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면서도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기조를 유지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고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독립할 수 있고, 무엇보다 인격면에서 어느 한 귀퉁이가 찌그러진 사람이 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혼자 살아도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꼈을 때, 내가 가장 알 수 없었던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자아가 보이지 않으니 세상이 보이지 않았고, 세상이 보이지 않으니 미래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느꼈던 낭떠러지란 바로 자아가 보이지 않는 지점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이미 말한 바 있잖아요. 사랑의 본질은 권력욕이라고, 그 당사자에게 매혹적인 것, 그 당사자의 생존에 가장 유익한 것, 그 당사자의 욕망과 일치하는 것이라고요. 사랑은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 자기 자신을 유지시키려는 본능과 맞닿아 있어요. 생식을 통한 종족 보존의 욕구까지 포함해서 말예요.」
「맞아요. 나는 사랑을 권력욕이라기보다는 생존 본능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아기들이 왜 엄마를 좋아하겠어요? 단지 엄마니까?
아니에요. 젖을 주고 보살펴 주는 존재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거예요. 아기에게 엄마는 생존 그 자체죠. 학생들이 교사를 사랑하는것, 여직원이 부서장을 흠모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교사나 부서장은 그들이 소속된 조직에서 그들의 생존을 좌우하는 존재인 거예요.」
박정연의 말을 이번에는 최미라가 받았다.
「그래서 에로스가 생명과 창조의 신인 거죠. 어렸을 때는 그 말을,
남녀의 사랑을 통해 새 생명이 태어난다는 의미 정도로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 직접 사랑을 해보니 그 말의 다른 뜻이 이해되더군요. 에로스는 그 당사자의 생존 욕망의 척도예요. 인간은 사랑의 감정 없이는 그리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 끊임없이 사랑을 찾아다니는 이들이 실은 자신의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그런다는 것, 누구나 사랑을 통해 생명 현상을 지속시킬 힘을 얻고 싶어한다는 것, 그런 것들이 이해되더군요.」
「그러니까 세 분 말씀은, 사랑은 삶을 지속시키는 힘이고, 사랑을 찾는 행위는 생존을 위한 노력이라는 뜻인가요?」황정미가 세 사람의 이야기를 복습하듯 되물었다. 세 사람이 그렇다고 답하는데 문득 윤영우의 소녀 같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세 분 얘기 들으니 굉장히 허무한데, 나는 오히려 사랑을 미학적 체험이라 생각해요. 그냥 사심 없이 아름답고 마음에 드는 것, 그것을 사랑이라고요. 예를 들어 저기 꽂혀 있는 저 꽃, 저게 그냥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요. 사람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잖아요. 내 눈에 아름답고 좋아 보이는 것, 그런 게 사랑 아녜요?」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사랑을 사회화된 체험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좋다는 감정이나 전기가 통하는 필링, 권력 지향이나 미학적 가치판단조차 사실은 사회화된 경험에서 나온다는 거죠.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말하는 순수하게, 사심 없이, 첫눈에 반했다 등등의 표현조차 이미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이고 언어인 거예요. 꽃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저 남자가 내 생존에 유익하다고 판단하는기준은 모두 사회적으로 습득된 지식이죠.」
좌중이 잠시 조용해졌다. 진희숙의 주장은 권인경이나 박정연의 주장보다 더 삭막한 느낌이었다. 특히 윤영우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세진은 앞접시에 코를 박고 갈비찜 한 토막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즈음에야 인혜는 세진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 방에 들어온 지 벌써 두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한 대의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사랑을 소통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대화가 통한다든가 정서가 통한다든가 하다못해 미움의 감정이라도 서로 통하면 그 속에서 친밀감이 싹트고 사랑이 생기는 게 아닌가……. 인간은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을 찾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소통이 중요한 게 아닌가……….」
구자연의 조심스러운 주장에 즉각 말을 받은 사람은 다시 권인경이었다.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이라는 게 가능해요? 인간의 자아가 얼마나 완강하고, 타인을 이해한다는 행위조차 자신의 프리즘을 통해 받아들이는 오해이기 십상인데,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고 믿어요? 나는 사랑하는 행위야말로 가장 정직한 나르시시즘이구나 생각될 때가 많아요. 자기에게서 나가서 상대를 통한 다음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것, 그것은 소통이 아니라 나르시시즘이 아닐까 하는 거죠. 」
「사랑에 대해 피력하는 서로 다른 얘기들을 들으니 저마다 고유한 정서적 센서로 사랑을 받아들인다고 생각되네요. 그런데 가 고유한 정서적 감응 장치란 대체로 저마다의 상처거나 콤플렉스임에 틀림없어요. 그러니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은 아버지나 어머니 같은 사람을 고르고, 가난을 상처로 가진 사람은 부자를 찾죠. 학력에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그 부분을 충족시켜 줄 사람을, 스스로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권력 가진 자를 선망하죠. 이런 말 하기 미안하지만, 여러분이 하는 말은 곧 여러분 각자의 상처나 콤플렉스일 거예요.」
세진은 잠시 말을 멈추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한두 명,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있었다. 인혜도 그 의견에는 동의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라는 것도 대체로 콤플렉스와 콤플렉스의 만남일 경우가 많아요. 거짓말쟁이 아내와 의처증 남편이, 모성 과잉인 여성과 유아적인 남성이, 아니무스가 강한 여성과 아니마가 강한 남성이, 자기중심적인 사람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많은 사람이, 가학증 아내와 피학증 남편이…… 그런 사람들이 서로 첫눈에 상대를 알아보죠. 아, 내가 비빌 언덕이 바로 저기구나.」「맞아요, 맞아요. 주변에 그런 식으로 만나는 커플을 많이 봐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잘 살잖아요.」「그 노이로제를 버리지 않는 한 잘 살겠죠.」「그렇다면 객관적인 조건들이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선택하는 건왜 그런 거예요? 그런 선택은 권력욕이나 보상 심리와는 배치되잖아요...」
「그건 본인이 가진 자기 이미지가 낮거나, 누군가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하는 사람의 사랑법일 거예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쉬은 예로,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우는 사람이 있고 울지 않는 사람이 있지? 울어도 잠깐 눈물만 흘리는 사람과 더 서럽게 우는 사람이 있고, 그게 바로 슬픔의 질량 불변의 법칙에 관한 사례야. 내면에 이미 슬픔이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면서도 더 많이 우는 거지, 분노도, 외로움도, 질투도 마찬가지야. 똑같은 일에 대해서도 더 많이 화내는 사람은 이미 내면에 더 많은 질량의 분노가 들어있는 거라고 보면 돼.」
「그렇다면 사람마다 서로 다른 절대량의 분노를 가지게 되는 배경은 뭐니? 대체 본싱으로서의 분노는 왜 생기는 건데?」
「정신 의학에서는 그 모든 걸 사랑의 문제로 봐. 유년기 때 아기가필요로 하는 사랑이 없었거나, 있더라도 왜곡되게 전달되었을 때,
아기에게 분노의 감성이 형성된다고 해.」「그렇다면 인간의 이성은 무슨 의미가 있니? 성장한다는 것은 이성의 힘, 사회화된 습관으로 그런 사사롭고 감정적인 영역을 극복한다는 뜻 아니니?」「잘은 모르기만 성장하고 사회화한다는 것은 그런 분노와 질투들을 무의식에 억압해 둔다는 의미 같아. 억압된 적개심은 무의식속에 자리 잡고 영원히 죽지 않는 식물 뿌리처럼 늘 새로운 잎과 꽃을 피워 내는 것 같아. 무의식이 의식보다 더 힘이 세고, 삶에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건 이미 그쪽 학계의 정설이야.」

