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땐 뇌 과학 - 최신 뇌과학과 신경생물학은 우울증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앨릭스 코브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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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이란 단어는 사실 보기만 하더라도 무겁게 다가온다.

그리고 대부분의 우울증 관련 서적들은 실제로 내용을 무겁게 다룬다.

우울증에 관한 훌륭한 서적 중 하나인 앤드루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만 보더라도, 딱딱한 학문서 성격의 책은 아닐지라도, 다루는 내용 덕분에 페이지를 넘기는 것 자체가 꽤 진중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우울할 땐 뇌 과학》은 여태까지 봤던 우울증 관련 서적과는 확실히 궤를 달리하고 있다.

과학 입문서라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너무나 유쾌하다. 저자가 보여주는 사례부터 설명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가벼운 터치로 다가오기 때문에 독자도 꽤나 편안한 마음으로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우울증 환자조차 이 책을 읽는다면, 그 나름대로 치유받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것은 저자가 독자를 위해 고안한 전략이고, 그 전략은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세간에 돌아다니는 자기 잘난 맛과 남 가르치는 맛에 사는 '힐링 서적'물과 비교하면, 이 책은 진정한 의미로 누군가를 치유하기 위해 존재하는 '힐링 서적'일 것이다.

 

뇌과학과 관련한 용어에 대해 몇 번이나 언급하며 어렵지 않게 설명해주려는 저자의 세심한 배려 또한 돋보인다. 

그리고 이 책은 단순히 뇌과학 서적이기 보다는 일종의 우울증 클리닉도 겸하고 있다.

사실 철저히 우울증에 대한 분석 및 과학적 증거를 찾기 위해 책을 접한 사람들은 다소 실망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책의 전반부는 확실히 우울증에 대한 신경과학적 이야기들이 많지만, 후반부로 갈 수록 우울증 치료기법에 대한 이야기가 지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자신이 '뇌 과학 입문서'라는 정체성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우울증 치료를 위한 다양한 기법들을 소개할 때조차, 이것이 신경학적으로, 뇌과학적으로 어떤 원리에 의해 그것을 가능케하는 지 상세히 설명해준다.

우리가 흔히 이 정도 수준이면 민간요법 아닌가?라고 떠올릴만한 대처법에 대해서조차 이 책은 과학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매우 단순한 치료법이지만 그것이 작동하는 원리 자체는 단순하지 않음을 상세히 알려준다.

그 덕분에 이 책이 보다 더 과학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준다.

 

우울증과 뇌과학이란 무거운 소재를 이렇게 가볍고 쉽고 유쾌하게 설명하는 책은 찾기 쉽지 않다. 뇌과학에 입문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평소 '문학' 분야만 읽다가 '비문학' 분야를 접하려는 어떤 독자라도 이 책은 훌륭한 입문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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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감 중독 사회 - 분노는 어떻게 정의감을 내세운 마녀사냥이 되었나?
안도 슌스케 지음, 송지현 옮김 / 또다른우주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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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만 보면 완벽하다

정말이지 이 시대를 대변해주는 하나의 단어와 같다.

서로 내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싸우고, 설령 옳은 일이라 하더라도 자기반성과 성찰이 부재하는 시대. 모든 것이 극단으로 치닫는 시대

이런 시대에 '정의감'이란 어떻게 변질되었는가를 잘 보여줄 것만 같다.


그러나 불안 요소는 단 하나

과연 이 시대의 현상과 그 원인에 대한 심오한 분석을 이 얇은 160쪽에 다 담아낼 수 있는가에 있었고, 그 생각은 적중했다.


우선 이런 서적들의 신뢰성은 이 저자가 얼마나 오랜시간 깊이 연구해왔는지에 달려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바로 참고문헌과 다양한 주석들이다.

때문에 훌륭한 연구서들 중에는 본문만큼이나 참고문헌과 주석들이 두꺼운 경우가 많다.

(500~600페이지의 책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대부분 이런 책들은 100~200페이지를 참고문헌과 주석에 할애한다.)


물론 두꺼운 책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책에 대한 신뢰성을 높여주는 증거들이 많다는 의미일 뿐이다.

