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돈녕부사 김병시가 임금 앞에서 말했다.

"생각하건대, 동학군은 모두가 양민으로서, 처음에 열읍 수령의 학대로 곤고를 견디지 못하고 그 원통함을 호소하고자 모였던바, 그 관장官長된 자가 개유(開諭: 사리를 알아듣도록 잘 타이름.)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들을 동학비도라 단정하고 무력으로써 위협하므로, 저들이 황겁하여 몸을 보호하고 목숨을 건지기 위해 취당창걸(무리를 모아 일어섬.)함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에 이들을 난역亂逆으로 몰고, 경병京兵을 발하기에 이르렀던바, 이것이 이미 경솔한 거조였으며, 더욱이 청국에 구원을 청한 것은 크게 실수한 조처였던 것이다. 설사 저들 무리가 모두 불궤不軌(당연히 지켜야 할 법이나 도리에 어긋남.)한 마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들은 한구석의 토비土匪에 지나지 않은데, 우리가 처치할 도리가 없어서 청국에 청병請兵까지 한 것이다. 이제 청병으로 하여금 기천 기만 명을 소멸시키게 한다면, 당장 일시의 쾌快는 있겠지만, 역시 불인不忍의 정政에 관계되는 것이다. 가령, 1인이 죄를 짓고 처벌에 이르러도 또한 애긍하여 즐겁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타국의 군사를 청하여다 우리나라 백성을 진살(盡殺: 모두 다 죽임.)하려고 하니, 이와 같은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일본군이 왔다고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군사 기천 명을 데리고 졸지에 도성에 들어오기를 무인지경과 같이 하되, 조정에선 그래도 한마디 말도 없으니, 이것이 어떻게 된 나라의 체면인가. 인천항에서 하륙할 때에 마땅히 금지하여야 할 것이되, 형세가 대적할 수 없어서 경성에 이르렀으면, 아울러 강경히 항의하여 힐책하여야 할 것인데, 그러한 일이 없으니 어찌 이와 같은 나라가 있겠는가."

‘어찌 이와 같은 나라가 있겠는가’ 하는 탄식은 김병시만의 것이 아니었다. 일본의 대군이 서울 거리를 행진하는 것을 본 백성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이 탄식을 되뇌고 있었다.

— 어찌 이와 같은 나라가 있겠는가.

망국亡國의 징조가 바로 눈앞에 전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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