은 것 으로 이해했지만, 그냥 나는 집에서 살림을 하는 것을 좀 더 체계적으로 만든 학문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P.343
내가 아들들에게 꼭 가르치고 싶은 단 한 가지도 그것이다. "사람은 다 같다."는 가장 중요한 상식.
(...)
P.345
사람은 다 같다, 그걸 이해하면 21세기에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최소한 자신은 지킬 수 있는 시민으로 자라날 수 있다. 영어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고, 국어나 수학도 그런 기본적인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못해도 된다. '사람은 다 같은 것'이라는 진실을 마음속으로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심성만 갖출 수 있으면 충분하다. 그러면 "돈도 실력이다", 이런 허망한 말은 하지 않을 정도의 심성과 상식은 가지게 된다.
(...)
이게 다 욕심 때문이다.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이지만, 사람의 욕심은 자신의 눈을 죽인다. 그리고 부모의 허망한 욕심은, 자녀의 미래를 망친다. 행복은 욕심 많은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오지 않는다.
흥미롭게 느껴지는 제목에 솔깃했지만 육아와 -아직은 - 전혀 관계없는 사람으로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고민을 잠깐 했다. 전혀 필요 없는 생각이었다. 작가 우석훈의 책은 처음이지만 이전에도 몇 권의 책을 쓰셔서인지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글로 쓰여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육아 교육에 대한 다른 책을 읽어 본 적은 없어 비교도 불가능하지만 내가 알 수 없었던 것 - 조기교육, 어린이집, 언어, 놀이 등에 대한 작가만의 철학 - 을 책을 읽으며 배운 느낌.
이번 책도 잘 읽었다.
책의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밑빠진 독에 물 붓기 하는 게 인생이고 결혼이고 육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볼만한 것. 살아야 하는 것. 살아내야 하는 것. 중심을 잘 잡고 사람답게 사는 것.
그게 우석훈 박사가 말하고자 하는 이 책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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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6기'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어본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