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4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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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슈메일이라 불러다오.


나는 가끔 자연재해라고도 불리는 운명의 소용돌이를 직격타로 맞았다.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장난은 펼쳐지지만, 나는 극심한 자기 연민과 함께 내 결정을 너무 후회하고 걱정하며 끊임없이 과거를 회상했다. 머릿속에서 같은 일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그리며 과거의 결정을 떠올렸다. 어떻게 행동했어야 했는지 수없이 고민했다. 내가 멈출 수 있었던 일이 아님에도. 결국 그 소용돌이를 머릿속으로 그리다 보니 어느 순간 실제의 나는 태풍의 눈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나는 그렇게 내가 만들어 낸 폭풍의 눈에 갇힌 것이다.


소설 <모비딕>에서 에이해브는 자신에게 치명적인 장애를 입힌 고래 '모비딕'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제 인생을 바친다. 그의 복수는 너무나 처절하고 광란의 고통이다. 에이해브는 모비딕과 겨루는 꿈을 탈진할 정도로 생생하게 꾸며 그 꿈 때문에 그의 머릿속은 미친듯이 충돌하고 불타오르는 기분이다. 거대한 흰 고래를 잡기 위한 처절한 욕망과 분노 그리고 그 저편에 숨겨져 있는 고통스러운 두려움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기 마련이다.



"오, 에이해브!" 스타벅이 소리쳤다. "오늘이 사흘째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보십시오! 모비 딕은 당신을 쫓고 있지 않습니다. 미친 듯이 고래를 쫓고 있는 것은 당신입니다!"



에필로그 이후 이 책의 해제에는 작품의 내외는 물론 다양한 시각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나는 이 책을 다른 무엇보다도 심리적 해석을 바탕으로 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흰 고래가 개인의 트라우마를 상징한다는 해석이다. 에이해브가 모비딕에게 다리 한쪽을 잃은 사건에서 기인한 트라우마가 그 충격적인 사건(트라우마)를 보상받기 위해 끊임없이 기억 속에서 '반복'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반복'은 잃어버리고 상실한 것을 아까워하고 잊지 못하기에 그 사건에 대한 원망과 분노의 감정을 키운다는 뜻이다. 내게는 분노와 병적인 원망이었다기 보다는 후회였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좁았던 인생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많은 측면은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은 두려움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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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바다로 간다면 - NASA의 과학자, 우주의 심해에서 외계 생명체를 찾다
케빈 피터 핸드 지음, 조은영 옮김 / 해나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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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수업 때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이 떠오른다. 세계적인 인재가 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바로 나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선생님은 곧이어 수행평가로 주제로 ''에 대해 발표하도록 지도했다. 이 발표는 그 어떤 학생도 쉽사리 끝내지 못하는 과제 중에 하나였다. 나 또한 오랜 시간 고민해서 나도 알 수 없는, 이도 저도 아닌 발표를 했던 것 같다. 나도 모르는 나를 어떻게 내가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만큼 우리는 우리라는 존재로 평생을 살아왔지만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온전히 받아들이거나 해석하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알고 있다. 그 선생님이 제시했던 평생의 과제처럼, 내가 더 큰 세계를 알기 위해서 내 내면에 깊이 남겨져 있는 숙제를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을.

 

 

이 문제는 '우주''바다'를 직면한 인간의 숙제이기도 할까? [우주의 바다로 간다면]의 저자 케빈 피터 핸드는 우연한 기회로 세계와 지구를 담고 있는 깊은 바닷속으로 잠수하는 경험을 한다. 바다조차 미처 다 알지 못하고 파악하지 못한 인간은 더 큰 세계, 우주를 탐험하고 다른 생명체를 찾기를 갈구한다. 그래서 바다와 같이 물을 담고 있는 행성을 찾아 유영하고, 더 큰 바다 세계가 존재하는 곳을 찾아 떠난다.

