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개인은 자신의 약한 종교적 감정을 강화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으로 매주 일요일 교회에 가기로 결심할 수 있다. 하지만 왜 어떤 사람은 무신론자로 남아서도 더없이 행복하게 사는데,
어떤 사람은 굳이 더 종교적인 사람이 되려고 열망할까? 이것은 그사람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문화적, 유전적 성향의 결과일 수는 있지만 결코 자유 의지‘의 결과는 아니다.
성적 욕망에 대해서 참인 말은 모든 욕망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실로 모든 느낌과 생각에도 해당된다. 지금 당신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음 생각을 헤아려보라. 그 생각은 어디서 왔을까? 당신이 자유롭게 그것을 생각하기로 선택하고, 그런 다음에야 그것을 생각했나? 분명히 아니다. 자기 탐색의 과정은 단순한 것에서 시작해 갈수록 점점 힘들어진다. 처음에는 우리가 우리 밖의 세계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단계는 쉽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 자신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우리가 통제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과정은 더 어렵다. 궁극에는 우리의 욕. 심지어 이런 욕망에 대한 반응까지 우리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의견이나 느낌, 욕망에 덜 집착할 수 있다. 우리는 자유 의지가 없다. 하지만 우리 의지의 폭정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인간은 보통 자신의 욕망에 너무나 큰 중요성을 부여한 나머지 이 욕망에 따라 온 세상을 지배하고 조성하려 애쓴다. 자신의 열망을 추구하느라 달에도 날아가고,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전 생태계까지 불안정하게 만든다. 만약 우리의 욕망이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의 마술 같은 발현이 아니라 생화학적인 과정(여기에는 문화적 요인들도 영항을 미치지만 이 역시 우리의 통제력 밖에 있다)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것에 덜 사로잡힐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환상이라면,
무엇이든 실현하려 애쓰기보다 자기 자신과 정신, 그리고 욕망을이해하는 것이 더 낫다.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내디뎌야 할 결정적인 걸음은, ‘자아‘야 말로 우리 정신의 복잡한 매커니즘이 끊임없이 지어내고 업데이트하고 재작성하는 허구적 이야기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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