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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철학자들 - 위대한 경제사상가들의 생애, 시대와 아이디어
로버트 하일브로너 지음, 장상환 옮김 / 이마고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던 당시에 나는 경제학에 대한 갈증이 시달리고 있었다. 과학과 수학에 대한 컴플렉스 못지 않게 경제학도 나의 약점 중 하나였으니까. 그래서 이 책이 더 재미있었다.
어제부턴가 '경제'는 출판계의 효자키워드가 되었다. 베스트셀러에서 '경제'라는 단어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왜 그런 책들이 많아졌는데도 우리는 늘 '경제'를 어려워할까.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들이 그렇게 많이 팔려나가는대도 우리의 '경제학'에 대한 목마름은 여전할까.
적어도, 이 책은 나의 그런 갈증을 어느정도 해소시켜주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유사한 종류의 다른 도서들과 다르게 경제학자들을 한 명의 인간으로 묘사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을 주창하여 오늘날 자본주의의 초석을 쌓은 것으로 알려진 '애덤 스미스'를 보자. 왠지 차갑고 세련된 도시남같은 그의 이미지가 그의 묘사를 접하면서 샅샅이 깨어진다.
그는 사실 스코틀랜드라는 당시로 말하면 '촌'출신이다. 스코틀랜드 분들이 보면 격노할지도 모르지만, 이 책에서는 스미스가 그러한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사투리가 튀어나올까봐 늘 발음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이 점은 애덤스미스를 주인공으로 삼은 '애덤스미스 구하기'에 잘 묘사되어 있다.
더불어, 그는 평생을 경제학자가 아니라 철학자로 살았다. 그의 목적은 자본가들의 배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사회를 관찰하고, 시장이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개인들의 욕망에 의해 움직인다는 원리를 발견했을 뿐이다. 그는 시장경제가 완전히 자유롭게 된다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자연스레 수요와 공급이 조절되고 적정가격이 형성되면서 평온한 사회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막는 국가로부터의 간섭 또는 독점을 경멸했다.
실제로,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을 살펴보면, 허상 뒤에는 독점에 대한 욕망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유리해질 어느지점까지는 자유경쟁을 소리높이다가도 독점적 지위를 획득한 다음부터는 태도를 바꾼다. 재미있는 일이다.
그 외에, 그는 '흄'과 친우였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흄'은 무신론자라는 것 때문에 놀라운 학문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말년에 이르기까지 가난에 허덕인 철학자다. 다행스럽게도 중년에서 노년에 이르는 시기에 저술한 '영국사'가 대박(?)을 터뜨리고 외교관의 비서로 채용되면서 비교적 안락한 노년을 보냈지만 이전까지 그는 스미스와 몇몇 친우들 외에는 알아주지도 않는 무신론자에 불과했다.
그 외에, 맑스 이전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다. 그들은 대개 경제사 책에 언급되지 않거나, 한두줄로 언급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들을 하나의 챕터로 다루고 있다. 그들의 삶을 읽다보면, 그들의 실험이나 이론이 다소 허황되고 공상적인 면이 있어보여도 공감되는 면이 적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들의 공동체 운동은 결국 산업화의 과속에 따라 인간성이 바닥을 치는 처참한 현실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 베블런의 이야기도 인상깊었다. 그는 매우 지적인 남자였는데, 이상하게도 안정된 생활을 하지 못했다. 현재 그는 '과시 소비'라는 개념을 창안한 '유한계급론'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지만 당대에는 지금과 달리 그리 인정받는 남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강의는 대체 알아들을 수 없을정도로 난잡했고 발음은 정말로 듣는사람을 괴롭게 했다고 한다. 더불어, 겸손하기보다는 자신만만했던 그에게 호의적인 사람은 많지 않았고 전해기로는 여성관계도 복잡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그가 매력적인 것은 늘 책을 가까이 했고 지적인 열망에 가득차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려는 순수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는게 여러 결점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가왔달까?
그 외에 마셜, 맑스, 케인즈 등 여러 경제학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런 경제학자들에 대하여 이름만 들어봤다면, 그래서 좀 더 알고 싶은데 어려운 책밖에 없고, 수식은 듣기만 해도 골치아프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참고로 이 책은 미국 아이비리그의 학생들사이에도 수십년째 애독서라고 한다. 그네들도 핵심을 콕콕 찌르면서 쉽고 재미있게 서술된 책은 알아보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