짧은 책에도 저자의 엄청난 철학과 통찰력이 존재한다면, 독자는 저자의 메시지에 압도되거나 휘감기듯 감명받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해리 G.프랭크퍼트의 《개소리에 대하여》는 정말 짧은 소책자이지만, 저자가 주는 통찰력이 놀라운 수준이다. 그래서 이 책은 해당 분야 관련 서적에 정말 여기저기서 언급될 정도로 많이 인용되고 참고되는 책이 되었다. 


그러나 《정의감 중독 사회》는 이러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시대상에 대한 포커스는 잘 맞췄으나 그에 대한 분석은 정말 평이한 수준이며, 거의 일반적인 심리학 서적에서 볼 수 있는 내용들로 갖추어져 있다.

일본 학자 특유의 장점인 '분류'의 성격은 뚜렷히 드러나서 읽기 편한감이 있지만, 아쉽게도 상세한 분류에 따르는 근거와 내용은 1~2페이지로 끝날 정도로 빈약하다.


무엇보다 '자가진단 테스트'는 이 책의 성격이 사회분석과 거리가 멀고, 개인심리학에 치중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런 테스트에 안그래도 짧은 책의 지면을 많이 할애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이도저도 아닌 꽤나 무의미하다는 인상을 줬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훌륭한 제목에 비해 너무나 내용이 아쉽다.

너무 쉽고 뻔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입문자가 읽기에는 좋지만, 어느 정도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과거에 읽었던 이런 저런 책들이 스쳐지나갈 정도로 내용이 얇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솔직히 말해, 관련 분야 서적의 한 단락을 차지하는 수준으로, 한 권으로 엮을만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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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에포크, 인간이 아름다웠던 시대 - 셀럽과 스타가 탄생하고, 백화점과 루이 뷔통과 샴페인이 브랜딩의 태동을 알리던 인류의 전성시대
심우찬 지음 / 시공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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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항상 치열했던 전쟁이 잠시간 없어서 가장 평화로웠던 시기.
덕분에 각종 예술운동과 기술, 문화의 폭발이 이뤄줬던 혁신의 시대에 관한 이야기다.


기본적으로 책은 벨 에포크 시대를 살았던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그 시대의 예술과 사회상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예술사적 특성이 강한 책.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봤다면, 이 책이 더 재미있게 다가올 수 있다. 왜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 시대를 선망하였는가를 잘 보여준다. 각종 예술사조가 번창하고, 살롱에서 거장들이 문화와 예술에 대해 토론하면서 끊임없는 아이디어가 폭발하던 시기였고, 바야흐로 예술의 전성기였기에 예술에 대해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책에서 상당한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책 자체는 매우 쉬운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풍부한 사진 자료와 함께 테마 중심의 이야기로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단숨에 읽어나가기 쉽다.


다만 이 책을 어떤 사회적, 역사적 비판을 위한 관점으로 보지는 마시라.
이 책에서도 많은 지분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짚고 넘어가는 부분이지만.
가장 아름다웠던 시대, 벨 에포크란 결국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라는 잔혹한 핏빛 역사와 빈곤과 착취에 시달리던 노동자 계급의 희생 위에 피어난 유달리 붉고 아름다운 꽃이다. 그 향기는 매혹적일 수 있지만, 뿌리는 인간의 피를 먹고 자란 잔혹한 꽃.
그것이 벨 에포크 시대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 인간이 아름다웠던 시대는 사실 잘못된 것 같기도 하다. 예술이 아름다웠던 시대라면 모를까. 사실 이 시기는 유럽의 평화를 제외하면 그야말로 인간의 잔혹성이 폭발하던 시기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벨 에포크 시대 자체를 단순히 비난할 수 없다.
그 시대의 업적은 자산이 되어 분명히 우리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에 우리가 누리고 있는 환경을 일궈냈다. 이 사실 자체만은 부정할 수 없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사실은 아테네 노예들의 수많은 공짜 노동의 제공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는 배경은 비판할 수 있지만, 아테네 민주주의가 현대 사회 민주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는 사실, 그리고 그 시대의 철학이 우리의 근간이 되어줬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그리고 지금 기술 문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정보화 혁신 이후, 그야말로 편리함에 도취되어 이 기술문화를 누리고 있는 우리는 사실 제3세계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원 강탈과 수많은 소년병들의 피, 그리고 공장 먼지가 자욱한 가운데 폐병을 앓고 있는 글로벌 노동자들의 생산성과 기후 위기 속에서 터전을 잃고 있는 사람들의 수많은 희생 속에서 우리의 풍요로움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시대의 과학과 정보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현 시대의 혁신은 다음 세대의 자산이자, 제3세계의 희생을 구해줄 하나의 방법론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 희생들은 기억해야 하고, 나아가 희생자들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 대한 접근을 그렇게 무겁게 다가설 필요는 없다.
단지 가볍게 읽고 재미있게 감상하는 예술서적, 인문학 서적으로 읽는다면 충분히 많은 영감과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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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과정 - 빈곤의 배치와 취약한 삶들의 인류학
조문영 지음 / 글항아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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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빈곤'에 관해 접근하는 책은 '사회학'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먼저 현재 사회 현상을 설명하고, 이후 이론적인 설명을 내놓으며, 다음에는 사회과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통계자료'가 각종 증거로 첨부된다. 그리고 통계의 해설과 함께 현재 사회 현상을 결부지어 문제를 부각한다. 마지막에 대안이나 해결책을 내놓을 경우 꽤나 훌륭한 마무리의 책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사회문제만 부각시킨 채 끝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근데 이 책, 조금 많이 다르다.

