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은 고생고생하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제대로 배우지 못한 동생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그런 꿈을 이루고 싶기도 했다. 약한 몸으로 행상을 하는 어머니를 편히 모시고 싶었고, 동생도 대학까지 보내주고 싶었다. 중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자신처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동안 자신이 겪어왔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그런 마음은 뒤집어지고 말았다. 자신은 그 사장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은 그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처럼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유혹에 빠진 자신을 다잡았다.
그는 어떤 때 자신이 그 사장들과 똑같이 공원들을 부려먹을 수 있을까 솔직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렇게 할 자신이 없었고, 그런 짓을 해서 잘살고 싶지 않았다.
그런 못된 짓을 해서 혼자만 잘살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마음은 언제나 다른 마음을 이겨내고 무찔렀다. 서울시청 근로감독관을 만나고 와서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지만 다시 노동청을 찾아갔던 것은 그 마음이 시킨 일이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모두가 사람답게 일하고, 다같이 사람다운 대우를 받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
이 변함없는 생각이 노동청으로 발길을 이끌어갔다. 그러나 노동청의 불친절과 냉대도 시청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아니, 조금은 나았다고 할 수 있었다. 노동청에서는 ‘실태조사’라는 것을 한 번 나오기는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실태조사라는 것이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났다. 근로조건을 개선하라는 노동청의 지시는 한마디도 없는 채 평화시장 일대에 ‘위험분자 전태일’이라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그 소문은 바로 집단따돌림으로 연결되어 더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삼각산으로 들어서며 전태일은 거대한 바위로 된 두 개의 봉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저 봉우리의 단단함으로……, 저 봉우리의 굳건함으로……, 저 봉우리의 불변함으로……, 그는 이 다짐을 스스로의 가슴팍에 새겨넣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전신이 떨리는 이상한 예감에 사로잡히며 절실하게 기도하고 있었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게 하여주십시오. 약한 저를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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