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지에 따라 정도는 조금씩 다를지언정, 자신이 속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무한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단 하나의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누구든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시시각각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온몸으로 체험하며 살아가는 호메로스의 영웅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 역시 ‘삶의 덧없음’이라는 슬픔과 고통이었기에 그들에게는 수금과 노래, 그리고 봉분과 석비라는 기념비의 위안이 절실했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이 유한성과 무의미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진리에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가 진리의 형태로 꼽은 예술에도 정치에도 학문에도 사랑에도 송두리째 헌신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나처럼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이 광대하고 영속적인 세계와 무시로 접속을 시도하며 가능한 한 세계를 넓고 깊게 향유하기 위한 노력이라도 아끼지 않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