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집 <바람의 사춘기>를 소개하려고 자판을 쳐다보다가아끼는 팟캐스트부터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하거나 설거지할 때 이어폰 끼고 듣는 팟캐스트 중에 인터넷문학라디오 "문장의 소리"가 있다. 다양한 문학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우연히 동시를 주로 짓는 박성우 시인이 출연한 에피소드를 듣게 되었다. 학교를 다니면 누구나 최초로 쓰게 되는 문학이 동시였다고, 하지만 점점 아이의 마음과 멀어진, 외우고 시험치는 것에만 집중하는 학교 현실이 아쉬워서 그만큼 더 동시를 짓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또, 팟캐스트 "이안의 동시 이야기"는 아예 매번 동시들을 읊고 뜻을 헤아리면서 외워보는 것을 시인이자 진행자이신 두 분이 직접 한다. 시를 짓는 마음.시를 외우는 마음.시를 외우는 것을 듣는 마음.시를 읽는 마음.시를 읽는 것을 보는 마음.시와 라디오와 시집을 연결하다 보니 어느 새 바람의 사춘기까지 왔다. 아이와 나는 새삼스레 올해의 봄을 맞으면서사춘기가 언제 문을 두드릴지 몰라서일단은 느긋한 척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올해의 봄에 만나기엔 이른가 싶어서)이미 겪어본 사춘기지만 나처럼은 아니길 바라며 그 비밀을 알려주지 않는 나,이게 도대체 무엇일지 몰라 여러 안내서만 들춰보는 아이.아이는 4월 내내(내가 은근슬쩍 펼쳐둔) 동시집을 오며가며 보더니, 가끔씩 자기 모습 같은 동시를 나도 읽어보라고 들이댄다.한 귀로는 네 마음의 주인은 너야-라고 하면서도한 귀로는 네 마음대로 하면 안돼-하고 적당히 눈치껏 하길 바라는 나 때문에 아이는 오늘도 갈팡질팡 학교학원집을 오간다. 일주일 동안 놀이터 한 번 가는 것도 힘들어진 4학년. 동생을 데리고 등하교를 시작했고 혼자 문구점 가서 돈을 써보게 되었고공부 욕심도 생기고.사실 그게 다라고 생각했다.알고 보니 얘네들은 자기 마음만 보고 있는 게 아니라(나는 세탁소에 간다) 남의 사정도 헤아리고 있었다는 걸(창원 철물, 태양이 진다, 표지판)누군가를 잊지 않고 있다는 걸(함께, 어떤 무덤)동시집 바람의 사춘기를 읽으며 아이를 더 헤아려 본다.
어른인 내게는 두 종류의 책이 있다. 읽을 이유가 보이는 책과 보이지 않는 책들. 아무리 좋다고 광고와 추천이 날아다녀도 어른이 된 이제는 이 책이 나에게 무슨 이유로 다가오는지가 중요하다.딸 아이에게 내가 권하는 책도 그러할 것이다. 매번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의외의 책을 함께 읽고, 어떤 책은 나만 읽는다. 나도 잘 모르는 내 기분을 연령별 권장도서라고 해서 모든 걸 시원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초등학생만의 사랑과 우정, 관계 스트레스의 모양새 같은 건 아무래도 탐독하면서 예습하듯 익히는 모습를 보고는 한다.남유하 작가의 나무가 된 아이는 내가 먼저 완독을 했다. 아이가 읽던 걸 가져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한 편씩 읽었다. 읽을수록 이 책은 단숨에 읽을 책이 아니라고 느꼈다. (6편 뿐이라서, 단편이라서 아쉬웠다. 한 번은 시간이 좀 남아서 길게 읽고 싶었는데 이렇게 강렬한 이야기가 벌써 끝났다는 게 아쉬운 점도 있었다. ) 어린이문학을 읽을 때는 우리집 어린이들의 반응을 살피거나 스케줄 따라 후다닥 읽게 되는 편이었는데 이번 책은 기존의 내 생각을 완전 바꿔버렸다.사실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인류가 절반의 SF적인 변화를 겪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 속의 6가지 이야기들은 그런 우리의 상상을 잘 다듬어 보여주었다. 이상하고 놀라운 광경을 아이의 눈으로만 보게 되고(나무가 된 아이), 갑자기 아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데(구멍 난 아빠) 주인공은 너무나 외로운 상황 속에 빠진 것이지만 그게 어른이 되는 과정인 것을 아는 "읽는 어른"인 나는 애처롭게 볼 수밖에 없었다.그 시절에 나도 겪었던 일들을 참 잘 묘사했다는 단순한 평가를 넘어 남유하 작가는 나만 알던 나의 이야기를 새롭게만들어 내 경험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내가 외로웠던 것은 그런 감정이 있어서였구나, 내가 고민했던 것은 그런 힘이 자라고 있어서였구나 하고 책 읽는 중간중간에 몇 번이나 작가의 이름이 써진 책날개로 돌아가 멍하니 보고 또 보고 있었다.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작가는 무슨 밥을 먹고 글을 쓰는지 궁금해서 들여다 보듯이. (이 집 밥 참 맛있네..)요즘 책 읽는 어른에게 김초엽 작가가 있다면, 어린이들에게는 남유하 작가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어린이책 읽는 어른들에게는 남유하 작가가 있다. (이 부분이 사실 제일 중요하다.) 오늘은 딸의 책상 위에 이 책을 다시 올려놓고 아이의 시간을 가만히 기다려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