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속에서의 아픔과 상처를 견디도록 도와준 건 가수 오빠를 사랑하는 일이었던 소녀. 마음을 둘 곳이 없던 집, 한 명의 친구 외에는 밥 먹을 사람이 없던 학교와 같이 마음의 방황을 겪게 하는 곳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껏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빠질 수 있도록 도와준 아이돌 스타에 대한 사랑은 자칫 십대의 무모한 극성팬 심리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십대의 마음이 닿을 수 있는 곳이 아이돌 스타에 대한 사랑이고 그것이 순수하게 팬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모습이라면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 어른들의 시선이 조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사실 민트문은 신비롭다. 꿈에서 본 가수의 민트색 염색이란 표현 외에 어느 곳에서도 추측하기 힘든 존재다. 그런 존재가 문자까지 보낸다. 그래서 여러 번 다시 읽어보며 작가가 말하려는 민트문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민트색으로 염색한 가수 오빠의 존재는 소녀에게는 그 자체로서 완벽하고 완전함을 나타낸다. 그러나 내면에 가진 오빠의 우울감을 사실 팬으로서는 다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어둔 밤 조용히 떠올라서 조용히 우리 곁을 비춰주는 달은 소녀의 삶에 희망이자 위로였던 민트색 머리의 오빠를 상징하는 것 같다. 그렇게나마 마음 둘 곳이 없는 십대 소녀의 마음을 토닥토닥 위로해주는 달, 민트문이 아닐까?
이 책은 이 작품과 같이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저 경험하는 그 자체가 아니라 십대 청소년들이 마주하는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걸어나가는 당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어른으로서 참 미안한 마음이 드는 작품들이었다.
▶아빠와 단둘이 살아가는 여중생이 첫 생리를 시작하며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서 혼자 정보를 찾고 대처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인간의 생리적 현상의 의미와 소중함을 어른보다 더 분명히 깨달은 모습을 담은 '지금은 생리 중'이란 소설 역시 여전히 입 밖에 내기 부끄럽거나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생리'에 대한 편견을 깨고 진지하게 마주할 용기를 갖게 한다.
▶승리와는 거리가 멀고 잘 하는 것 하나 없다고 여기는 남학생이 삐딱한 심정으로 부모의 말 한마디에 반항하는 모습을 담은 '이번 생은 망했어'에서도 손가락에 난 애꿎은 사마귀로 성질을 부리거나 악한 생각을 자꾸 하게 되지만, 결국은 나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사마귀를 불끈 쥔 주먹 안에서 가두어둠으로써 자신을 극복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숨죽이며 의무적으로 저녁 식사를 함께 해야 하는 가족의 모습을 담은 '모기'에서도 아들만 선호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그런 아버지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아들 그리고 무시당하는 두 딸들과 어머니의 모습이 나온다. 유독 모기에 약한 아들을 신경쓰며 식사 중에도 모기 잡기에 주의를 돌리고, 심지어 아버지가 싫어할 만한 말을 선언하려고 하는 남동생을 저지하기 위해 애써 모기로 주의를 돌리는 누나들의 모습은 독자들마저 조마조마한 마음을 갖게 한다. 굳이 부딪혀서 좋을 게 뭐가 있을까 하는 심정으로 부모지만 부모 같지 않은 존재 앞에서 살아내기 위한 연대가 안쓰럽고 또 안타까운 작품이다.
▶술에 취하면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로 인해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고통받는 청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동욱'에서도 부모 자격이 전혀 없는 아버지 아래에서 어쩔 수 없이 삐딱한 삶을 살아내는 동욱의 모습이 마음 아프다. 왜 어른들은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는 걸까.. 왜 어른들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 위험할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걸까? 아이들 앞에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작품이다.
이렇듯 이번 단편소설집은 일상적이면 안되는 아픔을 가진 청소년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내는 모습이 담겨 있기에 그런 모습을 응원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어른의 일원으로서 미안함이 자꾸 생기는 작품들이다. '작가의 말'에 이런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