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재판
예로부터 사람들은 동물을 사람의 법으로 심판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프랑스에서는 10세기부터 여러 가지 구실을 내세우며 당나귀나 말이나 돼지 따위를 고문하고 교살하고 파문하였다. 1120년, 랑의 주교와 발랑스의 부주교는 농작물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나방의 애벌레들과 들쥐들을 파문하였다. 부르고뉴 지방 사비뉴이 쉬르 에탕의 고문서 중에는 한 암퇘지에 대한 재판 기록이 들어 있다. 그 암퇘지는 다섯 살 난 아이를 잡아먹은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증거는 충분했다. 그 암퇘지가 새끼 여섯 마리와 함께 주둥이에 피칠갑을 한 채 범죄 현장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 돼지들은 정말로 아이를 잡아먹었을까? 재판을 통해 사형이 확정된 어미는 공공장소에서 뒷다리로 매달린 채 죽음을 맞았다. 한편, 새끼 돼지들은 한 농부에게 맡겨져 보호와 감시를 받게 되었다. 그 새끼 돼지들은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죄를 용서받고 계속 자라는 것이 허용되었으며, 결국 어미 돼지가 되어서야 사람들에게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정상적으로〉 도살되었다.
1474년, 스위스의 바젤에서는 한 암탉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그 암탉은 노른자위가 없는 알을 낳은 것 때문에 마귀가 씌었다는 혐의를 받았다. 암탉의 변호인은 고의적인 행위가 아니었음을 들어 무죄를 주장했다. 그 변호의 보람도 없이 암탉은 화형을 당하고 말았다. 1710년이 되어서야, 한 연구자가 노른자 없는 알을 낳는 것은 어떤 병의 결과임을 알아냈다. 그러나 소송 당사자들이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뒤라, 그 사건에 대한 재심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는 1519년에 한 농부가 농작물에 피해를 입힌 두더지 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두더지들의 변호인은 언변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그 두더지들이 너무 어려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한편, 두더지는 농작물을 해치는 곤충들을 잡아먹기 때문에 농부에게 유익하다고 강변하였다. 결국 두더지들에게 내려졌던 사형 선고는 소송인의 밭에서 영원히 추방되는 것으로 감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