이 책의 저자가 '인류학자'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빈곤에 관한 사회학, 경제학 좀 나아가자면 역사학적 접근의 책은 꽤나 읽어봤어도 '인류학'의 관점은 꽤나 생소하게 다가왔다. 그 점이 이 책의 첫째 매력이다.


이 책은 무수히 말하는 통계나 자료와는 좀 거리가 있다. 우리는 뭔가 방대한 자료를 이용해 저 멀리 관찰자가 되어 빈곤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데, 덕분에 우리는 '빈곤의 문제'를 무미건조하게 사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빈곤의 인류학'을 다루기  때문에 빈곤 문제에 대해서 보다 미시적이고 매우 밀접한 접근을 한다. 즉 인류학의 핵심이라 부를 수 있는 '현장 연구'가 중점이다.


따라서 이 책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과 같은 현장 르포르타주의 형식처럼 한 사회, 한 집단 혹은 개인의 생활에 녹아들어가 빈곤의 현실과 직접 '마주한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학자이지 기자가 아니다. 다분히 사회고발적 측면을 띠는 바버라 에런라이크나 나오미 클라인의 색채와는 다르다. 기자의 격앙된 어조는 지양되고 학자 특유의 차분함과 고찰이 담뿍 들어가 있다.


이 책은 한국과 중국을 오간다. 이유는 저자 자체가 중국 연구의 권위자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래서 초반에는 좀 생뚱맞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아마 이 책을 짚은 대다수가 우리나라의 현실, 즉 한국의 빈곤 과정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지면은 적지 않은 부분에서 중국을 조망하고 있다. 특히 중국 빈부격차의 상징인 '농민공'의 이야기가 많다. 조선족이나 중국 이민을 선택했다 빈곤층으로 추락한 예시들도 있기 때문에, 중간 지점에서 아마 책을 덮고 싶은 욕망이 생길지도 모른다.


왜 우리가 중국에 대해서 알아야할까? 중국의 빈곤이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심지어 그들의 경제체제와 문화는 한국과 전혀 다른데 말이다. 이런 의구심을 가지고 중반을 견뎌내면 저자가 본격적으로 말하고자 싶었던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이 책은 시점이 자주 교차하는데.

첫째는 앞서 말한 '중국의 빈곤'에 대한 현장 조사이고, 둘때는 한국의 빈곤 상황이다. 셋째는 한국의 빈곤 활동가와 젊은 세대 중심의 빈곤 구호 자원봉사단에 대한 이야기. 넷째는 이론적 측면에서 신자유주의나 '마주침'에 관한 철학적 사고가 존재한다.


여기서 뇌릿 속에 깊이 박혀 들어오는 것은 셋째와 넷째이다.

그리고 첫째와 둘째. 즉 중국과 한국에 관한 현장 탐구는 바로 이 셋째와 넷째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한 일종의 빌드업과 같은 장치였다.


