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병을 만든다는 음모론은 의학 산업의 대상이 되는 질병 전반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영혼 없는 자본이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상품을 놓고 장사를 할 때에, 이윤 추구를 위해 정보를 왜곡하는 경우가 왜 없겠는가.
효과 좋고 안전한 항우울제의 개발을 환영하며 우울증을 치료하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으로 약물치료를 권장하는 목소리와, 항우울제는 결코 우울증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해로울 수도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 사이 어딘가에 진실이 있을 것이다. 극과 극으로 떨어진 두 목소리 중 진실이 어디에 얼마나 더 가까이 있는 건지는 모른다. 둘 다 부분적으로만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주류 사회가 기정사실화한 것을 단숨에 전복한다는 점에서 음모론은 그 자체로 무력한 개인에게 쾌감을 준다. 더불어 음모론이 새롭게 구성한 진실은 현실의 한계에 부딪힌 사람들에게 해로운 희망을 줄 수 있다. 권력과 자본이 뿌리는 사실을 무비판적으로 믿는 것만큼이나 음모론이 주는 쾌감과 희망에 혹하는 것도 위험하다.
죽음에 대한 생각에 빠지면 말을 해야 한다. 위험한 생각은 입 밖으로 꺼내야 한다. 그래야 죽음이 마음속에서 조용히 진행되다가 구체적으로 실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양반은 양반 노비는 노비. 불평등은 당연했고 좀 더 나은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의 탓이 아니었지. 지금은 개인의 탓이야. 그러니 불안이 일상화된 거라고나 할까."
불안의 일상화.
평균 이상의 지위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경제 불황과 고용 불안정은 지위의 입문로를 좁히는 반면, 교육 인플레는 그 정도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당연하며 그렇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을 부추긴다. 60~70년대 급격한 경제개발로 삶의 조건이 훌쩍 나아졌던 경험이 있는 한국인은 중산층이 되어야 한다는 집착이 크다. 전쟁 이후 극심한 빈곤의 상흔을 간직하고 있는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지위상은 세속적이고 획일적이다. 다양한 삶의 방식, 개인의 인생을 평가하는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점점 좁아지는 한길로 달려가고 낙오자는 절망한다.
기회 획득에 실패하고 무기력에 빠진 사람들이 그런 상황을 초래한 사회를 탓하는 게 아니라 약자를 혐오함으로서 심리적 균형을 찾으려고 한단 말이야. 약자에 대한 보호 정책이나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도덕적인 요구가 자기들의 기회를 빼앗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따지고 보면 정작 약자도 아닌 것들이 약자라고 징징대며 무임승차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살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거야. 예전에는 남자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쉽게 차지할 수 있었던 자리, 남자들끼리만 경쟁하면 되었던 자리에 여자들이 속속 진출하면서 여자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판이 되었으니 적응할 수가 없는 거지.
"보이지 않는 권력 구조를 공격하는 것보다 약자를 혐오하고 공격하는 게 더 쉽고 우월감이란 심리적 보상도 커.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과거의 가치를 옹호하고 과거의 상황이었다면 자기가 차지할 수 있었을 자리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더 쉽고 현실성이 있어 보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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