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자해를 가할 수 있는 능력의 습득. 자살을 하고픈 욕망이 아무리 커도 그것을 실행할 능력이 없으면 머릿속 환상에 그친다. 무의식적인 생존 본능을 뛰어넘을 만큼의 상해를 의식적으로 자기에게 입히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자살은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최대한의 폭력이다. 그리고 폭력은 상당 부분 학습에 의해 취득된다. 폭력에 대한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폭력을 재현할 능력을 더 많이 가진다.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 유병률이 2배 더 높지만, 우울증 환자의 자살율은 남성이 여성보다 4배 높다. 문화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폭력을 체험할 기회가 더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유년기에 학대를 경험한 사람, 지속적으로 폭력의 피해를 당하거나 폭력에 가담해온 사람은 물론 직업상 폭력을 관찰할 가능성이 높은 의사의 자살율도 유독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무엇보다 자살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과거의 자살 시도 경험이다. 한 번 자살을 실행해본 사람은 두 번 세 번 반복하다 결국 성공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높다. 이렇듯 자해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자기효능감과 소속감을 잃어버리고 표류할 때 자살을 꿈꾸고 실행하게 된다. 자기효능감의 상실이란 곧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 주변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력도 미치지 않는 무능한 존재라는 자학, 나라는 존재는 세상에 없는 것이 더 낫다는 왜곡된 자기부정이다. 이러한 감정은 우울증의 증상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좌절된 소속감’은 사회와 인간에 대한 유대감의 단절을 말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딘가에 소속감을 느끼고 다른 사람과 영향을 주고받고 싶어 한다. 소속감은 연약한 자아와 그 바깥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다. 따라서 이혼이나 사별, 친밀한 집단과 사람과의 관계 단절은 자살에 취약한 사람에게 큰 위험 요인이 된다.

"자살자 심리 부검을 해보면 실제로 자살 직전에 관계 단절을 경험한 사람이 많아. 특히 그 관계가 유일하고 독점적인 것일수록 위험하지. 나와 사회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 끊어졌다고 느낄 때 사람은 아주 급격하게 자살 충동을 느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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