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이 확대되면 도덕도 역시 허물어질 것이다.

"그래도 선생님은 파늘루 신부처럼 페스트에도 좋은 점이 있고, 그것이 사람을 각성시키고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한다고 여기고 계시겠죠."

리외는 답답해서 머리를 흔들었다.

"이 세상의 모든 병이 그렇죠.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불행 중에서 진실인 것은 페스트에 있어서도 역시 진실입니다. 하기야 몇몇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구실도 될 수 있을 테죠. 그러나 병이 가져오는 비참과 고통을 볼 때, 페스트에 대해서 체념한다는 것은 미친 사람이거나 눈먼 사람이거나 비겁한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은 신을 믿으시나요?"

질문은 역시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리외가 좀 망설였다.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나는 어둠 속에 있고, 거기서 뚜렷이 보려고 애쓴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특이하게 보이지 않게 된 지 벌써 오래입니다."

"선생님 자신은 신도 믿지 않으시면서 왜 그렇게까지 헌신적이십니까? 선생님의 답변이 제가 대답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의사는 그늘에서 얼굴을 내밀지도 않은 채 이미 대답을 했으며, 만약 자기가 전능의 신을 믿는다면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일을 단념하고 그런 수고는 신에게 맡겨버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심지어는 신을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파늘루까지도그런 식으로 신을 믿는 이는 없는데, 그 이유는 전적으로 자기를 포기하고 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며, 적어도 그 점에 있어서는 리외 자신도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 투쟁함으로써 진리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간은 모든 능력을 가진 것 같습니다"라고 타루가 말했다.

"천만에요. 인간은 오랫동안 고통을 참거나 오랫동안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가치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리외는 갑자기 피로를 느낀 듯이 일어섰다.

"옳은 말씀이에요, 랑베르. 그러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금 하시려는 일에서 마음을 돌려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나로서는 정당하고도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역시 이것만은 말해두어야겠습니다. 즉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성실성이 대체 뭐지요?" 하고 랑베르는 돌연 신중한 태도로 물었다.

"일반적으로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 그것은 나의 직책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미 이해했으리라 생각하지만, 이것은 결국 그들이 가진 가장 개인적인 것을 단념했다는 뜻이다. 페스트의 초기에 그들은 남이 보면 하등의 존재 가치가 없지만 자신들에게는 대단히도 중요한 자질구레한 일들이 너무나 많은 데 놀랐고, 거기에서 개인 생활이라는 것을 체험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와 반대로 남들이 흥미를 갖는 것밖에는 흥미를 갖지 않고 일반적인 관념만을 갖게 되었으며, 그들의 사랑조차도 그들 눈에는 가장 추상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잘 때나 이따금씩 희망을 갖게 되었고, ‘그놈의 멍울, 이젠 좀 끝장이 났으면!’ 하고 생각할 정도로 페스트에 매인 몸이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이미 잠들어 있었으며, 이 기간 전부가 하나의 긴 잠에 불과했다.

그의 유일한 방어는 그 경화(硬化) 상태 속으로 피신하여 자신의 내부에 형성되고 있는 그 매듭을 도로 단단히 졸라맸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만이 견디어내기에 가장 좋은 방법임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환상을 많이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또 피로 때문에 가지고 있던 환상마저도 빼앗겨버렸다. 왜냐하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그 기간에 자기가 맡은 역할은 이미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의 역할은 진단하는 일이었다. 발견하고, 조사하고, 기록하고, 등록하고, 그리고 선고를 내리고 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그는 살려주기 위해서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격리를 명령하기 위해서 있었던 것이다. 그때 사람들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그 증오심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참 인정이 없군요" 하고 누군가 어느 날 그에게 말했다. 천만에, 그는 인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인정으로 해서 그는 살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이 죽어가는 광경을 매일 스무 시간 동안 참고 볼 수가 있었다. 그 인정으로 해서 그는 매일 같은 일을 다시 시작했다. 처음부터 그는 꼭 그만큼의 인정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니 그 정도의 인정이 어떻게 사람을 살려주기에 충분할 수 있을까

그렇다, 그들은 모두가 경계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타인과 격리된 사람들이었으므로 전혀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이유를 찾으며 두려워하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타루가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흐린 눈빛이었으며, 모두가 자기들이 영위하던 생활에서 격리된 이별의 슬픔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죽음만을 생각하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휴가 중이었다. ‘그러나 가장 나쁜 것은’ 하고 타루는 쓰고 있다. ‘그들이 잊힌 사람들이라는 사실과 그들 역시 그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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