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신선한 음식 같은 거야. 냉장고에 넣어두면 맛이 떨어져. 젊은이에게 제일 나쁜 건 아예 판단을 내리지 않는 거야. 차라리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게 더 나아, 잘못된 판단을 내릴까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거, 이게 제일 나빠."
나는 점주의 말투보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 더 충격을 받았다. 만약 당신이 한 인간을 서서히 파멸시키고 싶다면 그런 눈빛을 배워야한다. 그것은 상대가 자기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눈빛이며, 앞으로 그가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절대로 믿지 않는 눈빛이며, 혹시 그런 존재가 되더라도 적어도 자신만큼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임을 맹세하는 눈빛이다. 만약 그런 눈빛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가 있다면 그 삶은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런눈빛을 가진 교사 밑에서 배우는 아이라면 자신감이라는 감정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것은 경멸과는 또다른 것이다. 그것은 경멸에 들어가는 에너지조차 아까워하는, 얕은 수준의 감정이었다. 그것은 사람을 깔보고, 무시하고, 마치 없는 것처럼 여기고, 필요하면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믿을 때나 생겨나는 종류의 감정일 것이다. 내 마음 아주 깊숙한 곳에 살고 있는 영혼의 파수꾼이 출동했다. 나는 그가 나를 대신하여 말하는 것을 말릴 수 없었다. - P109
"나가자."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지갑을 꺼냈다. "내가 낼게." 가난한 사람은 이렇게 해서 좀더 가난해진다. 그들은 가난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결국 더 가난해진다. 가난을 숨기기 위해 ‘남들 다하는 것‘을 하고 그 ‘남들 다 하는 것‘ 때문에 빚을 지고 그 빚을 갚느라 세상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다. - P163
이디스 워튼이라는 미국 여성작가, 혹시 알아? ㅎㅎ 답을 찾으려 머리를 막 굴리는 네 모습이 벌써 보이는 것 같아. 그래, 맞아. 『순수의 시대」 쓴 사람, 그 사람의 소설에 이런 말이 나와. "여자라는 존재는 방으로 가득한 저택 같은 거예요. 거기에는 사람들이 오가는 복도가 있고 손님을 접대하는 응접실도 있고 가족들이 함께하는 거실도 있지요. 그러나 그것들 너머에는 전혀 다른 방들이 있답니다. 누구도 문고리조차 잡아보지 않은, 아예 그런 방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안다 해도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방들, 그리고 그 방들 중에서도 가장 깊은 방, 신성하고 신성한 그곳에 영혼이 홀로 앉아 끝내 오지 않을 어떤 발자국을 기다리는 것, 그게 바로 여자의 본성이에요." 나는 이 구절을 아주 좋아해. 나 역시 내 마음 깊은 곳에 무슨 방들이 있는지 잘 몰라. 그러면서도 나는 그 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그런데 과연 그 누군가가 나타났을 때, 그 사람을 알아볼 수는 있을까? 어쩌면 영원히 발견되지 않을지도 모를 깊은방에 앉아서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어. - P183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많은 게 함께 따라오는 것 같다. 장소도 그중 하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가 살아온 장소와 만나는 경험이기도 하다. - P201
그런데 이런 지극한 행복의 순간에도 인간의 상상력은 어느새 최악의 파국에 가 닿는다. 내게 찾아온 이 행복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에서부터 혹시 이 모든 것이 누군가가 꾸민,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려 가장 극심한 고통을 맛보게 하려는 사악한 계략이라 생각하는 편집증까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비록 그 싹은 아직 크지 않을지라도, 마음속 깊숙한 어딘가에서 천천히 자라나고 있었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누군가로부터 깊이 사랑받지 못한 자의 숙명적인 어리석음일수도 있었다. 나를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믿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 그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 역시 의심스러웠다. 무엇보다도 그날 내가 느낀 열락감, 그 지고의 행복감이 나의 노력과는 무관한 일종의 행운이라는 것도 그런 심사를 부추겼을 것이다. 사랑이 어찌 노력과 재능으로 되랴? 그것은 정말 운명이거나 우연인 것이다. 정말 딜레마이다. 사랑의 기쁨은 그 예기치 않음에서 오는데, 정작 그 예기치 않음 때문에 인간은 불안에 떨며 그것이 제 손아귀를 빠져나갈까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상대방을 만나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함께 최고의 기쁨을 누린다 해도 그것은 사업의 성공이나 고시 합격과는 완전히 다른 성질의 것이다. 두 연인이 쟁취한 사랑의 승리는 오직 그들만의 것이므로 그야말로 배타적인 것이며 그 때문에 언제나 위태로워진다. 증명서도 공인된 형식도 없다. 그날 코엑스에서 우리를 스쳐 지나간 수만 명의 사람들 중 누구도 우리 기쁨의 증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은 마치 날달걀을 던지며 노는 어린아이들처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주 작은 일에도 그들의 기쁨은 휘발되고 날카로운 고통이 그들을 지배하게 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래서 사람들은 결혼을 하는 걸까? 증인을 세우고 공인된 형식을 만들어 자신들끼리만 간직하던 그 짧고 황홀하고 위태로운 기쁨을 진부하고 안락하고 견고한 제도로 바꾸어버리는 것일까? 마치 믿을 수 없이 많은 돈을 딴 도박사가 카지노의 칩을 현금으로 바꾸어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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