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역적 방법
지금까지 알고 있는 지식에서 새로운 지식을 알아낼 때 필요한 방법이 추리이다. 추리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방법은 삼단 논법을 기본으로 하는 연역적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삼단 논법은 주어진 지식에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지식을 추론해 내는 방법을 말한다.

대전제 :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전제 :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결론 :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대전제는 잘 알고 있는 사실이며, 소전제로 소크라테스를 대입하였고,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사실을 결론으로 추론하였다. 이것이 연역법이다. 이때 대전제와 소전제에 함께 있는 사람을 매개념이라 한다. 두 문장에 동시에 있는 매개념을 제거하면, 대전제와 소전제에 남은 개념이 결론으로 내려와 하나의 문장을 완성한다. 이것이 세 개의 단계로 이루어져 있어 삼단논법이라고 말한다.
- P271

네 가지 원인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는데 왜 붕어빵일까? 모양이 붕어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모양에 따라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찹살떡처럼 재료에 따라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자연을 관찰하고 동식물을 연구했더라도 애벌레가 무엇인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눈에 보이는 물건을 설명하기도 어려운데, 눈에 보이지 않는 신, 악, 선, 생각 같은 개념을 설명하기는 더욱 어렵다.
애벌레 같은 사물은 더 나눠 물어볼 수 있다. 사물이 어떻게 생겼는가 하는 문제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다. 사물 자체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물음이다.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우주는 또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와 같은 문제 말이다. 즉, 형이상학적인 문제다.
형이상학적인 모든 물음에 아리스토텔레스는 4원인설로 답한다.
붕어빵의 예로 돌아가 보자. 붕어빵을 굽는 틀은 모양, 즉 형상이다. 밀가루, 물, 팥소 등은 붕어빵을 만들기 위한 재료, 즉 질료이다. 붕어빵은 불로 굽는다. 운동 혹은 작용이다. 빵을 굽는 목적은 먹거나 팔기 위함이다. 질료, 운동, 형상, 복식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4원인이다. 세상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네 가지 원인을 가리긴다.
- P273

네 가지 원인이 어떤 작용을 통해 하나의 사물을 만든다. 네 가지 원인에 따라 모든 것이 사물이 되지는 않는다. 사물이 될 가능성만 갖는다. 그 가능성이 사물이 될 때 현실성으로 나타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능태와 현실태라고 했다. 예를 들어 ‘모든 달걀이 병아리가 되지는 않는다‘에서 달걀이 가능태라면 병아리는 현실태인 것이다.
현실적으로 나타난 것이 우리가 보거나 보지 못하는 사물이다. 그 사물은 또 다른 사물과 합쳐져서 새로운 사물이 된다. 작은것부터 차례로 올라가면 광물, 식물, 동물이라는 큰 범주가 나오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올라가는 과정을 새로운 지식으로 보았고, 그 방법으로 삼단 논법 같은 연역적인 면을 취했다.
- P274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고 했던가. 플라톤의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 스승과 제대로 한판 붙었다. 스승은 이상 세계를 추구하였고, 제자는 현실 세계를 추구하였다. 1509년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로 산치오가 그리고 바티칸에 소장되어 있는 <아테네 학당>이란 그림이 있다.
그림을 보면 스승 플라톤의 오른쪽 두 번째 손가락은 하늘로 향해 있고,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른쪽 손바닥은 땅을 향해 있다. 두 사람의 논쟁은 오늘날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오늘날 두 사람의 주장은 인식론과 존재론이라는 두 개의 기둥으로 발전하여 철학을 떠받치고 있다.
- P276

에라스뮈스는 민족주의를 경계했던 철학자다. 그는 민족 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민족주의를 경계하는 입장을 ‘모든 국가는 나의 조국이다‘라는 말로 나타내었다. 그는 그리스도교라는 이름으로 모든 민족과 국가는 서로 사랑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지 못한 나라나 민족에 대한 그의 비판은 엄청났다. 그래서 에라스뮈스를 진정한 세계 시민이라고 말한다.
- P278

신과 세계는 하나라는 범신론

형이상학에서 주로 사용되는 개념 중 하나가 실체다. 실체라는 개념의 의미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항상 함께하고 있다. 즉, 변하는 모든 것의 근저에 있으면서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 바로 실체다. 철학자들은 실체가 무엇인지에 뜻을 같이하지만, 실체를 설명할 때는 자신의 관점에서 조금씩 다르게 생각하고 말한다. 스피노자도 마찬가지다.
스피노자는 실체를 설명하면서 몇 가지 특징을 부여한다. 실체는 무한하고 유일하며, 그 자체에 스스로 존재하는 원인을 갖는다는 자기 원인성을 말한다. 스피노자의 실체는 다른 것으로부터 제한받지 않는 무한한 것이며, 실체가 존재하는 이유는 자신 안에 있는 유일한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스피노자는 신이라고 하였다. 물론 그리스도교나 유일신을 말하는 전통적인 신과는 다르다.
그렇다면 스피노자에게 신이란 무엇이며, 실체는 무엇인가?
스피노자에게 신은 세계와 자연 속에 놓여 있는 실체다. 신은 세계와 자연 밖에서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 자연이 곧 신이며, 신이 곧 자연이다. 자연의 합이 곧 신이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의 합이 곧 신이다. 스피노자는 자연을 둘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하나는 생산하는 자연(능산적 자연)이며, 다른 하나는 생산되는 자연(소산적 자연)이다.
자연 가운데는 항상 변하고 끊임없이 바뀌는 자연이 있다. 잠시 생겨났다가 없어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오래 머물기도 하지만 어찌되었든 변하는 자연이 있다. 이런 존재는 아주 수동적이고 피동적이다. 스피노자는 이것을 ‘생산되는 자연‘이라고 했다.
반면 자연 중에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우주의 법칙,
자연의 원리, 세계의 질서와 같은 것이다. 이런 자연은 스스로 존재하며, 변하지 않으면서 다른 것을 생산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스피노자는 이런 자연을 ‘생산하는 자연‘이라고 했다.
스피노자는 신, 자연, 세계는 하나라는 범신론을 주장하였다.
신은 그리스도교나 정통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유일신도 아니다.
이 정도면 유대교에서 왜 스피노자를 탄압하고 박해하다 못해 파문까지 했는지 충분히 알 만하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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