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개의 이름 - 정수일 평전
차병직 지음 / 창비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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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1980년대 생들은 ‘국민학교’ 재학시절 그렸던 반공 포스터와 공책이나 연필과 맞바꿨던 삐라, 괴물 이미지로 투사되던 단어‘간첩’을 기억할 것이다. 이후 시나브로 잊고 지냈던 간첩이 티브이 뉴스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된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중후반, 깐수 정수일의 실체가 밝혀지면서다. 그는 북한의 남파 간첩이었다. 그런데 의아했다. 깐수는 흔히 간첩하면 떠올려지는 이미지와는 무척이나 달랐다. 이춘풍도 울고 갈 가느다란 몸매, 살기는커녕 선량한 눈매와 자애로운 미소. 그는 누구와 대적할 만한 탄탄한 체격도 아니었고, 번뜩이는 적개심이나 맹렬함 또한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털끝만 맹수였던 초식동물 같달까. 세상의 반응도 그랬다. 반공의식이 먼지처럼 떠다니던 시대였건만, 그를 구명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당시 나는 워낙 어렸던 터라, 깐수에 대한 기억은 딱 거기까지다. 간첩이라기엔 어딘가 설프게 보였던 사람.

 

그러다, 사회 초년생 시절, 풀려난 깐수를, 아니 정수일을 회사에서 다시 만났다. 분명 간첩인데 회사 사람들은 그에게 예를 갖췄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대체 그의 진짜 정체가 뭐기에 사람들이 그를 ‘대접’할까. 하지만 그 어떤 사실이나 핵심에 가닿지 못한 채 정신없이 사회생활을 하며 머리가 굵어져가다, 지난해 그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깐수 정수일에 대해 큰 물음표를 갖게 된 시점이. 그러다 그의 일생 혹은, 행적 또는 방랑을 담은 신간 <일곱 개의 이름 – 정수일 평전>을 읽게 됐다.

 

머리가 유난히 비상했던 정수일은 어디서부터 시작됐고, 종잡을 수 없는 그의 인생횡보는 어디가 첫걸음이며, 그가 왜 간첩이 됐고, 간첩이었던 그가 한국의 시민이 될 수 있었던 연유는 무엇인지에 관해 책은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지리적으로 동에서 서로 먼 거리를 두서없이 횡행하고, 동양에서 서양 문화권을 들쑥날쑥 오가기도 한다. 정수일은 한평생 상상도 못할 거리를 뛰고 날고 걸어다녔던 희대의 방랑자였다. 그런데 재미난 건, 그를 방랑의 길에 들어서게 한 게 간첩의 책무와 사명만이 아닌 학업에의 열정이었다는 사실이다. 절로 ‘이런 별난 간첩 보게’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두뇌가 명석했고, 위장 간첩 활동을 하기에도 이력이 출중했으나 그는 간첩다운 간첩이 되지 못한다. 타고난 성정이나 삶의 지향점이 간첩을 하기엔 한참이나 함량 미달이었던 인물. 오히려 동서로 횡행해야 했던 간첩활동 덕에 그는 동서양의 문명을 다양하게 접하고, 깊이 있게 파고들 수 있는 운을 거머쥔다. 책을 읽다 보면 정수일이 간첩활동을 한다기보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고서를 수집하고 탐독하며 학자로서의 욕망을 채우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책 속 한 줄이 정수일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학문은 이념이나 권력이 함부로 간섭하거나 강제할 수 없다는 데서 정서우이(정수일)는 독특한 자유의 감정을 맛보았다.’ 실제 책 속 그의 행적을 좇다 보면, 간첩으로 얽매인 부자유함보다 신나게 읽고 쓰고, 파고들던 학자 정수일의 자유함이 느껴진다. 참으로 기가 차는 간첩이다. 하여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알았으면 한다. 한 인간의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으면서도, 위대한 것인지. 케케묵은 반공의식으로 그를 간첩이라고만 손가락질하기엔 그는 이 세상에 너무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났다.

 

깐수가 정수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회사 사람들이 그에게 왜 예를 갖췄는지 20년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됐다. 그의 무모하리만치 순수한 학문에 대한 열정이 적잖이 부러워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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