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은 삶 속에서 벌어지는 실제의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단지 우리의 정신에 굴레를 씌워서 세상에 순응시키려고 애를 쓰고 계신 거예요. 우리가 원과 삼각형 따위에 관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무엇이든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거라고 믿으시면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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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시화선집
도종환 지음, 송필용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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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깎기

연필을 깎는다 고요 속에서 사각사각 아침 시간이 깎여나간다.
미미한 향나무 냄새 이 냄새로 시의 첫 줄을 쓰고자 했다. 삼십년을 연필로 시를 썼다 그러나 지나온 내 생에 향나무 냄새 나는 날 많지 않았다 아침에 한 다짐을 오후까지 지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문을 나설 때 단정하게 가다듬은 지조의 옷도 돌아올 땐 매무새가 흐트러져 있었다.

연필을 깎는다 끝이 닳아 뭉툭해진 신념의 심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깎는다 지키지 못할 말들을 많이 했다 중언부언한 슬픔 실제보다 더 포장된 외로움 엄살이 많았다.

연필을 깎는다 정직하지 못하였다는 걸 안다 내가 내 삶을 신뢰하지 못하면서 내 마음을 믿어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바람이 그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모순어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 시각 얇게 깎여져나간 시선의 껍질들을 바라보며 연필을 깎는다.

기도가 되지 않는 날은 연필을 깎는다 가지런한 몇 개의 연필앞에서 아주 고요해진 한순간을 만나고자 연필 깎는 소리만이가득 찬 공간 안에서 제 뼈를 깎는 소리와 같이 있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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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반만 년 전부터 똑같은 생각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랑하는 정치 체제인 민주주의는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고, 우리의 수학이며 철학, 논리학은 줄잡아도 3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 아래에는 새것이 없습니다. 인간의 뇌수(腦髓)가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돌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인간의 두뇌는 온전하게 사용되고 있지도 않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굴레를 씌워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하면서 새로운 개념, 새로운 생각이 솟아나는 것을 억누르고 있습니다. 똑같은 명분을 내건 똑같은 갈등이 되풀이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고, 세대 간에 언제나 똑같은 몰이해와 불화가 생기는 까닭이 거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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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은 인격의 액셀러레이터고 겸손은 인격의 브레이크야. 사람은 액셀과 브레이크를 제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의 운명을 통제하고 인생의 길을 온전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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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오랫동안 경쟁자들을 따돌린 가장 빠른 정자가 난자를 수태시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가장 빠른 정자 하나가 아니라 수백의 정자가 동시에 난자의 주위에 다다른다. 거기에서 정자들이 편모(鞭毛)를 살랑살랑 흔들며 기다리고 있으면, 그 가운데 하나가 선택을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난자의 문 앞으로 몰려온 많은 청혼자들 가운데 하나를 골라 승리자로 만들어 주는 것은 결국 난자다. 그렇다면, 난자는 어떤 기준으로 정자를 선택하는 것일까? 연구자들은 오랫동안 그 문제를 탐구한 끝에 최근에 답을 찾아냈다. 난자는 〈자기 것과 가장 다른 유전적 특성을 보이는〉 정자를 낙점한다는 것이 그 답이다. 이것은 일종의 생존 전략이다. 난자는 자기 위에서 서로 껴안고 있는 남녀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래서 그저 근친 결합의 문제라도 생기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의 염색체는 자기와 유사한 것이 아니라 자기와 다른 것과 결합해서 더욱 풍부해지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바로 자연의 섭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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