 

 

[우주의 바다로 간다면]은 그 과정에서 과학 이론과 공식을 바탕으로 어떻게 우주 탐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 설명한다. 또한 물이 존재할 수 있는 행성-유로파,엔셀라두스 그리고 타이탄-을 소개하며 드넓은 우주에서 거주 가능한 곳의 조건에 대해 말한다. 대륙도, 조수 웅덩이도 없는 외행성계의 바다 세계에서는 얼음 지각이 태양에서 오는 빛을 모두 차단하고 생명이 탄생할 길이 없다. 즉 유로파나 엔셀라두스 같은 세계에서는 생명이 자기 바다에서 시작하고 거주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초기 지구를 생각해 보면 지구의 심해는 어린 행성의 표면에서 발생한 혼돈으로부터 보호되었고, 소행성과 유성이 주기적으로 충돌하며 대혼란을 일으키고 상당량의 바닷물이 끓어올랐을 가능성이 있다. 이 시기에는 초기 바다의 가장 깊은 구역이 생물의 유일한 피난처였을 것이다. 이런 생명의 기원에 관한 가설은 인간이 바다 세계를 연구하며 가설을 테스트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P.377 15장 해양 탐사의 새 시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이 수천 년까지는 아니지만 수 세기 동안 고민해온 질문에 답할 도구와 기술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이 시대를 산다. 우리는 혼자인가? 앞으로 몇 세기 뒤, 우리 후손이 역사의 지금 이 순간을 갈릴레오와 코페른쿠스 혁명에 버금가는 경외감을 지니고 돌아보길 바란다. 그들이 생명이 있음으로 밝힌 것이 바로 이 시기였다고 말하길 소망한다.

 

지구 밖에서 생명체를 발견하든 또는 지구 밖에는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드러나든,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서 벗어나 어느 평범한 별 주위를 공전하는 많은 행성 중 하나로 자리 변경한 것만큼이나 우주에 관한 근본적인 사고의 틀이 바뀔 것이다.

 

 

 

과학 분야에 식견이 좁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파트도 있었지만 이 책은 과학자들이 어떤 방식과 생각으로 우주를 연구하고 있는지를 알려준 책이었다. 우주와 외계 생명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생명의 흔적을 찾는, 생명체를 찾는 여정에 더욱 관심 있게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알면 알수록 어떻게 지구라는 행성에서 나라는 존재가 생명체로 태어나 살 수 있었는지 궁금하기만 할 뿐이다. 이렇게 가까운 바다에서 먼바다를 찾아 떠나봤다. 지금 나는 가볼 수 없는 먼바다 대신 가까운 바다만큼이라도 탐험해 보고 싶은 기분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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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조건 - 융 심리학으로 보는 친밀한 관계의 심층심리
제임스 홀리스 지음, 김현철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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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오은영 박사님의 [금쪽 상담소]라는 프로그램을 보며 친구들과 나눴던 이야기가 있다. 핵심은 바로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의 인정과 사랑이 중요하고, 그들로부터 '건강한 사랑'을 학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정 애착 유형'의 사람들이 '불안정 애착 유형'보다 적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큰 오만이었는지 알게 됐다. 세상에는 건강한 애착 유형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더라.



아동기의 경험은 우리의 삶에, 그리고 사랑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친다. 책에서는 아동기 애착관계 형성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부모로부터의 관찰과 학습, 타자와의 동일시 현상 - '스톡홀름증후군', 애정의 단절 '중독'을 이야기한다. 고독하게 태어나 또다시 불완전한 결핍을 끌어안은 현대인은 자신에게 맞는 완벽한 배우자를 구하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책에서는 이를 '에던 프로젝트'라고 설명한다. 나의 결핍을 채워 완전하게 만들어줄 누군가를 찾고자 하는 열망은 '투사' 즉, '비슷한 대상'을 찾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는 우리와 닮은 사람에게 끌림을 느끼며 타자와의 동일시를 통해 낙원으로 돌아왔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애정관계는 투사로 시작된다. 그러나 관계가 진행되며 투사는 점차 지워지고 우리는 혼란, 놀람, 당황, 분노의 감정을 겪는다. 저자는 여기서 연애관계의 네 가지 원리를 말한다.



1. 내가 나 자신에 관해 알지 못하는 것은 타자에게 투사된다.

2. 우리는 어렸을 때의 상처와 개성화를 이뤄야 한다는 의무를 타자에게 투사한다.

3. 투사의 자리는 결국 억울함과 권력의 문제로 채워질 뿐이다.

