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거짓말에는 또 다른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거짓말을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때 나타난다. 잘못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 저지르는 죄를 ‘작위에 의한 죄‘라고 한다. 그런데 잘못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음에도 방치하는 행위 역시 작위의 죄다. 일반적으로 적극적인 범죄 행위를 소극적인 방치보다 더 심각한 잘못으로 판단하지만 꼭그런 것만은 아니다.
아무 문제 없이 잘 산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그는 모두를 미소로 대하고, 다른 사람들의 부탁은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는다. 부당한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학대를 받아도 불평하지 않는다. 떼 지어 다니는 무리 속 물고기 한 마리처럼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은밀한 불안감이 마음의 한 귀퉁이를 갉아먹고 있다. 인간의 삶은 모두 그 자체가 고통이다. 그 사람도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외롭고 쓸쓸하고 성취감도 없다. 자신을 감추는 습관이 삶의 의미마저 감춰 버린다. 결국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만 당한다. 즉 노예에 불과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원하는 것도, 필요한 것도 얻지 못한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속내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불안한 삶에 균형을 잡아줄 가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런 현실 때문에 겉으로는 멀쩡해 보일지라도 마음은 늘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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