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를 영광학원에 취직시킨 익명의 독지가는 다른 사람 아닌 한수철이었다.

그는 동생을 모르는 척하는데 양심의 가책은커녕 난만한 꽃밭을 병충해로부터 지켜야 하는 원정으로서의 사명감마저 느꼈다.
악이란 생각보다는 돌발적인 격정이 아니라 용의주도하고 점진적인 현상이었다. 그리고 악의 한결같은 꿈은 위선이었다.
그는 그의 누이동생이 수인임을 망각하고 오목이로 행세하고 있음을 알고부터 더욱 열심히 수인이란 이름으로 동생을 찾는 일을 계속했다. 그의 이런 애타는 마음을 뭇사람에게 나타내서 남의 심금까지 울렸다.
그건 마치 일곱 살 적의 수지가 동생을 일부러 피난민 속에서 놓쳐버리고 나서 수인이란 이름으로 목메어 찾아 헤매고, 다시 식구들 앞에서 동생을 잃은 자신을 자책해서 까무러치도록 운 것과도 닮은 간교함이었다.
한 사람을 놓고 각각 두 개의 이름으로 서로 찾는 일은 마치 평행선처럼 아무리 줄기차게 계속돼도 서로 맞닿을 리가 없었다.

"수인인 살았을까?"
수지가 지나가는 말처럼 무심히 말했지만 그 분위기에 딱 들어맞는 말이었다.
"너도 그 애 생각이 나나 보구나?"
"그럼 오빠도?"
"그 애도 시집갈 나이가 됐으련만."
"살기나 했을까요?"
"글쎄다. 널 시집보내려니 그 애를 찾아 돌보지 못한 게 더욱 걸리는구나."
"오빤 최선을 다했어요. 그건 세상이 다 아는 일예요."
"그 애도 먼 훗날이라도 좋으니 그걸 알아줬으면 좋으련만……."
"오빠!"
"잘 살아야 한다. 그의 몫까지."
위선의 교감은 감미롭고 짜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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