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 - 이정록 청춘 시집
이정록 지음, 최보윤 그림 / 사계절 / 2020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고등학생들과 시로 만나고 이야기로 만나는 현직 한문교사가 쓴 시집이다. '이정록의 청춘시집'이란 부제와 같이 50여편 이상의 시들이 각각의 이야기 안에서 아이들의 시선과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틈틈히 담고 있다.
특히 그림작가의 센스있는 그림은 시에서 다 표현하지 못한 감정과 분위기까지 잘 담아내고 있어서 시를 읽어나가는 데 재미가 더해진다.
꿈을 꾸면서도
글자를 먹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과식했더니
하품만 나옵니다.
교실에서 이렇게 표현하며 쿨쿨 자는 학생이 있다면 어떨까? 꿈꾸며 먹는 글자들때문에 결국은 수업시간에 잠을 자야 겠다는 마음으로 비춰진다. 펼쳐진 커다란 책을 배고, 하품하며 잠든 그림과 함께하는 이 시가 귀엽고 훈훈해지는 부분이다.
지도를 잘못 그리면 배가 산으로 간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배가 산으로 가면 레스토랑이 된다.
잘못 그린 지도가 국경을 지운다.
'융합'이란 제목의 시에 나오는 구절들이다. 이 표현 속에서 인문학, 창의적 사고, 융합적 사고 그리고 사상까지 반영하는 상상력과 표현력에 감탄할 뿐이다.
노인정 둘에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있으니,
애들이 좀 많이 오겠어...
봉사활동 계획서에 써 온대로
커튼을 빨면 십분 간격으로 뗐다 붙여도 모자라...
-중략-
맨날 방바닥 물청소하면
늙은이들 궁둥이에 진물 사태가 나..
-중략-
입학시험에 필요하다니까 오기 싫어도 오는 거 아니겠어.
여기 오는 이유가 뻔해도 싫진 않아.
진짜 마음이었다면 대학생이 되고 취업을 해도 찾아와야지.
진짜 마음이었다면 대학생이 되고 취업한 뒤에도 찾아와야지.
첫 월급 타면 베지밀이라도 들고 와야지. 안 그래?
가장 공감할 수 있었던 시가 바로 이 시였다. 제목은 '봉사활동'.
봉사, 체험 등 다양한 교육활동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500명의 학생 중에 진짜 마음을 가지고 참가하는 학생들은 과연 몇 퍼센트가 될까?
봉사활동 하러 노인정에 오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되는 '베지밀'이란 표현.
그래, 진짜 마음이 있다면 작은 성의라도 마음을 보이는 진짜 봉사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현실이 더 많은 현실이다.
이 외에도 짧지만 여운이 깊은 시, 길고 재미있는 시 등 작가만의 재치와 상상 그리고 찐현실을 담은 시들이 담긴 작품이다.
실로 오랜만에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며 때론 무덤덤하게, 때론 기가막히게, 때론 웃기게도 재밌게 읽어내봤다.
진짜 마음이었다면, 대학생이 되고 취업한 뒤에도 찾아와야지. 첫 월급 타면 베지밀이라도 들고 와야지. 안 그래? - P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