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불편하다는 생각이 먼저 안 들고, 상대의 입장만 먼저 떠오른다는 거죠?」「정말 부도가 났는지 어떻게 알아요?」「그 생각이 나중에 들더라구요. 상대에 대한 연민 먼저, 그 다음에 내가 불편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고, 아주 나중에야 상대방의 말이 진실일까 아닐까 의심하는 마음이 들고요.」
「왜 자신의 불편보다 남의 입장을 먼저 생각할까요? 첫째, 잘나서?」「아니요.」
「둘째, 인격이 고귀해서?」
「아니요.」
「셋째, 멍청해서?』
「맞아요. 제게는 나를 먼저 챙기는 감각이 없는 것 같아요.」
「없는 게 아니라 발달되지 않은 거죠. 싹부터 잘라 버렸으니까.」
「그래요.」
「왜 그렇다고 생각해요?」
「모르겠어요. 제가 이해받고 배려 받고 싶던 마음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게 아닌가 싶지만……. 자기연민의 투사 같은 거요.」
면담자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 더는 말이 없었다. 그 감각이 발달하지 않은 것이 애착이나 집착이 형성되지 못한 것과 동일 선상의 문제인가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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