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밀화는 개별적 생명의 현재성을 그리는 일이지. 그 안에 종족의 일반성이 들어 있거든. 그래서 수목원은 세밀화가 필요한 거야. 그게 원리나 개념으로는 파악이 안 되잖아. 힘든 일이지. 지난한 일이야."
- P203
노부부는 아주 오래 살아서, 지나간 삶의 그림자처럼 얇고 가벼웠다. 오래 살면 가벼워지는 모양이다. 노인이 숲 해설사에게 물었다. - 이 큰 나무가 새파란 잎을 달고 있으니, 이 나무는 젊은 나무요, 늙은 나무요? - 나무는 늙은 나무들도 젊은 잎을 틔우니까 한 그루 안에서 늙음과 젊음이 순환하는 겁니다. 인간의 시간과는 다르지요. - P212
그가 노부부에게 설명했다. - 나무줄기의 중심부는 죽어 있는데, 그 죽은 뼈대로 나무를 버티어주고 나이테의 바깥층에서 새로운 생명이 돋아난다. 그래서 나무는 젊어지는 동시에 늙어지고, 죽는 동시에 살아난다. 나무의 삶과 나무의 죽음은 구분되지 않는다. 나무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다. 내용이 다르고 진행방향이 다르고 작용이 다르다. - P215
어젯밤에 죽은 숲 해설사 이나모가 귀를 대고 있던 그 백양나무는 약용식물단지 입구에 서 있었다. 백양나무는 같은 자리에 서 있어도, 시간에 따라서 그 나무껍질의 색깔과 이파리의 떨림의 질감이 달라서, 나무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는 다르다는 숲 해설사 이나모의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나모는 죽었고, 이나모가 귀를 댔던 백양나무 껍질에서 이나모의 생애는 하얗게 지워져 있었다. 전방 사단의 부사관 생활삼십 년, 잔반 배달업 십오 년, 숲 해설사 십여 년이 그의 약력이었는데, 그 생애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백양나무는 다른 시간 속에 서 있었다. 시간이 서로 다르다는 그의말은 역시 틀린 말이 아니었다. 백양나무에 귀를 붙이고 있는 이나모를 보았을 때, 나무 한가운데의 목질부에 그의 죽음이 있고, 그가 죽을 자리를 찾아서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멀고 희미했던 그 느낌도 결국 아주 동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저물 때, 숲은 낯설고, 먼 숲의 어둠은 해독되지 않는 시간으로 두렵다. 저물 때, 모든 나무들은 개별성을 버리고 어둠에 녹아들어서, 어둠은 숲을 덮고 이파리들 사이에 가득 찬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빛이 사윈 자리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초저녁에 가루처럼 내려앉던 어둠은 이윽고 완강하고 적대적인 암흑으로 숲을 장악했다. 어둠 속에서 나무들은 깊고 젖은 밤의 숨을 토해냈고 오래전에 말라버린 낙엽과 짐승들의 똥오줌도 밤에는 냄새로 살아났다. 숲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다는 이나모의 말은 저무는 숲에서 증명되는 것인데, 어두워지는 숲은 그 숲을 바라보는 인간을 제외시키는 것이어서, 어두워지는 숲에서는 돌아서서 나오는 수밖에는 없었다. - P219
- 그렇게 말씀하시니 고맙군요. 라고 말하면서 그가 눈을 들어서 나를 쳐다보며 웃었다. 그의 눈은 젖어 있었다. 그의 눈의 물기가 내 눈에 보이는 까닭은내 눈에 멀리서 다가오는 술기운이 어른거리기 때문인가. 그의 눈의 물기가 나의 시선에 느껴졌는데, 시각이 아니라 손으로 더듬는 촉각처럼 내 몸에 와 닿았다. 그의 눈은 세상을 내다보는 기관이라기보다는, 그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는 창문처럼 보였다. 자등령의 숲처럼, 시화평고원의 노을과 강처럼, 멀고 아득한 세상이 그 창문의 안쪽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막연하고 종잡을 수 없는 것들이, 그 막연함 자체가 돌연 구체성과 사실감의 무게로 다가오는 사태는 환각이 아니라 내 눈앞에서, 테이블 건너편에서 살아 있는 사실이었다. 그가 세상을 내다보는 창문으로 나는 그의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하되, 내 눈에는 그의 안쪽이 모두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눈만이 보였는데, 그 눈의 안쪽의 세상이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을 내가 보았을 때, 얼마 전 흐린 날 아침에 숲속의 물안개 속에서 피어 있던 도라지꽃이 생각났다. 