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은 예로,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우는 사람이 있고 울지 않는 사람이 있지? 울어도 잠깐 눈물만 흘리는 사람과 더 서럽게 우는 사람이 있고, 그게 바로 슬픔의 질량 불변의 법칙에 관한 사례야. 내면에 이미 슬픔이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면서도 더 많이 우는 거지, 분노도, 외로움도, 질투도 마찬가지야. 똑같은 일에 대해서도 더 많이 화내는 사람은 이미 내면에 더 많은 질량의 분노가 들어있는 거라고 보면 돼.」
「그렇다면 사람마다 서로 다른 절대량의 분노를 가지게 되는 배경은 뭐니? 대체 본싱으로서의 분노는 왜 생기는 건데?」
「정신 의학에서는 그 모든 걸 사랑의 문제로 봐. 유년기 때 아기가필요로 하는 사랑이 없었거나, 있더라도 왜곡되게 전달되었을 때,
아기에게 분노의 감성이 형성된다고 해.」「그렇다면 인간의 이성은 무슨 의미가 있니? 성장한다는 것은 이성의 힘, 사회화된 습관으로 그런 사사롭고 감정적인 영역을 극복한다는 뜻 아니니?」「잘은 모르기만 성장하고 사회화한다는 것은 그런 분노와 질투들을 무의식에 억압해 둔다는 의미 같아. 억압된 적개심은 무의식속에 자리 잡고 영원히 죽지 않는 식물 뿌리처럼 늘 새로운 잎과 꽃을 피워 내는 것 같아. 무의식이 의식보다 더 힘이 세고, 삶에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건 이미 그쪽 학계의 정설이야.」

세진은 분노의 거울 법칙에 대해 설명하면서 손을 들어 병실 유리창을 가리켰다. 유리창 저편 허공에 또 하나의 병실 공간이 고스란히 떠 있었다.
「분노의 거울 법칙이란 일종의 투사 현상이야. 네가 만약 누군가의 어떤 점이 못마땅하거나 화가 난다면, 네 속에도 그것과 똑같은 요소가 있다고 보면 틀림없어. 꿈에도 자각하지 못하고 죽어도 인정하기 싫을지 몰라도 그건 틀림없는 현상이야.」「어떻게 그렇게 단정하니?」「내가 직접 체험했거든. 나는 오래도록 모성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불편해했어. 자아 성취를 앞세우며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소홀한 여성들에 대해 분노하기까지 했어. 그런데 그것은 내 엄마에 대한 분노가 그쪽으로 전이된 거였고, 또한 내 속에도 고스란히 들어 있는 요소였어. 생각해 봐. 만약 내게 모성이 강한 어머니의 기질이 있었다면 벌써 결혼해서 아이를 다섯쯤 낳았을 거 아니니?」

「분노의 카멜레온 현상, 그것은 분노가 여러 가지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는 거야. 너 최근에 우울하다고 했지? 그게 바로 네가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이야. 그날 밤, 고속도로를 달릴 때 내가 흥분한 상태에서 말이 많았지? 그것 역시 분노의 표현 방식이었어. 다변이나 자폐증, 과식증이나 거식증, 자잘한 자기 파괴 행위부터 자살충동까지, 그 모든 것이 분노의 가면들이야. 어쩌면 내가 일으킨 교통사고 역시 분노가 표현되는 한 형태였을지도 몰라.」
「분노가 왜 그런 가면을 쓰니?」
「그날도 말했잖아. 우리 여성들은 분노를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어려서부터 여성은 인종이 미덕이라고 배우면서 자라잖아. 그러니 분노하고 행패 부려도 이 세상으로부터 추방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해. 그렇기 때문에 분노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거지.」

‘우울증의 가장 강한 특징은 직접 화를 내지 못하는 무능력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여성은 화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또는 화를 낼 수 있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다. 자신이 분노를 느끼고 표현할 능력이 있다고 진정으로 믿지 않는다면, 태울 연료도 없고 진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없다. 결과적으로 자기의 개인적인 힘을 경험하려면, 영구적이고도 무의식적인 분노와의 관계를 끊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과정은 우선 분노를 인식해야만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수동적인 동시에 공격적인 적개심을 특징적으로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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