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나는 그날의 집회를 복기해보았다. 특히 첫번째 탈락자를 정하는 장면을 말이다. 아무래도 그 장면이 흥미로웠다. 그것은 마치 『침팬지 폴리틱스』에서 본 침팬지들의 정치적 투쟁과 비슷했다. 이인자 탱고는 일인자인 장군에게 정면으로 도전하고 싶지만 아직 그럴 능력이 되지 않으니 난데없이 힘이 약한 유리를 공격한다. 일인자인 장군은 이인자의 도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유리에 대한 공격을 모른 체한다. 그러면 유리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메두사는 하는 수 없이 탱고와 맞서야 한다. 결정은 마침내 팀의 리더인 장군의 몫으로 넘어간다. 유리를 내보내면 탱고의 뜻을 따르는 게 되니 곤란했다. 그렇다고 탱고와 맞서는 것은 오히려 그의 위상을 높여주고 이인자로서의 위치를 공인하는 꼴이 된다. 결국 메두사가 내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 모든 판단이 불과 이 분 안에 이뤄진다는 것이 우선 놀라웠고, 모두가 그 상황에서 자신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정확하게 움직인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그들에게 있어서 나는 여전히 유령 같은 존재였고 그들 사이의 미묘한 권력투쟁의 구경꾼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순간에도 이미 그들은 나에게 조용히 어떤 선택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퀴즈 팀 안에서의 선택은 유력한 대통령 후보를 골라 그 뒤에 줄을 서야 하는 국회의원들의 선택과는 성격이 달랐다. 국회의원들은 오직 정치권력이라는 변수만 고려하면 되지만 퀴즈 팀은 그렇지가 않다. 우리는 일종의 길드로서 같은 목적을 공유하고 있었다. 여기서의 목적이란 퀴즈 리그에서 우승하여 큰돈을 벌고 이 세계에서 이름을 드높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누구를 보스로 옹립하느냐와 누구를 축출하느냐의 문제가 중요했다. 개인의 권력욕은 팀으로서의 효율성과 긴장관계에 있었다. 권력욕만으로는 회사를 장악할 수 없었고 또 그런 사람을 용납하지도 않았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말 그대로 회사‘ 였던 것이다.
- P384

전화는 끊어졌다. 나는 머리를 감싸쥐고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조금전의 사건을 통해서 적어도 한 가지는 배웠다고 생각했다. 어떤 질문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달리 말하자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퀴즈도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인생의 거의 모든 질문이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P70

"그게 뭔데?"
"세상 어디에도 도망갈 곳은 없다는 거. 인간은 변하지 않고 문제는 반복되고 세상은 똑같다는 거야. 거긴 정말 이상한 곳이었는데, 처음에만 그랬을 뿐, 적응하고 나니 하나도 다른 게 없었어. 근데 넌 어떻게 지냈어? 방송국 일은 어때?"
- P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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