세진은 분노의 거울 법칙에 대해 설명하면서 손을 들어 병실 유리창을 가리켰다. 유리창 저편 허공에 또 하나의 병실 공간이 고스란히 떠 있었다.
「분노의 거울 법칙이란 일종의 투사 현상이야. 네가 만약 누군가의 어떤 점이 못마땅하거나 화가 난다면, 네 속에도 그것과 똑같은 요소가 있다고 보면 틀림없어. 꿈에도 자각하지 못하고 죽어도 인정하기 싫을지 몰라도 그건 틀림없는 현상이야.」「어떻게 그렇게 단정하니?」「내가 직접 체험했거든. 나는 오래도록 모성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불편해했어. 자아 성취를 앞세우며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소홀한 여성들에 대해 분노하기까지 했어. 그런데 그것은 내 엄마에 대한 분노가 그쪽으로 전이된 거였고, 또한 내 속에도 고스란히 들어 있는 요소였어. 생각해 봐. 만약 내게 모성이 강한 어머니의 기질이 있었다면 벌써 결혼해서 아이를 다섯쯤 낳았을 거 아니니?」

「분노의 카멜레온 현상, 그것은 분노가 여러 가지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는 거야. 너 최근에 우울하다고 했지? 그게 바로 네가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이야. 그날 밤, 고속도로를 달릴 때 내가 흥분한 상태에서 말이 많았지? 그것 역시 분노의 표현 방식이었어. 다변이나 자폐증, 과식증이나 거식증, 자잘한 자기 파괴 행위부터 자살충동까지, 그 모든 것이 분노의 가면들이야. 어쩌면 내가 일으킨 교통사고 역시 분노가 표현되는 한 형태였을지도 몰라.」
「분노가 왜 그런 가면을 쓰니?」
「그날도 말했잖아. 우리 여성들은 분노를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어려서부터 여성은 인종이 미덕이라고 배우면서 자라잖아. 그러니 분노하고 행패 부려도 이 세상으로부터 추방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해. 그렇기 때문에 분노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거지.」

‘우울증의 가장 강한 특징은 직접 화를 내지 못하는 무능력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여성은 화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또는 화를 낼 수 있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다. 자신이 분노를 느끼고 표현할 능력이 있다고 진정으로 믿지 않는다면, 태울 연료도 없고 진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없다. 결과적으로 자기의 개인적인 힘을 경험하려면, 영구적이고도 무의식적인 분노와의 관계를 끊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과정은 우선 분노를 인식해야만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수동적인 동시에 공격적인 적개심을 특징적으로 갖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콤 글래드웰의 주장에 따르면 무엇이든 꾸준히 배우고 시간을 들여 연습하면 어느 분야에서든 성공할 수 있다. 젊은 사람에게는 이 말이 영겁처럼 느껴지겠지만 한 직장에서 주 40시간 일한다면 5년 후에는 자기 사업을 차릴 만큼 완전히 기술에 통달하는 것이다. 간단한 사칙연산이다.

1주일에 40시간씩 1년 동안 일하면 벌써 2,000시간이다. 그렇다면 5년 안에 1만 시간이 채워진다. 당신의 직장 상사는 이 사실을 숨기고 싶을지 몰라도 사실이 그렇다. 길고 멀어 보이지만 시작과 끝은 분명히 정해져 있다. 당신도 당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저 꾸준한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초보자와 전문가의 차이는 이 1만 시간이 결정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