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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었다. 20대 초반에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할 때 추리 소설을 매우 좋아해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거의 섭렵하다 싶이 읽었는데 어느 순간 이 작가의 책들이 다 비슷한 패턴으로 진행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동안 안 읽었었다.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해나가는 게 보통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전개라면 이 소설은 범인은 어느 정도 나와있었고 오히려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유추해나가는 재미가 더 있었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답게 흡입력은 굉장했고 사요코의 죽음, 가해자와 가해자 가족들의 이야기도 너무 잔인하지 않고 추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었다.
소설을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주제는 ‘사형’이다. 사형 제도가 맞는가와 단순히 사형을 선고한다고 해서 국가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생각해 보게 되는 소설이었다. 살인을 저질렀다고 국가에서 한 사람의 삶을 빼앗아가는 것이 맞을까? 사형이라는 형벌을 받을만한 사람은 그만큼 사람으로서 해선 안될 일을 저지른 것은 맞지만 국가의 역할은 자국민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울타리에서 살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인데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국가의 가장 큰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만약 사형이 합당하지 않다면 그만큼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울분을 어느정도라도 해소해주고 가해자가 다시는 비슷한 일을 저지를 수 없도록 만드는 형벌이나 교화 제도가 있어야 할 텐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 단순히 사형이 옳다 아니다만 논의하고 끝날 문제는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끊임없이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대부분의 강력 사건은 사람들의 매스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그에 따라 사형 혹은 무기징역이 확정이 될 뿐 그 이후 피해자 유가족의 삶과 가해자의 속죄 여부는 쉽게 잊혀진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는 아무것도 변화될 수 없다고 소설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것 같다.
사람을 죽인 사람의 반성은 어짜피 공허한 십자가에 불과한데 말이에요. 하지만 아무 의미가 없는 십자가라도, 적어도 감옥 안에서 등에 지고 있어야 돼요. (p.387)
또 다른 고민 포인트는 가해자의 속죄이다. 진정한 속죄란 무엇일까? 책에서 언급된 것처럼 ‘사람을 죽인 사람의 반성은 어차피 공허한 십자가에 불과'하다. 가해자는 물론 평생 동안 어떤 방식으로도 십자가를 등에 지고 살아가야 하지만 이미 피해자와 그 가족의 삶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피폐되는데, 속죄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 “교도소에서 반성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과 제 남편처럼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면서 사는 것, 무엇이 진정한 속죄라고 생각하세요?” (p.394) 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정말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가도 전혀 반성하지 않고 사는 사람과 죄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회에 이바지되는 일을 하면서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올바른 방식으로 벌을 받고 있는 것일까? 물론 죄를 지은 것은 용서할 수 없겠지만 어떤 것이 진정한 속죄일까? 개인의 뉘우침은 없이 사회의 제도 안에서 형벌을 다하는 것? 혹은 형벌은 받지 않았지만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는 것? 어려운 문제임이 분명하고 정답은 없을 것 같다. 평소에는 생각해 보지 않을 문제에 대해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는 점에서 좋은 책인 점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