4. 연애관계의 유일한 치유법은 나의 개성화 과정을 나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상처받은 에로스로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1. 관계에서 내가 상대에게 의존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2. 내가 성인으로서 직접 해야 하는데도 상대에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3. 과거 경험으로 인해 형성된 태도와 행동 패턴이 어떤 식으로 내게 계속 압박을 가하는가?

4. 상대의 감정적 안녕에 책임감을 지나치게 많이 느끼는가? 나 자신의 여정을 희생해서라도 상대의 여정까지 짊어지려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인가?

5.나는 나의 선택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는가? 그렇지 않다면 언제 나의 행복을 위한 선택을 할 계획인가? 내가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공포나 타인의 허락 또는 낡은 행동 습관이 있다면 무엇인가?

6. 나는 고통을 겪는 일을 어떤 방식으로 회피하려 하는가?



오노레 드 발자크의 <사라진느>를 읽고 난 후에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간혹 사랑하는 사람의 거짓된 모습을 만들어 내 그 허상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허상은 결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이루어진 사랑은 온전할 수 없다. 결국 실제와 허상의 괴리감에 좌절하게 될 뿐이다. 우리는 이런 좌절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책에서 이야기하듯이 '영혼이 내게 요구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진지하고 꾸준하게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해 그 목적을 훈련해야 한다. 훈련 과정에서 실수가 있더라도 괜찮다. 가끔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자신의 영혼과 교감하는 법을 배우면, 타인과 친밀하고 영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사랑의조건 #서평 #서평책 #사랑의기술 #더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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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이야기를 사랑한 사람이었다.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를 열광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그것들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나만의 글을 직접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글을 읽고 감상하는 사람으로서 예술을 즐길 뿐이지만 내 가슴 한편에는 늘 창작에 대한 욕구가 숨어 있다.

창작을 시작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꽤 많은 작법서를 접했다. '글쓰기'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작법서 추천을 받았을 때 영화 시나리오 작법서의 추천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예컨대 작법서 추천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 세 작품 <Save the Cat! : 흥행하는 영화 시나리오의 8가지 법칙>, <Story :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시나리오 가이드> 등이 그러하다. 오늘날 웹소설의 열풍이 계속되면서 장르소설 작법서 또한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나는 오랜 기간 동안 사랑받아온 스테디셀러 작들 중에 선별한 것임을 밝힌다.

오늘의 서평 책 <Save the Cat! : 나의 첫 소설 쓰기>는 앞서 언급한 유명 'Save the Cat'의 시리즈로 소설의 15가지 법칙을 설명하는 책이다. 여기서 소설의 15가지 법칙이란 플롯의 공식을 의미한다. 책은 이 15가지 법칙을 소개하며 어떤 크기의 사건이 언제, 어떻게 독자에게 제시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모든 성공한 이야기에는 이 플롯의 공식이 사용되었고, 사람들은 이 특정한 스토리텔링에 매혹되기 마련이니. 이 책은 플롯과 구조를 소개하며 주인공과 그 주변인들의 설정, 주인공의 궁극적인 목표와 변화 등의 중요 요소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는다. 따라서 이 책은 플롯(이야기의 순서)의 공식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이야기의 궁극적인 방향성을 제시한다.


나는 이 책을 크게 4막으로 나누어 소개하고자 한다.

1막 : 시작하며, 무엇이 독자의 관심을 끌어당기는가? (1장)

책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우리는 'Save the Cat!'의 의미를 이해함으로써 독자들이 책을 계속 읽게 만드는 법을 짚고 넘어간다. 'Save the Cat'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다소 비호감 캐릭터라면 초반에 고양이를 구하게 함으로써 비호감 캐릭터지만 독자들이 응원할 마음이 생기게 해 주는 무언가를 말한다. 이 '응원하게 되는 주인공'에 대한 설명들을 이후에 플롯의 공식을 설명하면서도 등장한다.

2막 : 세이브 더 캣 비트 시트 (2장)

나는 2장의 대략 90 페이지가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책은 본격적으로 잘 쓴 이야기의 공식을 설명하며 3막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고 15 비트로 이야기를 세분화 시킨다. 이렇게 나눠진 비트들을 이후 구체적인 예시와 이야기 요소들을 통해 설명된다. 마지막으로 책은 여러 체크리스트를 제시해 우리가 만든 주인공과 이야기를 점검해 볼 수 있게 돕는다.