특히 우리는 이 책에서 '마주침'이란 단어에 주목하게 되는데.

이는 한국의 젊은 세대, 혹은 빈곤에 관심을 가지고 빈곤에 접근하는 사람들에 대해 큰 의의를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일찍이 조지 오웰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사회주의 에세이에서, 얼마나 많은 진보적 사고의 지성인들이 현실을 알지 못한 채, 입으로만 떠들어대는 가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실제 노동현실과 빈곤을 마주한 순간, 그들이 겪는 당황스러움, 심지어 신념이 경멸로 바뀌거나 완전히 돌아서 보수주의자가 되는 것에 관해 비판한다.


즉, 우리는 현실을 마주하기 전에는 보통 자신의 환경, 자신의 사고라는 틀과 우리에 갇혀 빈곤을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히 빈곤의 타자화이며, 자신은 그곳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훑어볼 수 있는 일종의 기만이다. 

그리고 아무리 빈곤에 이야기 한다 하더라도 현장을 마주하지 않는다면, 대부분 자신의 상황이나 상태에 빗대어 빈곤을 이야기하는 모순에 빠지기도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아주 정확하게 짚어내고, 인류학 특유의 현장 체험을 통해 아주 생생하게 독자에게 전달한다.

특히 이것이 20대 자원봉사자들과 빈곤 활동가들의 마주침, 그리고 그들이 실제 빈곤 현장에서 겪는 경험과 충격, 혼란의 과정에서 거의 뿜어져 나오다시피 한다.

그리고 '마주침'이란 단어가 곧 우리가 빈곤을 사고하는 과정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대학생 사회봉사자들의 사고과정의 변화를 지켜보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다. 

사실 이들이 빈곤 문제에 관여하게 된 계기는 대부분 '자기 자신의 상황'과 관련한다. 청년 빈곤! 청년 문제! 사실 무시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덕분에 많은 청년들이 실제로 우울증에 시달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원봉사의 시작도 보통 이런 것의 해결책인 경우가 많다. 즉, '지금 내가 뭘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아성찰적 자문인 경우나 흔히 '스펙쌓기'란 개념의 취업 준비를 위함인 경우다.


그래서 대학생들은 자신의 불안한 처지에만 갇혀 있다가, 실제로 만나보는 '빈곤 환경'에 대해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흔히 신자유주의가 만든 사고적 틀. 예를 들어 '공정의 개념'과 같은 사고방식에 갇혀 있다 빈곤 활동가들의 '상호부조, 상호의존'과 같은 활동방식에 정체성이 그야말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이 엇박자. '마주침이 만들어낸 엇박자'를 통해서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게 되고, 거기서 사고를 다듬으면서 우리는 비로소 빈곤의 현실에 대해 제대로 접근하게 된다. 마침내 엇박자가 손뼉을 맞대는 소리르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책이 대학생들이 흔히 빠져있는 '정체성 정치'나 '페미니즘'이 가지는 사고방식의 한계를 짚어내는 것도 흥미롭다. 단순한 사상이 직면한 현실과 마주쳤을 때 그것이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방해 요소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사실 페미니즘이나 정체성 정치란 사회학의 한 조류. 즉 마지막에 뻗쳐나와 있는 '나무의 가지'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협소한 범위의 학문이고, 이것을 기초로 삼아 사회 현상을 바라보게 된다면 아주 좁고 편협한 시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한계를 보여줄 수 밖에 없다.


페미니즘을 알기 전에 인권 운동을, 인권 운동을 알기 전에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를 알기 전에 사회구조와 인간역학의 문제를 알아야 하는데. 이러한 뿌리나 핵심을 싸그리 무시한 채, 가장 마지막 단계인 '정체성 정치'로 사회를 바라본다는 것은 사실 각종 모순과 위험성을 낳을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 책에서 페미니즘으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진 한 여대생이, '남성 노숙자'와 마주쳤을 때의 나타나는 편견, 그리고 충격. 그것에 대한 극복의 문제가 정말 인상적이다.


