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걸고 마음을 다짐하던 여자는 마침내 스스로를 개딸년으로까지 낮추었다. 그건 가난한 시골사람들이 자기 진실을 나타내는 가장 강하면서도 최후 단계의 말이었다.

여러 가지 열매들 중에서 가을빛을 가장 민감하게 빨리 드러내는 것이 유자였다. 대나무와 잎차가 그렇듯이 유자도 무덥고 습기 많은 남도 특유의 과실 중의 하나였다. 유자의 그 향기가 짙고 깊으되 고상하고 담백하여 예로부터 무척 귀하게 여겼으나 그 생김은 지극히 소박하다 못해 볼품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유자는 얽었어도 선비 손에 놀고, 탱자는 잘생겨도 거지 손에 논다’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 유자의 뒤를 이어 탱자·모과·석류·감이 9월 중순의 가을빛에 서서히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 즈음부터 새를 쫓는 아이들의 긴 외침과 돌 담긴 깡통들이 짤랑거리는 소리가 들녘에 가득했다.

「베풀고 베풀어라. 그리고 베풀었다는 그 일 자체를 잊어버려라.」
이 세상을 참답게 살고 다음에 극락왕생하려면 물질이든 마음이든 끝없이 베풀어야 하는데, 그 자비행이 참으로 결실을 맺게 하려면 도와준 일을 다 잊어버리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도움받은 사람이 도움받은 것을 잊고 있을 경우 도와준 사람이 도와준 것을 기억하고 있으면 당연히 배신감을 느끼게 되고, 그 배신감은 미움이 되고, 미움은 새로운 번뇌가 되어 지난날의 순수한 자비까지 망치게 되기 때문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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