이 파트에서 작가는 스토리텔링 워크숍을 열어본 사람답게 초보 작가의 잘못된 생각이나 방향, 실수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그의 허를 찌르는 지적에 뼈가 아플 정도이지만 그 후에 따라오는 꿀팁 노하우와 깨달음은 마치 60만 원짜리 시나리오 제작 특강을 20700원에 즐기는 기분이다. 그만큼 책의 저자는 초보 작가에게 설명하듯이 설명하고 강조하고 이해시킨다.

3막 : 세이브 터 캣 10가지 소설 장르 - 추리물, 통과의례, 집단 이야기, 슈퍼히어로, 평범한 사람에게 닥친 문제, 바보의 승리, 버디 러브 스토리, 요술 램프, 황금 양털, 집 안의 괴물 (3장 ~ 13장)

이 장르 소개 파트는 'Save the Cat'의 기준으로 나뉜 장르들의 특징을 설명하고 실제 작품을 토대로 분석하는 파트이다. 이 장르들은 작가가 필수적으로 포함시켜야 할 특정 요소를 가지고 있다. 4장부터 13장까지 유명 소설 작품이 제시되고 우리는 앞서 배운 세이브 더 캣의 15가지의 비트를 적용해 그 작품을 직접 분석한다.

<Save the Cat! : 나의 첫 소설 쓰기>에서 분석하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 걸 온 더 트레인

- 연을 쫓는 아이

- 헬프

-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 미저리

- 브리짓 존스의 일기

- 에브리씽 에브리씽

- 트웬티즈 걸

- 레디 플레이어 원

- 하트 모양 상자

<Save the Cat! : 나의 첫 소설 쓰기>는 2018년에 출간된 서적답게 비교적 최근의 소설 작품을 소개한다. 또한 대부분의 소설이 영화로 제작된 유명 소설들이다. 실제 소설 원작을 읽지는 않았더라도 대략적인 내용을 짐작할 수 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아쉬웠던 점은 그럼에도 한국인 독자에게는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작품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에브리씽 에브리씽>, <트웬티즈 걸>, <하트 모양 상자>가 그러한데 나는 이 작품들을 처음 들어봤다. 검색해 본 결과 한국어 번역본이 없는 소설도 있다는 걸 발견했다. 사실 장르 소개 파트는 해당 작품을 위주로 분석하고 설명하기 때문에 이 작품 선정이 미국 독자들에게 최선일 수 있겠지만, K-독자에게는 다소 아쉬웠다고 생각한다.

4막 : 나를 유혹해 봐!, 작가를 구하라! (14장, 15장)

이제 실천 파트이다. 저자는 여기서 팔리는 로그 라인은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며 초보 작가들이 흔히 가진 질문에 대해 답을 한다. 작가는 마지막으로 본인의 작품을 분석하는데 사실 이 작가의 소설 또한 한국어 번역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크게 도움이 되거나 궁금하지는 않았다.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만약 누가 내게 작법서 추천을 묻는다면 나는 <Save the Cat! : 나의 첫 소설 쓰기>를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이야기의 기본 원칙을 굉장히 섬세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감을 떠올려 이야기를 구상하고 써 내려가기 시작한 초보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이야기의 중심 구조 즉, 뼈대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당장 적용하고 사용해야만 하는 '필승 이야기의 공식과 원리'를 설명한다.

사실 초보 작가는 작법서에서 "여러분은 아이러니를 활용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해봤자 아이러니라는 것을 이해만 할 뿐 적용시켜서 온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전에 이야기의 뼈대에 대한 학습이 우선시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앞서 설명했듯 초보 작가라면 누구나 정독하고 소화시켜야 할, 이야기의 근본에 집중하며 워크숍처럼 차근차근히 단계를 밟는다. 나는 원래 책에 줄을 긋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였지만, 이 책만큼은 밑줄을 쫙쫙 쳐가며 읽었다. 그만큼 이 책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나 글쓰기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이라면 나는 <Save the Cat! : 나의 첫 소설 쓰기>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 받았으며 개인적인 소감을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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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딸들 -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와 그들의 어머니
소피 카르캥 지음, 임미경 옮김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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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카르캥의 책 글 쓰는 딸들을 읽었다. 책은 뒤라스와 보부아르, 콜레트라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작가들의 어머니를 비춘다. <글 쓰는 딸들>은 소설적 형식으로 쓰인, 마치 읽기 쉽게 쓰인 논문 같았다. 실제로 책에 달린 무수한 각주들을 보면 이 책이 작가들의 수많은 발자취를 분석하고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들의 생전 인터뷰, 그들에 대한 논문, 그들의 책 등. 그렇게 분석된 사실로 이루어진 소설은 읽기는 쉬울지언정 무겁다.

