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뉴딜은 제도 개혁이에요. 와그너법을 실행해 노조 권한을 강화했고, 사회보장법을 제정해 사회보장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진짜 미국을 따라간다면 제도 개혁을 하는 뉴딜을 해야죠.

코로나19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지방정부에서도 중앙정부에서도 돈을 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마이너스 성장인데, 이렇게 돈을 다 퍼주면 우리 애들은 어떻게 되나? 우리 세대가 다 써도 되나?’ 하고 걱정합니다. 기재부 공무원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걸 사육신에 빗대기도 하고요.

틀린 경제 논리입니다. 빚내서 돈 쓰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하면 대학 가려고 학자금 융자를 받아선 안 되고, 빚내서 사업하면 안 되죠. 빚을 내더라도 나중에 소득이 더 늘어나면 빚을 내는 게 더 잘하는 일 아닌가요? 정부가 돈을 빌려 단기적으로 재난지원금을 주고, 실업 급여액을 올려 수요를 유지하면, 기업들도 그 속에서 돈을 벌 수 있어요. 수요가 완전히 붕괴하면 기업들은 더 망합니다. 정부가 돈을 빌려 경제 전체 생산성을 높이는 곳에 투자하면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가 더 커지죠. 지금 돈을 빌리면 안 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기업들도 부채 하나 없이 장사해야 한다고 얘기해야 해요.

더구나 한국은 재정이 엄청나게 건전한 나라입니다. GDP 대비 국채 비율이 40퍼센트 정도 되는데, 세계 최저 수준이죠.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나라들이 35~40퍼센트 사이로 가장 낮고, 한국이 그다음으로 낮아요. 한국은 2008년 금융 위기 났을 때 빼고 정부 재정이 매년 흑자입니다. 오죽하면 OECD같이 보수적인 기관에서 한국은 돈을 더 써도 된다고 그러겠어요. 저는 우리 경제를 ‘자린고비 경제’라고 부릅니다. 무조건 안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하니까요. 한국같이 매년 재정 흑자만 내는 나라는 없습니다. 재정이 가장 건전한 북유럽 나라들이 바로 복지가 세계에서 가장 잘 돼 있는 국가들이라는 것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복지 잘한다고 재정이 부실해지는 게 아니라는 거죠. 미국이 맨날 재정 건전성 입에 달고 살지만 GDP 대비 국채 비율이 100퍼센트도 넘어요. 


 빚내서 돈 쓰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하면 대학 가려고

학자금 융자를 받아선 안 되고,

빚내서 사업하면 안 되죠.

빚을 내더라도 나중에 소득이 더 늘어나면 빚을 내는 게 더 잘하는 일 아닌가요?

수요가 완전히 붕괴하면

기업은 더 망합니다. 


교육은 어떻게

계급 재생산의 도구가 되었나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을 발표하면서 상위 30퍼센트는 제외한다고 했다가 100퍼센트로 확정 지었는데요. 그 논의가 진행되는 한 달 동안 작동한 프레임이 있습니다. ‘과연 누가 상위 30퍼센트인가?’입니다. 대학을 나오고 중견기업에서 일하거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상당수가 기득권임을 확인했지요.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주장하며 열심히 자식 뒷바라지를 하는 상위 소득자들입니다.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다수의 중년은 지위를 누리고 있었고 그 지위와 소득에 따라 문화 자산마저도 자녀에게 세습되는 게 현실입니다.

그것이 계급사회의 본질이에요.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6·25전쟁, 토지개혁을 겪으며 사회가 굉장히 평평해졌어요. 교육도 한몫을 했죠. 주입식 교육을 하고 일률적인 시험을 통해 사람을 뽑다 보니 계층 상승하기 좋은 시스템을 갖추게 됐어요. 빈농의 집안에서 대법관도 나오고 교수도 나왔습니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교육에 대한 맹신이 생겼어요. 모든 것이 교육으로 정당화되는 사회가 돼버린 거죠. 좋은 학교 나오면 무조건 잘났다는 식으로요.