보라색 꽃은 물안개 속에서 몽롱했고 또 실제의 거리보다 훨씬 멀어 보여서 원근감을 파악할 수 없었는데, 그 꽃은 나를 향해서 피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고개를 숙이고 핀 꽃들도 내쪽을 향해 피어난 것으로 나에게는 보였다. 그것이 꽃과 꽃을 바라보는 사람 사이의 관계의 미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 밖에서 나와는 아무런 인연도 관계도 없었던 무연고한 사물을 돌연 내가 맞상대해야 할 내 눈앞의 당면 현실로 바꾸어놓는, 말하자면 멀고 무관한 삼인칭인 ‘그를 내 눈앞의 이인칭인 ‘너‘로 바꾸어놓는 이 지울 수 없는 구체성을 어떻게 미망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 P229
가석방으로 풀려나던 날, 아버지는 교도소 문 앞에서 당신을 맞으러 온 딸과 아내를 난감해했다. 그 힘들어하던 모습을 떠올리면,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가 나를 기다리지 않는 것 같다는 어머니의 말은 옳았다. 아버지의 자식이 아버지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아서, 아버지가 자신의 모습을 자식에게 보이는 고통을 면해주고, 자식의 시선에서 아버지를 풀어주는 것이 아버지에 대한 효도일 것이었지만, 마음은 그렇게 순수하게 논리적일 수만은 없었다. 그것이 그렇다 하더라도, 아버지에게 나를 보여서, 아버지가 자신의 모습을 자식에게 보이는 고통을 아버지와 자식이 함께 받아들이는 쪽도 또한 효도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효도라고 말하고 나니까 쑥스럽기는 하지만, 그것이 효도도 불효도 아무것도 아니더라도 마음이 그렇게 작동하는 것은 피치 못할 일이었다. 그것이 중생이고 포유류이며 혈연이고 가족이라고 하는 끈일 것이었다. 어머니의 전화가 그런 생각들을 끌어당겨주었다. - P252
가을에는 숲의 힘이 물러선 자리를 빛들이 차지한다. 잎이 떨어져서 나무와 나무 사이가 멀어진 공간에 빛이 고이고 빛들은 시간에 실려서 흘러가는데, 빛에 시간이 묻지 않는 것처럼 시간에도 빛이 묻지 않았다. 봄에, 나무는 새잎을 내밀어서 스스로가 빛을 뿜어내는데, 가을에 나무는 잎을 떨군 자리에빛을 불러들인다. 봄이 와서, 낮이 길어지고 빛이 강해지면 깨어서 움직이고, 가을에 밤이 길어지고 빛이 약해지면 휴면에 들어가는 것이 나무들의 기본적 생리라고, 수목원에 처음 왔을 때 안요한 실장이 가르쳐주었다. 그때 안실장의 목소리는 느리고 고요해서 밤이 오면 어두워지고 아침이 오면 밝아진다고, 너무나도 분명한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는데, 텅 빈 말로 안실장은 나무의 운명을 부러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탯줄이 아니라 씨앗으로 태어나서 비바람 속에서 빛과 더불어 자고 깨는 나무의 안쪽에 안요한 실장은 말을 걸고 있었다. 혈육이 없어서 인륜이 없고 탯줄이 없어서 젖을 빨지 않는 것이 나무의 복이라고 안실장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을에, 잎을 떨구는 서어나무를 들여다보니까, 안실장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나무의 씨앗과 풀들의 씨앗이 바람에 퍼져 온 산맥을 그 종족으로뒤덮어도 그것이 혈연은 아닐 것이었다. 나무들은 각자 따로따로 살아서 숲을 이룬다는 것을, 가을의 서어나무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숲은 나무와 잎으로 가득 차서 서걱이지만 숲에는 피의 인연이 없다. 가을에, 나는 그걸 알았다. 가을에, 숲은 빛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서서 숲의 먼 안쪽이 환하다. 잎 지는 가을의 서어나무를 들여다보면서 때때로 아버지와 나의 인연의 끈을 생각했다. 가을에, 서어나무는 날마다 가벼워졌고 아버지는 수척한 몸으로 날마다 무너져갔다. 검불같이 말라서 가벼운 몸으로 아버지가 짊어져야 하는 하중은 날마다 무거워지는 것이 아닐까. 서어나무 안쪽에 고인 빛속에서, 돌아누운, 아버지 어깨의 환영이 어른거렸다. 힘든 숨을 고요히 쉬면서 희미하게 살아 있던 그 야윈 어깨. 