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보면 시기적으로 오래된 종교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종교지만 더 넓은 지역으로 전파된 종교는 유대인과 이슬람 같은 유목 민족의 종교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유목 민족의 종교는 건축보다는 운반 가능한 경전이라는 소프트웨어에 집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건축은 종교를 강화하는 장치지만 텍스트인 경전은 종교의 전파에 효율적인 미디어다. 그래서 세계적 규모의 종교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모두 각각 성경, 코란, 불경 같은 소프트웨어인 책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들이다. 물론 종교가 전파된 후 그 지역에서 뿌리내리고 강화되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은 성당, 사원, 절 같은 건축물이다. 후발 주자인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건축에 기초한 선배 종교들을 앞설 수 있었던 것은 인류 문명에서 건축보다 뒤늦게 자리 잡은 문자 체계와 결합한 덕이다.

계단은 높은 곳을 가게 해 주는 장치인데, 건축에서 높은 곳은 권력을 더 가지는 공간이다. 높은 곳이 권력의 자리인 이유는 높은 곳에 있으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람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높은 곳은 권력을 창출한다. 높은 곳을 만든 다음에 그곳에 가게 해 주는 건축 장치는 계단이다. 그리고 그 계단을 장악하는 사람은 권력자다. 지구라트를 지은 사람들은 계단을 통해 권력을 창출하고 그 권력을 통해 나라를 통치하는 힘을 만들어 낸 것이다. 계단은 이처럼 권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장치다. 따라서 우리는 권력을 나타내는 다양한 건축물에서 계단을 볼 수 있다. 파르테논 신전의 하단부에도 계단이 있고, 자금성에도 황제가 있는 건물은 수십 개의 계단 위에 위치한다. 우리나라의 법원이나 검찰도 계단 위에 있는 건물을 선호한다.

수메르문명이나 이집트문명의 발상지는 건조하지만 물은 풍부한 지역이다. 두 문화권에는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나일강 같은 큰 강이 있다. 이 강들은 공통적으로 남북으로 흐르는 강이다. 따라서 강의 상류와 하류의 기후대가 다른 특징이 있다. 덕분에 상류에서는 비가 많이 내리고 그 물이 흘러내려와 강의 하구는 건조기후대이지만 물이 풍부하다. 이러한 지리적 특징 때문에 두 문명권 모두 사람이 모여 살아도 전염병이 잘 돌지 않고, 필요한 물은 강이 공급해 주는 곳이라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들은 인류 역사 초기에 관개수로를 만들어 농사를 지으며 큰 도시를 형성할 수 있었고, 최초의 문명이라는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도시와 건축의 진화는 주어진 기후 속에서 문제 해결을 하는 지능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환경의 변화는 삶의 형식을 바꾼다. 바뀐 경제, 정치 구조는 새로운 건축과 도시를 만든다. 새롭게 만들어진 건축 환경과 도시환경은 다시 사람을 바꾼다. 바뀐 사람은 다시 정치 시스템을 바꾸고 사회조직을 바꾼다. 이는 다시 건축과 도시와 주변 자연환경을 바꾼다. 전체적으로 그 규모와 속도는 점차 빨라진다. 2만 년 전 동굴에서 수십 명만 모여 살던 인간이 지금은 수천만 명이 사는 도시를 만들고 지구의 반대편까지 하루도 안 되어 갈 수 있는 시간 거리의 공간으로 지구를 바꾸었다. 기후가 바뀌면 건축과 도시와 사회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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