한 세대가 지나 교육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 사람들에게 이제는 자기 자식을 보호하고 싶은 애착이 생깁니다. 바뀐 대학 입시 제도의 명목은 좋았어요. 달달 외는 공붓벌레보다 생각도 많이 하고 글도 잘 쓰고 사회봉사도 많이 하는 애들을 뽑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결국은 돈 많은 애들 뽑자는 거예요. 의도는 그렇지 않았을지 몰라도 결과는 그래요. 지금 돈 많은 집 애들이 공부 잘하잖아요.


부모의 경제적 능력과 열성에 점수를 매기는 셈이지요. 교육이 계급 재생산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배워온 겁니다. 지금 미국은 더 심해요. 오죽하면 미국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버니 샌더스가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고 싶으면 스칸디나비아 국가로 이민 가라고 했겠습니까. 미국은 더 이상 기회의 땅이 아니라는 거죠. 그 핵심에 교육이 있습니다. 미국과 비교하면 영국은 대부분의 대학이 정부로부터 돈을 받아 운영하는 국립 학교예요. 그러다 보니 대학입시 때 자기소개서를 500단어만 쓰게 합니다. 학교도 다섯 곳만 지원할 수 있고요. 가난한 집 아이도 들어갈 틈이 생긴 거죠. 미국은 스무 곳씩 지원할 수 있고, 학교에 맞춰서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니까 결국 부잣집 아이들이 컨설턴트 동원해서 쓰든지 아니면 교육 잘 받은 부모가 도와주든지 합니다. 게다가 대놓고 동문 자녀 입학 특혜도 주죠. 그렇게 교육이 계급 재생산 체제가 되어가는 거예요.

수치로 얘기하면 미국 같은 경우 소득에 따른 부모와 자식의 상관관계가 80퍼센트 정도예요. 부모를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자녀의 미래가 결정되는 사회죠. 덴마크나 핀란드 같은 북유럽은 30퍼센트밖에 안 돼요. 대부분이 능력으로 결정된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예전 한국 교육에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암기를 강요하는 주입식 교육이었죠. 그런 교육 환경을 바꾸는 과정에서 의도는 선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완전한 계급 재생산 체제가 됐습니다. 우리도 부모가 자녀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이 20~30퍼센트인 사회를 만들어야 해요. 평등한 조건을 만들지 않고 공정성만 이야기하는 건 기득권 세력에게 계속 잘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왜 이런 사회가 만들어졌나’를 생각해야 해요. 현재는 코로나 때문에 가려져 있을지 몰라도 우리가 정말 들여다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단순히 입시 제도만 바꾼다고 될 일도 아니고 복지 제도도 확대해야 하고, 사회적인 문화도 많이 바꿔야죠.


사회 이동성을 높이려면 분배 정책을 잘 해야 하는데요. 한국은 종합부동산세만으로도 저항이 큽니다. 금융 투자로 더 많은 수익을 얻는 다수는 놔두고 왜 부동산에만 세금을 매기냐는 항의도 있고요. 


 부동산은 공급이 제한되어 있어 가격이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어요. 빼돌리기 힘든 만큼 세금 매기기 좋으니 그쪽을 겨냥하는 거죠. 어느 한 부분만 찍어서 하기보다는 전반적으로 다 같이 세금 더 내고,  많이 버는 사람들은 그 비율에 따라 더 내게 해서 복지 공동 구매를 최대한으로 늘려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유사한 조건에서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나아가야 돼요. 그러다 보면 그 과정에서 뭘 더하고 덜할 지 기술적인 문제가 나오는데, 왜 금융은 봐주고 부동산만 때리느냐고 할 수도 있고, 직접세 비율이 낮은데 왜 올리지 않느냐는 말도 나오겠죠. ‘소득세와 재산세 중 무엇의 비율을 더 높여야 하는가?’ 이런 건 전문적으로 논의해야 할 부분도 많기에 시간을 들여야 하고요. 그럼에도 방향은 확실합니다.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공정하고 구성원들이 덜 좌절하도록 만들려면 복지 제도를 강화하고 그에 필요한 세제 개혁을 해야 한다는 거죠. 불평등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려면 누진세를 적용하고 복지를 확대하는 수밖에 없어요. 지금보다 복지를 두 배로 늘려도 미국 정도입니다. 유럽 수준 되려면 세 배 이상 늘려야 하고요. 저는 우리 사회가 이 말은 꼭 명심하면 좋겠어요. 불평등하면 잔인한 사회가 됩니다.


