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후>에서 작가는 ‘결혼갱신제’라는 제도가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결혼 제도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모든’은 아니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 기존의 결혼제도를 바탕으로 한 가부장적인 문화가 지금에 이르러서는 경제주체로서의 동등한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여성들이 결혼 및 출산을 거부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출생률을 놓이기 위해서는 국가가 결혼 제도의 형태에 상관없이 임신, 출산, 육아,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하며 성별과 가족 구성에 관계없이 출생과 연계되는 모든 복지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분석에서 이 새로운 결혼 제도의 입법이 이루어졌다. .... 우리 사회의 저출산-저출생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인가? 과연 국가가 재생산과 관련하여 전적인 책임을 져주면 해결될 수 있는 건가? 한국사회의 특수한 여러 경제-사회문화적인 측면에 대한 총체적인 고민과 그에 기반한 세밀하고 통합적인 대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단순하고 일면적인 진단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깊게 남는 대목이었다. 더 근본적으로는 저출산-출생이 왜 ‘문제’로 인식되어야 하는가이다. 사회 구성원의 재생산 없이 사회가 유지-존속될 수 없다는 위기 의식으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개인의 행복이 우선이라고 공동체나 가족을 위해, 또는 자식을 위해 개인의 충실한 자아 실현을 추구하느라 결혼, 출산 등을 거부하는 행위가 비난 받는게 정당한 것인지? 무엇보다도 결혼이라는 제도의 모순과 문제 해결을 위해 ‘갱신제’가 과연 유용한 것인가하는 의심을 안 할 수 없다. 왜 굳이 갱신제라는 계약을 통해서라도 제도 안에서 결혼이라는 걸 유지하고 싶어하는 것인지 안타깝다. 오히려 작가가 이미 소설 속에서 다양하게 제시했던 다양한 가족의 형태들, 다양한 돌봄의 형태들을 좀 더 스펙터클하게 보여주고 그러한 모습들이 제기하는 다양한 질문들을 함께 고민해보는 것이 우리가 실제로 가족 안에서 부부로, 이혼한 전부인/남편으로, 동거인으로, 반려인으로 살아가는데 훨씬 더 생동감있게 다가올 수 있지 않았을까싶다. <5년 후>에서 결혼갱신제 문제보다도 나에게 더 신선하고 의미있게 다가온 문제는 국가가 촘촘하게 다양한 돌봄 복지를 제공하고 돌봄 노동에 대한 교육과 일자리 창출을 해내는 모습이었다. 이 부분은 적극적으로 실제 정책에 반영되어 구체적인 복지로 구현되었으면 하는 절실한 바람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저평가되어 하찮은 노동으로 여겨지고 있는 돌봄노동에 대한 인식의 전환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어 더욱 귀하게 여겨진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