즉, 페미니즘에서 봤을 때, 언제나 권력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야 할 대상의 '남성'이, 매우 취약하고 연약한 '빈곤'의 모습으로 다가왔을 때 겪는 사고적 혼란의 문제. 그리고 그들이 단순히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접근했을 때 이들을 '처리'해야 할 방법에 대해서는 그저 위협적일지도 모르는 빈곤 대상에 대해 지켜야 할 '나의 안전'이란 매우 협소하고 단편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한 모순이다.


바로 이 마주침의 순간에서, 비로소 교실에서만 배운 '페미니즘'의 편협성이 드러나고 여대생은 새로운 사고와 접근을 깨닫게 된다. 남성도 취약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빈곤의 문제에서 필요한 것은 구분짓고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서로 다른 배경과 환경의 사람들끼리 '연대'를 한다는 것임을 말이다.



이 책은 인류학이지만, 그 어떤 책보다 '사회학적 상상력'이 풍부하다. 

나는 언제나 사회학의 가장 중요한 책으로 찰스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을 꼽는다. 

어쩌면 무의미해 보이고,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것 속에서도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단순히 개인이었을 경우 무력했던 우리가 동떨어진 무엇인가를 계기로 이어져 있음을 알고 연대할 때, 비로소 사회는 변화하기 시작한다는 사실. 그것을 상상하게끔 사고력 운동을 하는 것이 '사회학적 상상력'이다.


그러나 정작 요즘 나오는 사회학 서적들은 지나치게 단편적이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소실된 상태로 사회의 단면만을 보여주는 책들이 너절할 정도로 많다. 특히 정체성 정치와 관련한 책들은 정말이지 편협함의 극치를 보여주곤 한다. 


그런데 이 '사회학적 상상력'이 가장 풍부한 책이 등장했는데, 그것이 인류학 서적이라니 참으로 놀랍기 그지없다. 사회학 서적들은 이 책을 보면서 반성해야 한다.


사회학 교수들은, 혹은 사회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이 넘나드는 방식에 대해 새롭게 바라보아야 한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20대 대학생에서 빈곤 활동가로, 단편적 빈곤의 문제에서 현실의 충격으로. 이 책이 보여주는 다양성은 '사회학적 상상력'이 어떻게 활용되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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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거짓말을 한다 - 구글 트렌드로 밝혀낸 충격적인 인간의 욕망, 개정판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지음, 이영래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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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들은 사회적 가면(페르소나)를 쓰게 되고, 최대한 타인에게 자신은 점잖고 상식있는 사람으로 비춰지길 원한다.

그러기 때문에 대부분 어느 정도 자신이 노출된 공간에서 인간은 솔직한 척하면서 개인이 가진 가치관이나 생각을 포장하기에 바쁘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행동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따라서, 기존의 데이터 수집 방법들. 전화, 설문지, 면접, 현장 연구 등에 있어서는 분명 그에 따른 장단점도 존재하지만 인간 이면에 숨어있는 무의식적 욕망까지는 도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터넷 세상. 특히 구글의 등장과 함께 인간은 완전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자신만의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소셜 미디어나 커뮤니티가 완전한 개인을 표출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중요하게 언급하는 점은, 개인이 구글과 같은 검색 사이트를 이용하여 어떤 '단어나 문장'을 쳐서 검색을 해 봤는가에 따른 데이터를 추출하여, 빅데이터를 만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책에서도 중요하게 언급하지만, 소셜 미디어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자신이 얼마나 멋진 사람으로 비출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온갖 포장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이런 SNS는 도리어 인간의 거짓을 더욱 드러내고 이면의 우울감과 불행을 촉발하기도 한다.


커뮤니티 역시 어느 정도는 그 커뮤니티 성향에 맞춰 자신을 표현하고,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조금은 다른 흥미로운 지점을 언급하기도 한다. 즉 정반대 성향의 인물이 그 커뮤니티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구글 검색 기반을 통해 데이터를 추출한 결과 의외로 극과 극에 해당하는 인물들은 자신들과 상극인 사이트나 커뮤니티에 자주 접속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가 거기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든 말든 간에 말이다. 


이처럼, 이 책은 인간이 완벽하게 감춰진 개인의 욕망을 발산할 수 있는 거의 확실한 통로인 '검색'이란 창. 특히 가장 이용자가 많아 빅데이터를 수집하기 쉬운 '구글 검색'을 이용하여 나타난 인간 이면의 심리를 재밌게 파악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는 통념을 많이 깨부수는 책이다.