마이너스 성장 시대

한국은 어떤 전략을 써야 하는가


저성장이 5년 이상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마이너스 성장이 기본값이 된 듯합니다. 중국도 지난 분기 성장률을 마이너스 6퍼센트로 발표했고요. 우리는 대중국 무역 의존도가 높은데 어떤 전략을 써야 할까요?


장기적으로는 몰라도 당분간은 성장률이 많이 낮아질 겁니다. 충격이 왔기 때문이지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맨날 성장, 성장 외쳤지만, 그렇게 경제성장이 잘된 것도 아니에요. 도리어 옛날 케인스주의 시대보다 더 안 됐어요. 저는 개발도상국의 경우 성장이 중요하지만 선진국은 다르다고 봅니다. 한국도 이제 선진국에 포함시켜야죠. 선진국들은 더 이상 성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후변화 때문에라도 성장을 안 하는 게 좋고요. 문제는 성장의 질입니다. 성장을 얼마나 공평하게 나누느냐에 있죠. 온 국민이 편안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경제의 목표라면 성장은 그 목표를 이룰 여러 수단 중 하나입니다. 성장을 하면 덩치가 늘어나 나누기도 쉽고 목표를 이루기 수월하죠. 문제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성장을 해도 그 과실이 상류층에게만 집중되는 데 있어요. 보통 사람한테는 별 의미를 못 줘요. 성장 수치를 셈하는 방법에도 문제가 있었죠. 브라질에서 아마존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소를 키워 소고기 수출로 돈을 아무리  많이 번다 해도 그 일로 가뭄이 들어 농사가 망하는데요.


마이너스 성장일 때는 문제가 달라지지 않나요? 경제가 활기를 잃게 되는데요. 그래도 살 만할까요?


저는 마이너스 성장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어떻게 마이너스 성장이 나왔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마이너스라는 건 평균적인 생활수준이 떨어진다는 얘기니까 대처하기에 힘은 들겠죠. 하지만 환경주의자들 가운데는 역성장degrowth이라고 해서 선진국들은 마이너스 성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어요. 이번에 코로나19로 봉쇄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전보다 음식을 안 버린다고 합니다. 식품을 덜 생산해도 똑같이 잘 먹을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의류도 패스트패션이라고 해서 한 번 입고 버리는데, 예를 들어 안 입고 버려지는 옷이 10퍼센트라고 하면 세계 의류 생산량이 10퍼센트 줄어도 우리 삶의 질은 관계없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이너스가 어떻게 해서 왔느냐, 그 결과가 얼마나 잘 나눠지고 얼마나 지속 가능하느냐를 포괄적으로 봐야 합니다. 당장 숫자 자체가 마이너스 6이다, 마이너스 3이다,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성장을 안해도 제도를 잘 바꾸고 복지를 잘하면 국민 생활의 질은 올라갈 수 있어요. 옛날에는 밥 먹고 사는 게 중요하니까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성장을 더 하자’라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그런 단계가 아니잖아요. 국민 소득 3만 달러 나라에서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게 뭔가’를 생각해 봐야죠. 과연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느냐’에 대해서 제대로 얘기해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어요. 


자살률 1위, 간단히 볼 일이 아닙니다. 코로나19로 사람 죽는 건 안 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서 죽는 건 괜찮은가요? 출생률은 거의 세계 최저에, OECD에서 남녀 임금 격차는 최고예요. 젊은이들이 좌절하고 이민 가고 싶다는 나라입니다. 잘한 거는 자화자찬이라도 해야 하지만 잘한 걸로 못한 것을 덮을 수는 없어요. 잘 해낸 경험을 계기로 우리가 힘을 모으면 큰일도 할 수 있구나 깨달았을 때 큰 개혁을 해야죠.

복지 제도도 제대로 도입하고, 교육 제도도 최대한 공정하게 개선하고, 세제도 최대한 공평하게 사람들의 노력을 인정하면서 연대도 조성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하고, 할 일이 많죠. 코로나19 잘 대처했다고 자축하면서 계속 건전 재정 외치고 예전처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아무것도 안 하면 이 위기가 끝나고 5년이 지난 후에도 자살률 1위, 출생률 최저, 남녀 임금 격차 최고, 그런 한심한 나라가 될 거예요. 하지 않으면 안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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