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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모텔 ㅣ 현대시세계 시인선 72
배선옥 지음 / 북인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책을 좋아하지만, 시집은 선듯 잘 사지도 읽지도 않게 된다. 짧은 구절안에 담긴 그 의미가 마음에 확 와닿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기억을 더듬어 보면,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절친과 시집을 주고 받으며 나의 감수성을 깨우던 시절도 있었다.
우연히 읽게 된 <오렌지 모텔>시집. 책날개에 시인의 소개가 참 마음에 들었다. '낮에는 품위유지비를 벌러 다니는 사무원, 밤엔 야시시한 글쟁이로 산다'고 적혀 있었다. 현실과 이상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삶을 사는 것 같아 좋았다. 시의 소재 역시 우리 삶에 마주할 법한 소재로 시인의 생각을 담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는 꽃이라는 시이다.
꽃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몸 속 어딘가 빛의 씨앗을 가졌다
빛깔을 심고 빛깔을 키우고 그리하여 어느 날 활짝 마음을
피어 올려 빛살이 된다 이름 따위 없을들 어떠리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모두 각자의 색깔을 뿜어 빛을 내나니
그대도
나도
다만 어깨 낮은 꽃으로 서서 수수하니 머리 비끄러맨 시골집
안마당 분꽃으로 피어
2019년이 되었다. 올해는 나와 내 가족의 빛을 더 많이 발견하고 가꾸는 시간을 갖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사함'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일상에서의 감사함을 느끼고, 작은 것에도 행복해 하고, 각자의 색깔을 진하게 물들어 가고 있는 아들과 딸에게도 사랑 가득 응원을 해주고 싶다.
책의 마무리에는 유수진 시인의 해설이 담겨 있다. 해설 또한 쉽지는 않지만 해설을 읽고 시를 다시 읽으면, 깊이감을 좀 더 느낄 수 있으리라. 어떤 사건을 겪더라도, 어떤 한 대상을 바라보더라도 생각을 담고, 예리하게 언어를 갈고 닦았을 것 만 같은 시인의 글. 이런 글들을 아껴서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책 뒷 표지에 최종천 시인은 이렇게 이 시집을 평가했다.
배선옥 시인은 언어에 대해서도 관염에 대해서도 냉담하다. 언어를 다루는 자신감이 있어 보인다. 시편의 언어가 주제나 의미를 앞서가지 않고 그런대로 균형을 취하고 있다. 우리 시에는 언어가 너무 앞서가는 시가 많다. 그것은 포즈다. 시가 공허하다. 배선옥 시인이 시시껄렁한 일상을 별로 시적이지도 않은 표현을 통하여 시로 말하는 것도 그러한 배경을 거느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을 <오렌지 모텔>로 지은 의도가 궁금해 졌다. 야시시한 시를 쓴다는 시인답게 특이한 제목이 눈에 띈다. 암캐, 남동공단 블루스, 심야영업 노래방 삐끼, 포르노 비디오, 샤넬 모래방 미쓰 킴, 보이스 피싱, 오렌지 모텔처럼 말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마지막 시의 제목은 '절'이다. 배선옥 시인의 삶과 생각이 궁금해진다.
절
뒤돌아 보면 세상을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송아지 눈
그 세상의 손 하나를 끌어다 손바닥에
얹는다고 해서 합장이 되는 것도 아닌데
여전히 나느 세상과 함께 삼천 배를 하고 싶다
가장 낮아진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교만한 위장이라고
늘 흘겨보기만 하던 나의 눈동자가
제자리를 찾도록
깊숙이 몸은 낮추고
핏줄을 타고 돌던 욕심들도
이제는 불러내
차례로 세워 고해를 시켜야지
가끔은 칼날이 무뎌졌어도
너무 아등바등하지 말고
오늘
마음에 향 짙은 먹물을 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