세 여성 작가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족쇄와 같은 가정, 어머니에게서 벗어나 '글쓰기'로의 도피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그 불행의 도피는 성공적이었고, 그들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성작가로서 자리매김했다. 불행이 작가의 영감과 양식이 되어 글로 태어나는 행위는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P. 50, 51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마리 D.

" (생략) 나는 그때 여섯 살이었고, 그 아이는 열한 살 반으로 아직 사춘기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의 음경이 아직은 몰랑했다. 그는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주었다. 내 손을 끌어 음경을 붙잡게 한 뒤 자기 손으로 내 손을 감쌌다. 우리의 두 손이 그의 음경을 주물렀다. 점점 더 세게 주물렀다. 잠시 후 그 아이는 움직임을 멈추고 손을 뗐다. 그때 내 손안에 잡혀 있던 것의 형상. 그 미지근한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눈을 감고 아직은 가닿을 수 없는 쾌감을 향해 올라가던 그 아이의 얼굴, 형 집행을 기다리는 순교자 같았던 그 얼굴 역시 잊히지 않는다"

한참 뒤에 뒤라스는 이 일을 글로 썼다.

...(생략)...

'어쩌면 엄마가 그날 내 모습을 엿본 게 아닐까?' 어린 마르그리트는 생각했다. '열쇠구멍으로 들여다보지 않았을까?' 마르그리트가 그 장면을 이야기할 때, 어머니의 눈길은 완강했다. 마르그리트의 입술이 굳었다. 어머니가 거칠게 손으로 마르그리트의 입을 막았다. "그 일은 잊어버려. 없었던 일로 쳐. 그리고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마." 그 일은 비밀이었다. 마르그리트는 물론 어머니의 말에 복종했다. 그 일을 다시는 꺼내지 않았다. 입을 봉했다.

다만 그 비밀을 글로 썼다.

P. 107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마리 D.

마르그리트는 어머니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엄마는 피에르 오빠만 사랑하지. 왜 나는 사랑해 주지 않아? 어째서 폴 오빠도 사랑하지 않는 거야?"

어머니가 딸을 펴다 보았다.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눈물 한줄기가 어머니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르그리트는 밖으로 꺼내 보인 자신의 분노를 다시 가슴에 눌러 담았다. 이날의 기억 역시 나중에 글로 쓸 것이다.

이 책은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 세 작가의 작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불행한 가정 환경, 가족 간의 족쇄 같은 사랑, 서로를 파멸시키는 모녀관계에 대해 생각해본 사람들 또한 흥미롭게 읽을 책이다. 프랑스의 개인주의적인 성향과 미국과는 확연히 다른 교육 방법, 이에 대한 정신 분석학적 서술은 이 책이 문학과 인문학 그 사이에 위치함을 보여준다.

<글 쓰는 딸들>은 자비에 돌란 감독의 영화 <아이킬드 마이 마더>, <마미>, <단지 세상의 끝>을 인상 깊게 본 사람이나 그레타 거윅 감독의 <레이디 버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인간이기에 우리는 나를 힘들게 만드는 그 존재에게 증오와 불행,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사랑과 애정을 느낀다. 무엇 하나로 정의될 수 없는 감정으로 이루어진 '어머니'는 사랑하지만 좋아할 수는 없는, 이해해 보지만 이해할 수는 없는 사람이다.

"내겐 어머니라는 낙원이 있었어요.

그 낙원은 불행, 사랑, 부당함, 증오, 이 모든 것이었죠."

-마르그리트 뒤라스

가족이라는 족쇄가 만들어낸 불행과 도피처. 우리는, 작가가 아닌 우리는 어떤 도피처로 향할 것인가? 그리고 인생이라는 책의 그 무수히 많은 페이지들에 우리의 불행을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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