그리고 벽 쪽을 향해서 중얼거리던 말, ‘미안허다‘ 도 서어나무의 안쪽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가을빛이 맑아서, 그 환영은 실제보다 더욱 또렷했다. 서어나무 안쪽의 가을빛은 많은 모호한 것들을 명료하게 드러내주었다. 그것은 헛것이 아니었다. 가을에는 숲의 가장자리가 바스락거린다. 그늘을 벗어나는 가장자리에서 나무들은 빛이 더 많은 바깥쪽을 향해 뻗어나가고, 참나무가 죽고 오리나무가 쓰러져서 넓어진 자리에 빛이 고이면 서어나무는 그 빛을 향해 나아간다. 그래서 죽어서 쓰러진 나무들의 빈자리는 다시 빛과 잎으로 채워진다. 그래서 가을에는 숲의 가장자리가 바쁘다. 가을에는 숲의 멀고 깊은 안쪽이 가까워 보이고, 여름내 가려져 있던 숲의 뼈대가 보이는데, 보이는 걸 다 그릴 수는 없다. - P264
신우가 수목원을 떠나던 날은 새벽비가 아침에 그치고 날이 개어서 숲을 덮은 낙엽들이 빛의 조각으로 바람에 굴렀다. 깊은 가을이었다. 가을이 깊어서 비스듬한 햇살에 날이 서 있었고 벼랑 끝으로 내몰려가는 위태로운 시간들이 햇살에 바스라졌다. - P281
죽은 자는 자신이 죽은 것을 알지 못할 것이고 죽은 자가 남긴 한 토막의 백골조차도 살아남은 사람의 마음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이므로 죽은 자의 슬픔이나 고통보다는 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더 클 것이고, 살아남은 자가 더 가엾을 것이었다. 노파를 보니까 그랬다. - P295
- 제가 자리잡으면, 한번 놀러 오십시오.. 거기도 그림 그릴 것 많습니다. 물고기, 배, 새, 바람, 파도... 자리에서 일어서기 전에 그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말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내 마음속에서 분명한 언어로 자리잡지 못한 말이었지만, 자리잡지 못하고 멀리서 흔적처럼 다가오는 말이었기 때문에 더욱 다급한 말이었던 것같았다. 그, 말하여지지 않은 말은, 네, 한번 갈게요, 그 마을에서는 물고기를 그리면 좋겠네요.. 물고기는 저마다 표정이 다르고 몸매가 다르니까 그릴 게 많겠군요. 작은 어선을 그려도 좋겠네요. 어선에는 온갖 삶의 도구들이 다 갖추어져 있으니까요. 어선은 물고기를 잡으러 다니니까 생김새도 물고기를 닮은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걸 다 그리자면 한 생애가 흘러가겠네요. 이런 말이었을까. 아마, 그렇게 수다스럽고 화려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말하여지지 않은 말은, 명함 주셔서 고마워요. 명함에 전화번호가 적혀 있군요. 아 현장사업소 약도도 그려져 있네요. 정도였을 것인데, 이 쉽고 간단한 말이 왜 그렇게 멀리서 머뭇거리면서 다가오지 못했던 것일까. - P318
숲에 내리는 눈은 나무 위에 쌓였다가 바람이 불거나 새들이 퍼덕거리면 가루로 흩날린다. 눈 덮인 숲에서는 눈이 그쳐도 눈이 내리고 하늘이 파래도 눈이 내린다.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고 숲에 눈이 쌓이면 나무들의 이름을 구별하기 어려웠는데, 눈에 덮이는 익명성 속에서 나무들은 편안해 보였다. - P320
나는 차에 시동을 걸어서 출발했다. 나는 계약직이었고, 일한 기간이 일 년이 채 안 되었으므로 당연히 퇴직금은 없었다. 수목원을 떠날 때, 내 핸드백에 든 것은 김민수 중위의 명함한 장뿐이었다. 서울에서 고속도로를 달려와서 단 한 번의 우회전으로 이 전방 민통선 마을로 들어왔듯이, 나는 단 한 번의 좌회전으로 자등령을 등지고 다시 서울로 향했다. 아버지가 없는 세상은 넓고, 눈에 걸리는 것이 없는 무인지경으로 보였다. 제대한 김중위의 첫 직장이라는 시화강 하구 마을이 내 마음에 떠올랐다. 나는 그 마을을 가본 적이 없었다. 강이 바다와 합쳐지는 그 넓은 유역의 마을은 나에게 친숙한 고장처럼 구석구석이 떠올랐다. 아마, 김중위의 말을 들어서 그랬을 것이다. 어머니를 따라서 남쪽으로 간 신우가 너무 커서 나를 낯설어하기 전에, 너무 커서 안요한 실장만큼 커지기 전에 신우를 한번 안아주고 싶었다.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나는 서울을 향해 액셀을 밟았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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