물론,  읽으면서 우리가 인터넷에 쓴 '검색' 단어가 과연 개인의 숨겨진 본능을 보여주는 확실한 지표일까? 라는 의구심을 만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가끔 우리는 정말 내 가치관과 상관없이 그냥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다소 생뚱맞을 수 있는 검색을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빅데이터 전문가이기 때문에 아마 소수의 검색을 통한 통계는 제외하긴 했겠지만, 적지 않은 인간들이 동일한 생각을 단순히 호기심 때문에 일회성으로 검색하기도 한다는 점은 분명 존재하기에, 가끔 이 책에 이러한 성향이 반영되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단순한 의문을 제외하더라도 이 책은 인간이 얼마나 자신을 감추고 거짓말에 능숙한 지를 놀라울 정도로 잘 보여준다.


특히 포르노 사이트 검색 키워드에 따른 결과는 한 때 미국 성문화를 완전히 발칵 뒤짚어 놓았던 《킨제이 보고서》이상의 충격을 전해준다.

나아가 정치적, 인종적, 사회적 견해에 대한 우리의 거짓말도 상당히 적나라하게 그 자료를 제시한다.

덕분에 이 책은 의도가 어찌하든 간에, 내용이 상당히 자극적이며 꽤나 집중해서 파고들기 좋은 서적이다. 


기존에 데이터가 제시할 수 없었던 부분을 구글 검색 기반을 통한 빅데이터로 제시할 수 있다며,  이 책은 앞으로 빅데이터가 얼마나 수많은 연구를 개척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을지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아니 오히려 저자는 아주 엉뚱한 영역이라 볼 수 있는 부분까지 데이터화 가능한 빅데이터의 기능을 보여주면서 도구적 혁신 측면에서 타 연구자들에게 강하게 제안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빅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가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이 책에서도 언급되는 네이트 실버의《신호와 소음》에서 나타나듯, 수많은 데이터는 핵심적인 내용을 담은 신호일 수 있으나, 거기에는 도리어 더 많은 거짓 데이터들, 즉 엄청난 소음들이 같이 산재해 있다. 

따라서 빅데이터란 결국 수많은 정크 자료들 속에서 유의미한 보석을 찾고 연결짓는 과정이 핵심이다. 아무리 많은 자료를 모아도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넘어 분명한 인과관계를 가진 가치있는 지점을 찾지 못한다면 빅데이터는 그 자체로 효율적인 도구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는 빅데이터를 통해 가치를 찾을 수 있는 분야에 대해 생각보다 세세하고, 그리고 일반적으론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잘 짚어냈다.


이렇게만 보면, 이 책은 마치 빅데이터 만능론을 내세우는 수많이 양산된 단순 찬양론 일색의 저작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 점도 잘 유념하고 있다. 덕분에 책 후반부는 전반부에 보여줬던 빅데이터에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달리, 빅데이터가 보여줄 수 있는 분명한 허점들을 보여준다. 가장 객관적인 예시로, '주식'이나 '코인' 시장이 왜 수많은 빅데이터 실험이 있었음에도 결국 실패로 끝났는가를 설명하는 부분이 아마 수많은 독자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아가 빅데이터를 가지고 절대로 해선 안될 것들. 즉, 윤리적 가치나 감시사회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언급하고 넘어가고 있다. 


이처럼 저자는 빅데이터가 보여주는 인간 이면의 충격적인 결과, 빅데이터 연구가 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 빅데이터가 가치가 있기 위해 집중하고 연결해야할 지점들을 설명하면서, 빅데이터가 할 수 없는 것들, 그리고 절대로 해선 안될 것들까지 종합적으로 잘 버무려 놓았다.


빅데이터에 관한 다수의 설명서들이 때로는 상당히 머리아프고 접근하기 힘든 서술방식을 채택한다. 또 어떤 책들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역으로 지나치게 비판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은 어느 정도 중립 노선을 선택하면서도 빅데이터의 가치를 제대로 표방했다.


무엇보다.. 내용이 참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어서 일반 독자도 매우 재밌고 집중해서 읽을 수 있다. 이 부분은 저자의 서술 능력 측면에서 칭찬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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