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불평등 문제는 단순히 그들의 삶이 평등하지 않다는 데 있지 않다. 불평등이 만들어지고 강화되는 과정 그리고 그것이 다차원적이라는 질적 특징에 있다. 그 불평등은 학력·소득·직업·인맥·문화적 역량의 복합적인 결합으로서, 부모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격차가 그대로 자녀의 인적자본 격차로 체화되는 것이다. 흔히 이 격차는 능력의 격차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출신 계층의 격차라는 사실을 ‘나머지’ 계층에 속한 오늘날의 20대는 삶의 단계마다 피부로 깨친다.
80년대 학번-60년대생이 세대 차원에서 양보를 하고, 기득권을 떼어내 아래 세대에 준다 할지라도 지금의 시스템은 바뀌지 않는다. 사회가 20대를 배려해 번듯한 일자리를 늘린다 할지라도, 그 기회는 대부분 세습 중산층의 자녀들이 차지하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80년대 학번-60년대생의 양보는 그들 중 일부가 노동시장에서 몇 년 앞서 은퇴하고 그 대가로 그들의 자녀들이 노동시장에 안착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세습 중산층의 첫 세대인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60년대생의 자녀들에게는 ‘합법적’으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나머지 60년대생 자체가 성장의 혜택이 주어지지 않은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에서 짧은 근속 연수와 불안정한 노동 지위로 낮은 소득에 머물고, 또 자녀에게 제공할 수 있는 문화자본이나 사회적 네트워크도 빈약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입시제도를 조금 더 옛 과거제에 가까운 형태로 ‘공정’하게 바꾼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대학 선발 시스템을 이용하는,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해킹hacking하는 능력에서 세습 중산층을 따라갈 수 있는 계층 집단은 없다. 이는 그들이 단순히 서울 대치동 사교육에 많은 금액을 투자할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녀의 인적자본 투자를 효율적으로 계획하고, 잘 조율하며,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그들의 경영자적 능력에서 기인한다.
지금의 문제가 ‘세습 중산층의 독주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한다면, 세대 간 양보론과 교육의 공정성 확보론만큼 그들의 영향력과 독주를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세대와 공정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여 ‘세습’이라는 진짜 문제를 숨기면서 적당히 양보하는 척하며 실질적인 손실을 보지 않는 노회한 86식 정치 투쟁의 구호가 한국 사회를 뒤덮는 양상이다. 문제는 그들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그대로 관철되고, 유지되는 2019년 한국 사회의 시스템 그 자체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양보와 공정이 아니라 의무와 공평이 아닐까. 시작 단계에서부터의 공평과 그것을 위한 세습 중산층의 경제적·사회적 의무 부담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가장 분명하게 요구해야 할 것 중 하나는 기회의 평등equality of opportunity이다. 단순히 입시제도의 공정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수준의 교육 기회와 능력 배양의 기회에서 하위 90퍼센트도 상위 10퍼센트 수준의 기회를 갖도록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OECD13, IMF14, 세계은행15 등에서 나오는 관련 보고서에서 으레 등장하는 표현이라 식상해 보이지만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는 근본적인 수준에서 기회의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급진적인 주장이 가능해 보인다. 가령 기회의 평등의 중요한 구성 요소 중 하나인 영유아기에서부터 공공 보육이나 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교육을 통한 계층 재생산이 매우 어린 시기부터 이루어짐을 보일 수 있으며, 교육 과정이나 교육 재정 구조 개편을 촉발시킬 수 있다.
두 번째는 사회에서 보장해야 하는 최소 수준social minimum에 대한 합의와 그에 따른 적극적인 세원 확보다. 노동시장의 변화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주고, 인간다운 품위를 유지할 수 있게 부조하자는 것이다. 이는 그들의 자녀들이 ‘다음 세대’에서 벌어지는 경쟁에서도 영영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중요하다. 또 재원 마련을 위해 현재 노동시장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수혜를 받고 있는 상위 10퍼센트 중상위층에 대한 과세 강화가 필요하다. 심상정 의원실이 지난 2018년 9월에 공개한 2016년 근로소득 1000분위(0.1퍼센트 단위)별 급여와 결정세액(실제로 납부한 근로소득세액) 자료16에 따르면 2016년 근로소득 상위 10퍼센트에 해당하는 노동자의 급여는 연 7,200만 원이었는데 연말정산 등을 감안한 실효세율은 5.76퍼센트에 불과했다. 실효세율이 10퍼센트를 넘기 위해서는 연 1억 500만 원 이상을 벌어 상위 3.2퍼센트 내에 진입해야 했다.
흔히 이야기되는 상위 1퍼센트에 해당하는 노동자는 연 1억 4,700만 원을 버는데, 그중 15.6퍼센트를 세금으로 냈다. 결과의 불평등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상위 1~10퍼센트를 대상으로 걷을 여력이 충분한 셈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불평등이 상위 1퍼센트와 나머지 99퍼센트의 격차뿐만 아니라 상위 10퍼센트와 나머지 90퍼센트의 심각한 격차 문제에 기인한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상위 10퍼센트에 속하는 세습 중산층은 그 격차를 ‘능력의 차이’로 포장하며, 자신의 자녀들에게 적극적으로 계층 지위를 물려주고자 노력한다. 그 불평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생하고, 사회적 계층 이동을 가로막는지 정확히 인식하는 데에 해결의 단초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